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12.3 비상계엄
윤석열의 난
민주공화정을 정체로 하는 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이 자신을 당선시킨 대선과 본인의 취임 이후 있었던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 비상계엄을 선포(2024년 12월 3일 22시 27분)했다. 물론 야당의 장관들에 대한 탄핵, 예산삭감 등도 행정훼방이라며 원인으로 들었다. 그 후 계엄 이유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특히 부정선거 이슈는 이해하기 어렵다. 총선에서 낙선한 자들이 소송을 벌였는데 대법원은 문제없는 것으로 판결했다. 실제로 2020년부터, 금년 1월까지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와 지역 선관위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이 181차례나 집행되었다. 이 가운데 91%는 윤석열의 취임 후에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다 알고도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이유가 전혀 다른 데 있다고 의심받는다.
국회는 두 시간도 안 되어 계엄해제를 의결함(2024년 12월 4일 01시 1분)으로써 나라와 국민이 실제로 비상사태로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계엄 이후, 국회청문회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국회에 들어온 특전사 요원들은 지하로 들어가 단전을 했다. 본회의장이 아닌 다른 층 스위치를 내렸다고 한다. 이게 기적이었다.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본회의장에 전기가 나가서 암흑이 되었다면, 윤석열과 김건희는 지금쯤 노상원과 김용현에게 그간 적어놓았던 ‘기분 나쁜 놈들’의 명단을 던져주며, 온갖 잔인한 처분과 처단, 그리고 고문을 일상화하고 있을 것이다. 킬러들과 수시로 폭탄주를 주고받으며. 높이 흡족해하며. 온세상은 이 희대의 사디스트 커플을 바라보며 경악할 것이다.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고? 그 정도 언사는 그 기적을 고마워하며 감탄하기에 충분치 않다. 나는 이 시간, 그저 조국 대한민국에 천운(天運)이 함께한다는 운명론을 말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망동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하수인들이 종신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사전에 준비한 실행전략은 실로 잔악한 흉계들로 그득했다.
그런데 말이다. 놀랍게도, 윤석열의 리더십은 엉성하고 어설프고 지능적이지 못했다. 참으로 시시했다. 나처럼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3년쯤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병역미필 사유가 ‘부동시’(不同視)라고 말할 때, 우리는 떳떳치 못했던 그를 경멸하고 조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우리는 모두 그 덕을 본 것이다.
최악의 상상
군인들이 국회 전체를 단전했다고 가정해보자. 일당백의 특수부대원들이 1,000미터 지하갱도의 광부들처럼, 헤드라이트를 착용한 채 의원들을 거칠게 끌어낸다. 저항하면 군화발로 낭심이나 명치를 차고, 쓰러져 나뒹구는 ‘헌법기관’들의 얼굴이나 모가지를 가차없이 밟아버리고, 대여섯이 스크럼 짜고 달려들면 개머리판으로 이마를 찍고, 곤봉으로 뒤통수를 뽀갤 듯 타격했을 것이다.
‘이 죽일 놈들아!’, 소리치는 여성의원들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려, 저 멀찍이 던져버리면, 1초 뒤, 물건처럼 퍽하고 떨어지며 피투성이가 되어 절망적으로 울부짖는다. 쌍욕을 하며 시끄럽다고 등짝을 발로 찍어버린다. 실신했을 것이다. 삽시간에 벌어진 그 참상 앞에 서면, 아무리 강심장이고, 체력이 건장한 무술가라고 하더라도 죽음을 예감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치명적인 시간에 이재명과 우원식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소수가 배신을 때렸을 수도 있다. 당연히, 그 수는 금세 늘어났을 거다. 이는 생존본능이다. 그들 가운데 소수는 “그때 죽음은 피했지만, 차라리 덤비다가 죽었어야 한다”며 자책하다가 삶을 마칠 것이다. 다수는 그러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더라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나는 그 상상 속의 1진 변절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라면 어땠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연약함에 관한 사항이다.
어디 신체에 대한 폭력뿐일까. 직전까지도 세상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권위 있고 멀쩡했던 신사숙녀들에게, 군인들은 온갖 더러운 욕설과 저주의 언사들을 퍼부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주권자들을 대표하는 의원들 200명이 짐승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 상황에서 누구든 총이 있다면 쏘고, 칼이 있다면 찌르고, 가까이에 기름통이 있다면, 거기에 담뱃불을 던져 불을 놓았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하릴없이 하늘의 도움을 간구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진시황이 되어 백두에서 한라까지 금수강산 방방곡곡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만들고, 이 착하고 다정한 선남선녀 동포들을 그 지옥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로 만들어 버릴 뻔했다. 그 악몽의 충격과 공포가 마치 강도 높은 지진의 여진처럼 후련하게 마감되지 않은 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아직도 떨린다. 그 안에서 생긴 후유증이 훗날, 어떤 악성 질환으로 커져서 나와 벗들의 인생을 흔들어댈지 지금 알 수는 없다. 12.3 계엄사태는 국민 전체를 그처럼 불안하고 불편한 환자로 만들어버린 초대형 초현실적 재앙이었던 것이다.
