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지킬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강민정 전 국회의원
강민정 전 국회의원

헌법이 위기에 처했다.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야합의 운운했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계속 뭉개고 있다. 종교도 위기에 처했다.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하며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 대신 불신과 혐오, 심지어 폭력을 선동하며 공동체 파괴로 나가고 있다.

정치도 위기에 처했다. 선거로 당선된 자들이 부정선거를 외치고, 헌법수호 선서한 자들이 계엄으로 헌법기관을 침탈하더니 이젠 헌법기관을 쳐부수자고 선동하고 있다. 군도 위기에 처했다.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지킨다는 목적으로 합법적 면허를 부여받은 최고 수준 폭력기구가 완전무장을 하고 국민을 위협했다.

그런데 대학 또한 위기에 처했다. 진리를 탐구하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대신 스스로 학문의 권위를 내팽개치며 권력 눈치를 보는 비루한 길을 걷고 있다. 정치와 종교와 학문(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공히 사적욕망에 지배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우리 사회가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다. 군의 공적 존재목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열린민주당 강민정,김의겸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가 작성한 논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7.8. 연합뉴스
열린민주당 강민정,김의겸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가 작성한 논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7.8. 연합뉴스

온 사회가 카오스 빠진 와중에 주목 받는 두 대학

이러한 영역의 일들이 마땅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구성원들은 삶의 기준과 좌표를 잃고, 사회는 카오스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정당, 목회자의 이름으로 헌법파괴를 선동하는 집단, 박물관에 들어갔던 정치군인들을 소환한 것에 대한 비판과 규탄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전 국민이 두 대학을 주목하고 있다.

2021년 7월 국회에서는 특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시 검찰 옷을 벗고 정치에 뛰어들어 대선후보로 나설 채비를 하던 윤석열의 처, 김건희의 박사학위 논문표절과 경력위조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었다. 5개월 후 김건희는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 있었다’는 말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 사과에는 ‘박사님’ 자격을 잃게 될 학위논문 표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후 김건희의 석사, 박사 논문에 대한 검증이 이어졌다. 방송사, 숙대 교수들의 자체 검증과 14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범학계 국민검증단 등이 나섰다. 그러나 두 대학은 교육부 연구윤리지침과 학교연구규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국민대는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수준이 아니’라며 면죄부를 줬고, 숙대는 3년이 넘어서야 표절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도 아직 숙대는 석사학위 취소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바람보다 먼저 누워 최고 권력자의 심기경호와 연구윤리를 맞바꾸었던 국민대는 숙대의 결정을 지켜보며 뒷짐 지고 있다. 국민대가 국회 국정감사 증인석에 서지 않기 위해 엄한 해외출장을 가며 매를 피하려 전전긍긍 했던 모습이 생생한데 지금은 마치 제3자인 양 하고 있다.

연구 불신 자초하고 비리카르텔 일부 된 숙대와 국민대

숙대와 국민대가 학위 부여 시점에 논문 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지만, 그것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공적 이슈가 되었을 때 취한 태도야말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연구는 대학의 첫 번째 존재이유다. 연구행위를 통해 사회의 불합리와 한계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가 궤도 이탈하지 않도록 경고하며 길을 찾도록 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그러나 숙대와 국민대는 대학의 존재이유인 연구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스스로가 사회 불합리와 비리카르텔의 일부가 되었다. 덕분에 연구실을 지키며 애쓰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했다. 또한 대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참히 깨는 데 앞장서 두 대학 모두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대학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숙대와 국민대의 책임은 그것만이 아니다. 김건희가 정말 단지 ‘잘 보이려고’ 석·박사 학위가 필요했을까. 김건희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한 온갖 기득권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박사님’ 이름표가 톡톡히 한 몫 했을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숙대와 국민대는 김건희에게 ‘공인 사다리’를 제공해 그 길을 닦아 준 당사자들이다.

게다가 표절이 공론화 되었을 때 그들이 권력에 무릎 꿇음으로써 우리 사회를 통째로 온갖 비리와 몰상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김건희가 V1도, V2도 아닌 V0로 승승장구 활개 치도록 한 조력자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도 숙대와 국민대는 아직도 명줄이 다해가고 있는 권력자 눈치를 보고 있다. 윤석열 파면 확정까지는 절대보신 모드 유지를 작정한 건가.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김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살펴보고 있는 숙명여대의 민주동문회도 숙명여대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개최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동참하고 있다. 2022.8.8. 연합뉴스 자료사진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김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살펴보고 있는 숙명여대의 민주동문회도 숙명여대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개최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동참하고 있다. 2022.8.8.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간지옥 기로에서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기회는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감시, 불법연행, 고문과 폭력이 횡행하는 무간지옥의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우리 모두가 완전히 빠져나와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 반 헌법, 반 민주주의가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대학이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있었다는 걸 두 대학을 통해 보고 있다.

대학의 존재이유를 그저 졸업생 취업률 증가나 새로운 기술개발로 손에 잡히는 이익 창출 복무에만 둔다면, 사회는 화려하게 치장된 채 바람 따라 흔들리는 영혼 없는 고무인형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윤석열의 정계 입문에서 탄핵까지 완벽하게 겹치는 지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숙대와 국민대가 보여준 모습은 헌법과 법률로 자율성을 보장하고 국민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것을 계속해도 되는지 묻게 한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숙대와 국민대는 대학의 존재이유, 대학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던져버리지 마시라. 김건희의 석사, 박사학위 취소에 즉각 나서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