스페인이 쫓아낸 유대인, 프랑스 위그노의 교훈

트럼프 정부 유능한 이민자 홀대하면 역사 반복

유럽은 미국의 유능한 과학자 영입해 도약 꾀해

파시즘적 요소 경계와 정치적 관용 잃지 말아야

한때 가톨릭의 종교재판이 진행돼 이단자를 심문했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마요르(Mayor) 광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때 가톨릭의 종교재판이 진행돼 이단자를 심문했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마요르(Mayor) 광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류 문명의 중요한 전환에 인재의 이동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았다는 뜻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를 완료한 1492년 3월 31일 스페인은 이사벨라 1세와 페르디난드 2세의 합작으로 4개월 내에 유대인을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다. 당시 스페인에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이때 두 왕은 가톨릭 근본주의를 표방하며, 유대인은 출국하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잔인한 종교재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가톨릭 근본주의는 레콩키스타 성취에 따른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발로한 것으로 보인다. 500년이 지난 2015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알함브라 칙령에 대한 역사를 반성하고 유대인에 대한 국적회복법을 제정했지만, 역사에 대한 후회라고 하기엔 너무 늦다. 한편 스페인령인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은 네덜란드의 독립 전쟁을 적극 지원했고, 1569년 네덜란드는 건국헌장에서 종교의 자유를 선언해 국민은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적 입장을 취했다. 그후 30년 전쟁과 함께 스페인 제국은 급격히 몰락했고, 네덜란드는 독립을 인정받아 번영을 누려오고 있다. 같은 역사는 20세기에도 반복되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있었다. 종교와 인종에 대한 관용의 문제가 국가의 성쇠를 좌우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비슷한 시기인 1572년 프랑스에서 위그노에 대한 성 바르텔레미 대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이 있었는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가톨릭 근본주의의 발호라 할 수 있다. 1685년에 루이 14세는 형식적으로나마 개신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낭트칙령마저 폐지해 위그노 신앙을 불법화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종교개혁가 칼빈의 직업 소명설이 상공인 및 전문 기술자들이 많았던 위그노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 박해를 피해서 프랑스를 떠난 이들 위그노들은 영국, 독일, 스위스 등지로 이동해, 이들 나라의 정치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의 문제가 국가의 성쇠를 결정하는 또 다른 사례다.

지금 바로 이 시대에 또 다른 이유로 인재의 이동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상당 수의 유명 대학이 신규 교원 채용을 동결했고, 과학자들에 대한 연구비도 삭감했다. 예를 들어 의학 분야에서 가장 큰 연구비를 지출하는 국립보건원(NIH)은 2023년 350억 달러의 연구비를 2500개 이상의 대학및 연구기관에 지출했는데, 트럼프 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에 따라 2025년 2월 7일 연간 55억 달러의 연구비를 감축할 계획이라 발표했다. 미국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네이처(Nature) 지에 의하면, NIH는 COVID-19 및 기후 위기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를 종료시킬 전망이다. 이에 따른 충격은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주들에 더 심각할 것이라고 하며, 이는 해당 주들의 연구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화당에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한다.

 

'식민주의 역사 반성'을 기치로 내건 독일 훔볼트포럼이 20일(현지시간) 개관한다. 사진은 훔볼트포럼 전경. 2021.7.20. 연합뉴스
'식민주의 역사 반성'을 기치로 내건 독일 훔볼트포럼이 20일(현지시간) 개관한다. 사진은 훔볼트포럼 전경. 2021.7.20. 연합뉴스

독일의 경제학자인 모니카 슈니처(Monika Schnitzer)는 독일의 영어 방송인 'DW News'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독일이 미국으로부터 유능한 과학자들을 유치할수 있는 기회이며, 이를 위해 독일 연방 정부에서 지원하는 훔볼트(Humbolt) 교수직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말했다. 이 교수직은 채용 대학의 정교수직과 수백만 유로의 연방 정부 연구비를 제공하는 매우 영예로운 자리다. 특별히 인공지능(AI) 분야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최근 'AI를 위한 훔볼트 교수직'을 신설하였고 이미 AI 및 이를 이용한 유전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 등에 19명의 교수가 이 직위에 임용됐다. 프랑스 스타트업은 '미스트랄 AI(Mistral AI)'를 개발해 오픈 AI 등 미국의 AI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반면, 독일에는 이와 경쟁할 AI가 없다는 점에서 독일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독일은 AI 분야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창출하는데 필요한 전문가의 임계 질량 (cirtical mass)에 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의 '3월 24일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연구의 자유를 찾는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과학적 보호처 (Scientific Asylum)를 제공하고자 한다. 즉, 엑스-마르세유(Aix-Marseille)대학은 기후, 건강, 천체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15명의 미국 과학자들에게 3년간 1500만 유로의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이미 60명의 지원자 가운데 30명을 선발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 대학 순위의 탑 10에 하버드(Harvard),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의 대학이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의 대학은 훨씬 뒤처진 현실에서도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액스-마르세유 대학은 프랑스 정부 및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같은 정책을 타 대학에 확장하도록 돕고 있다. EU 차원에서 250억 유로의 연구비를 이런 목적에 새로 책정해도, 이는 EU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해 충분히 감당할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규모의 연구비라면 특정 분야뿐 아니라 전 분야에서 뛰어난 미국의 과학자들을 유인할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2차 대전후 미국에서 지급된 연구비중 방위 부분을 제외한 연구비는 200% 효과로 되돌아 온다. 연구 윤리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구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묻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설사 어떤 연구가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국가는 지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 미국의 과학자들이 16세기 스페인의 유대인과 프랑스의 위그노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유능한 이민자들에 대한 관용을 잃는다면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 그간 미국으로의 두뇌 유출만 경험하던 유럽이 연구의 자유를 찾는 미국의 과학자에게 보호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사의 교훈처럼 그 결과가 유럽의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미국보다 훨씬 엄격한 EU의 연구 윤리가 미국 출신 과학자들에게 또 다른 구속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측은 훨씬 더 어렵다. 예를 들어 EU는 2018년 5월 25일부터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ule)에 의해 개인 정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보호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24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10.24. 연합뉴스
24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10.24.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를 돌아 본다. 2024년 윤석열 정부는 연구 개발 카르텔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비를 30% 가량 감액했다. 기선정 연구비를 크게 감액하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신규 선정 과제도 현저하게 줄였다. 미국처럼 국가 재정 적자가 심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카르텔 타파'라는 매우 선동적인 이유에서였다. 만약, 카르텔이 있다면 막강한 검찰권을 가진 윤 정부가 수사하면 될 게 아닌가? 슬그머니 올해 들어 연구비를 원상 회복 한다고 했지만, 갑작스런 연구비 삭감의 악영향은 누적됐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 과학계는 극히 최근에야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정부가 오히려 과학자를 일방적으로 죄인 취급하는 일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치 괴벨스의 경우에서처럼 선동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무기다. 집권 이후 윤석열 정부가 파시즘적인 성격을 노골화하면서, 이런 선동적 상황은 과학계뿐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 결국에는 12.3 내란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극우 청년들에 의한 서부지법 난입 사태는 그 폭력성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현상의 수면 아래 개신교 근본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인구가 급격히 줄고 인재가 의대로 몰리는 현실에서 구미 및 아시아권의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일은 우리 미래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사회가 정치적 관용을 잃는다면 매우 큰 것을 잃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파시즘적인 요소를 경계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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