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대통령 책무, 권력관에 대한 인식 보여줘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 2022.11.14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연합뉴스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 2022.11.14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를 태우는 ‘통 큰 결정’을 했다고 한다. 12일 미디어오늘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오는 14일부터 6박 8일간의 UAE와 스위스 해외 순방 때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허용’키로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인용된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상황 변화는 없지만 윗선에서 통 크게 결정했다.”

상황 변화는 없지만, 즉 MBC가 잘못된 보도를 반성하고 바로잡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윗사람께서 넓은 마음으로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설명이다.

이 같은 말에는 현 정부의 최고책임자와 그 주변에서 갖고 있는 언론에 대한 인식, 나아가 대통령이라는 직위, ‘권력’에 대한 이해가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이번 결정이 MBC가 지난해 12월 26일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는 언론 자유의 핵심인 취재, 보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언론 전체의 자유로운 보도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저해하며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 가치를 위협하는 위헌적 공권력 행사”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낸 것 등을 의식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이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통 큰 결정'에 대해 응답을 보내야 할 것은 언론과 국민들, 국내외 언론단체들이다. ‘통이 크지 못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고 규탄했던 이들의 반성이 나와야 할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9일 MBC에 ‘편파방송’을 이유로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한 것에 대해 이를 비판하며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했던 기자협회·신문협회 등 국내 거의 모든 언론단체와 국경없는기자회 등 해외 언론단체들이 대통령의 ‘통 큰 결단’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현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집단이 보이고 있는 비상식적인 행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그같은 행태의 한 표현이자 그런 행태를 낳는 인식의 단면이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이다.

‘통 큰’이라는 말은 헌법적 책무를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으로 여기는 권력관, 대통령 전용기를 사적 소유물로 취급하는 공사(公私) 분별력의 부재, 국민을 대변하는 언론의 기능에 대한 이해 부족을 넘어선 이해의 결여가 담겨 있다.

그 같은 인식의 부재와 결여가 언어의 타락, 언어의 오염을 부른다. '통 큰 결정'이라는 말, 그리고 그 말의 바닥에 놓인 인식은 '국민 모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전하는 언론들의 보도는 이를 따져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통 큰 결단’을 강조하는 제목으로 내보내고 있을 뿐이다.

어떻든 대통령의 통 큰 결단 앞에 이제 언론과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에 대한 의문이다.

지난해 11월18일 출근길 질의응답에서 윤 대통령은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는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상황 변화가 없는데도’ 대통령은 ‘헌법수호 책임’을 저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려할 일이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 “나는 헌법을 준수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 69조)는 국민에 대한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제 언론의 위기가 아닌 대통령의 직분, 헌법수호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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