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와 사면 받은 중범죄자들 거리에 넘쳐날 듯
러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한국인들은 러시아에 대해 좋게 생각해 왔다고 대화를 시작하면서 “전쟁이 끝나면 꼭 러시아에 여행 가 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 짝이 없지만 동시에 “진짜 여행하려면 다시 한 번 꼭 신중히 생각해 보시라”고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기 때문이다. 우선 막 전쟁을 치른 국가가 과연 좋은 여행지일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전쟁 자체는 러시아 땅이 아닌 우크라이나 땅에서 진행되고 러시아는 도로 훼손, 건물 붕괴, 교량 파괴, 정전 등 물질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큰 피해를 안 봤지만 전쟁의 후유증은 여러 면에서 어마무시하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심정은 누구나 다 똑같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 주변에 있는 국가 국민, 멀리에서 이 비극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라 국민,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압도적인 비율로 대부분 사람들이 종전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희망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기적적으로 모든 것들이 바로 복구가 되어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한 순간에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소련 시절보다 그 숫자가 더 많은 정치범 양심범들이 갑자기 풀려나는 것도 아니고 급격히 떨어지는 경제 수준이나 국민생활 수준, 선동이 넘치는 사회, 취약한 치안 등이 한순간에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전쟁 후가 더 걱정되는 치안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군 인력은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숫자는 현역 군인, 계약직 군 인력, 동원령에 따른 징집된 인력, 감옥에서 스카웃된 수감자 모두 포함한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부상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이 많은 인력이 총을 놓고 다 사회로 돌아가면 그 결과가 끔찍할 거라는 예상은 모든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기울어진 국가 경제에 따른 일자리 부족에서 시작해서 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질환까지,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다.
PST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리학에서 연구가 잘 된 질환이다. 장기간 죽음, 고통, 고문 등과 같은 극심한 환경에 노출되어 정신 질환에 빠진 사례는 우리 역사에 많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귀국한 참전군인들로 인해 미국 사회 범죄율이 올라가면서 혼란이 있었고 국가 치안이 흔들렸다. 1979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이 1989년에 철수하고 난 후에 러시아로 돌아온 군인들도 오랫동안 정상적인 적응을 못했고 90년대 범죄조직, 마약밀수 등과 같은 중범죄에 준하는 활동을 벌인 주요 주체가 된 적도 있다. 지금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싸우면 바로 사면되는 조건으로 감옥에서 대거 풀려난 중범죄 수감자들이 모든 전문가의 우려스러운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나라의 치안이 불안해진다는 평가는 압도적이다.
정치 상황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없다. 이 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끝나건 러시아 정부에서는 무조건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이미 밑밥을 까는 행위들이 다소 보인다. 이웃나라 침공을 정당화 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강력하게 탄압해 왔는데 이제는 이런 탄압이 더 심해질 것이다. 나라가 승리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인민의 적’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며 강력한 탄압 정책을 펼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반정부 영상이나 기사에 ‘좋아요’ 눌렀다고 온 재산이 압수 되고 감옥 가는 일이 비일비재인데, 전쟁이 끝나고 정부의 시선이 오직 국내로 돌려 쏟아진다고 생각만 해 보면 그 상황이 어떨지 상상조차 끔찍하다. 한국에서는 야당을 탄압하고 ‘수거’하기 위해 불법 계엄령을 내린 내란 상태가 현재 정리 중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런 상태가 그대로 진행 중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여행 말리고 싶은 마음, 빨리 여행하고 싶은 마음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단순 여행자가 아닌 러시아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관광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람이면 크게 실감을 못하거나 별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일반 관광객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 러시아에 다녀 온 내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국 여권을 든 사람이 예전에는 그냥 바로 프리패스였지만 지금은 신중한 심사 대상이라고 한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별도의 방에서 30분 동안이나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비우호적인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이 왜 갑자기 이 시점에 러시아에 입국하냐고 따졌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하듯이 이제는 당분간 러시아로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풍부한 문화, 화려한 예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러시아지만, 잠시 여행계획을 미뤄 두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충고하고 싶은 생각이다. 하지만 전쟁과 코로나 이전 시대, 인천과 블라디보스톡 간의 직항 운항 횟수 하루 5개가 넘는 2019년의 좋은 시절로 빨리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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