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야 정치인들의 거친 언행이라며 양비론 펴

위헌 위법 행위에 대한 공세와 조롱의 말, 똑같이 취급

'의원 용기' 칭찬은 국힘만 거론해 기계적 균형도 외면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에 대해 양비론과 여야 간의 ‘정쟁’으로 보도하는 다수의 언론들 속에서 한겨레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비론을 타파하겠다며 출발한 한겨레의 본연의 창간 취지가 적잖게 살아나고 있다. 한겨레가 양비론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은 계엄 사태 뒤 뚜렷하다. 예컨대 18일 논설위원실장 칼럼 <승복 선언은 윤석열만 하면 된다>가 잘 짚고 있다. 국힘 측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게 승복 메시지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한겨레 기사를 응원해 왔으나 실망해 멀어졌던 한겨레의 독자들도 한겨레로 하나둘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겨레가 양비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양비론은 한겨레의 지면의 근저에 잠복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21일자 한겨레에 실린 사설 <“현행범” “사디즘”, 여야 갈등 부추기는 거친 언행 삼가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설은 여야 정치인들의 입이 몹시 거칠어지고 있다면서 가뜩이나 국민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가운데,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질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2024.1.2.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2024.1.2. 연합뉴스

이 사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최근 며칠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측 간에 격렬한 공방이 오가고 있는 말들이다. 하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겨냥해 “지금 이 순간부터 국민 누구나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몸조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힘의 안철수 의원이 이재명 대표에 대해 “부산에서 목을 긁힌 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습과 유사한 행동”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한겨레는 이를 똑같이 여야 갈등 부추기는 거친 언행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 사설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거리의 혐오와 분노는 임계치를 넘고 있다”면서 여야의 적대 정서가 극에 이른 한 단면으로 이를 꼽은 것이다.

한겨레의 비판처럼 정치에서 오가는 말들이 좀 더 절제되고 순화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거친 말들이 오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것을 넘어서 그 말들을 제대로 구분하고 비판해야 한다. 과연 양측의 말들이 똑같은 수준에서 둘 다 다를 게 없다는 식으로 비판을 받아야 할 말들일까.

이 대표의 말이나 안 의원의 말 모두 거친 말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은 같은 선상에 놓기 힘들다. 이 대표의 말이 거친 말이냐 아니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그 말은 위헌 행위를 고집하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태에 대해 경고, 정치적 공세를 편 성격의 것이었다. 반면 안 의원의 이 대표에 대한 발언은 비하와 조롱의 말이었다. ‘긁혔다’는 표현은 치밀한 준비를 갖춘 정치테러범에 의해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허위 주장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사실 관계에서부터 크게 틀린 것이다. 안 의원도 이를 몰랐던 것 같지 않다. 안 의원이 ‘죽은 듯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가 실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대표의 당시 부상 상태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안 의원은 이 조롱과 왜곡을 연일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죄로 경찰에 고발한다고 밝히자 다음날에는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고존엄 아버지'를 건드렸다는 것"이라고 비아냥대면서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어 21일에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허위사실 유포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토론 회피가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따지는 것은 차지하고, 안 의원이 알아야 할 자신의 발언의 ‘본질’은 토론을 둘러싼 공방이 아닌 이 대표가 당한 피살 위기 상황에 대한 폄하와 모독, 사실 관계 왜곡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질은 놔두고 엉뚱한 다른 지엽적인 표현 가지고 자꾸 저러고 있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과연 그가 본질을 보고 있는지, 그야말로 지엽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 대표가 살해 협박 제보를 받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안 의원은 2차, 3차 가해를 범하는 것이다.

언론에 필요한 것은 이같이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려주는 것이다. 양측을 단지 똑 같이 막말이며 거친 언행이라고 한데 묶어서 비판하는 것은 안이안 양비론에 머물고 만다.

한겨레의 이 사설이 기계적 양비론에 갇힌 보도라고 한다면 ‘기계적 균형’에조차 크게 못 미친 기사도 있다. 같은 날짜에 실린 <계엄을 견디게 해준 네 가지 용기-슬기로운 기자생활>이라는 기자 칼럼은 12·3 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서 ‘역사’ 펼쳐지는 장면들을 지켜본 취재기다. 이 칼럼은 누군가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면서 네 가지를 꼽았다. 시민의 용기, 탄핵 의원의 용기, 군인의 용기, 그리고 광장에 모인 모두의 용기다.

이중 ‘탄핵 의원의 용기’에서 그는 거의 대부분을 12월 14일 국회에서의 두 번째 탄핵 표결에 찬성표를 던졌던 국힘 소속 12명의 의원들, 특히 김상욱 의원을 칭찬하는 데 쓰고 있다. 탄핵 반대 당론에 저항해 소신을 보여준 그의 용기가 탄핵안 통과 마지노선인 ‘찬성 200표’를 간신히 넘기게 해 줬다면서 김 의원 등 국힘 의원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김상욱 의원이나 국힘의 탄핵 찬성 의원들의 용기가 칭찬받을 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엄 선포 이후 탄핵 의결까지 국회에는 다른 많은 이들이 함께 있었다. 그날 계엄의 밤의 긴박한 순간에 라이브를 통해 알린 이재명 대표와 죽음을 각오하고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고 담장을 넘었던 야당 국회의원들, 군인들에 온몸으로 맞선 보좌관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또한 '용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 칼럼의 필자에게는 단 한 줄도 그에 대한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국힘 의원들의 대다수가 탄핵 반대를 외치는 지금의 상황에서 국힘 내의 ‘용기 있는 반란’을 독려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유난히 비판적이었던 그간의 보도 태도와도 겹치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 기자 칼럼이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과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이 광장에 함께 있다면서 이들 '모두를 끌어안을' 용기를 지닌 이가 이 나라를 이끌 자격을 얻을 것이라고 쓴 것과 같이 ‘의원의 용기’를 칭찬하면서 최소한 국힘뿐만 아니라 다른 쪽까지 ‘양측 모두’를 함께 끌어안을 생각은 없었는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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