천길 벼랑에 핀 꽃들
때로 최악은 최선의 꽃을 피운다. 역설의 방정식이다. 그날 그 시간, 국회는 전술한 ‘최악의 상상’ 이상으로 참혹한 피바다가 될 수 있었다. 수천의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 중무장한 채 침입한 강도들과 대적하는 마음으로, 특전사 군인들과 대치했다. 목숨 걸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젊은 무사들은 50만 국군 전체병력 가운데 최강의 살상요원들이다. 비무장 비폭력 시민들과 살상무기로 중무장한 특전사 병력의 대결! 그 구도 자체가 다름 아닌 천길 벼랑이었다. 그 위태로운 처지가 거대한 풍랑을 만난 조각배마냥 불안하게 흔들리는 21세기 지구사회에서, 등대처럼 빛나던 문명세상의 새 수도 대한민국의 엄연한 좌표였다.
45년 전, 피로 물들었던 ‘빛고을 광주’의 악몽이 재현되기 직전에, 시민들의 거센 저항과 설득, 위축되지 않는 당당한 눈빛, 부모와 형제, 선후배와 친구로서 전하는 충고들이 뭉뚱그려졌다. 그 무적(無敵)의 무력(武力)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각성했다. 그래서 이내 공격성을 낮추었던 것이다.
계엄상황에서 지시불이행은 곧 항명이다. 전시에는 즉석 총살형이다. “죄송하다”며 목례하고 사과하는 군인들이 여럿이었다. 그렇다! 시민들은 특전사가 적으로 설정하고 훈련해온 상대가 아니었다. 그 언어도단의 상황 앞에서 최상위 지시자에 대하여 분노했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적어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갸륵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지금 앓고 있다. 군당국이 트라우마 및 스트레스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정신건강평가’를 실행한 결과, 자살충동이 있는 병사도 소수 확인되었고, 70명은 전문가 상담을 요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전문의들은 그들의 병명을 ‘도덕의 손상’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시민들과 정치인들을 해쳐야 하는 작전에 투입된 사실을 깨닫고 나서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꼈고 아프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아프다. 젊은 군인들이 안스럽고 또 아름답다. 뭉클하다.
‘계엄마귀’ 윤석열과 깍두기 김용현의 ‘나쁜 지시’를 지혜롭게 거부한 특전사령관 곽종근 중장. 그의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대응은 역사에 남을 만한 미덕이었다. 그는 국회의 계엄해제결의가 난 후에 자신의 판단으로 병력의 부대복귀를 명했다. 그가 제2계엄을 하려고 기를 쓰던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강압적인 지시를 거절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것이다. 담당 판사들이 향후 그 점을 가상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다른 장군들에 비하여 그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길 바란다. 법관들이여! 그대들도 그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 아닌가.
조성현 대령은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다. 그는 이번 계엄 관련 청문회에서 참군인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는 윤석열의 변호사 윤갑근의 “의인처럼 행동한다”는 졸렬한 공세에 대하여,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의연한 자세로 반박했다. “저는 의인도 아닙니다. 저는 경비단장으로서, 제 부하들의 지휘관입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때 제가 했던 역할을 진술하는 것뿐입니다.” 눈부셨다. 마귀의 변호사는 찌그러졌다.
좀 엉뚱하지만, 조 대령에 대해서 걱정이 생겼다. 그의 발언을 지켜본 상관들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까. “쟤는 데리고 일하기 불편하겠군!” 장군이든 영관장교든 자기주도적으로 신념형 인생관을 가지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이렇게 위태롭고 불편하다. 특히나 능력도 없고, 인품도 낮은 자들이 아부와 뇌물로 그처럼 감동적인 인물들의 점수를 매기는 자리에 앉아 있는 부대라면 말이다. 조 대령이 훗날, 사령관도 하고 총장도 하면 좋겠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 또한 역사가 되었다. 그는 윤석열이 "이번에 다 잡아들여.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를 듣고, 방첩사령관 여인형에게 김용현이 보낸 명단을 받아적으며, 저항을 결심했다. '이거 미친 놈 아닌가'는 필시 윤석열을 지칭한 독백이었을 것이다. 그가 안규백 의원에게 말한다. "예를 들어서, 위원장님이 집에 가셔서 가족들 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TV를 보고 있는데, 방첩사 수사관들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뛰어들어서 수갑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는다. 대한민국이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서 한 이 발언을 들을 때마다 매번 목이 메인다. 나라를 사랑하는 한국의 상식인들 모두 같을 것이다. 놀라웠다. 국정원 수뇌부에 이런 고품격 인물이 있었다니...
또 있다. 남태령과 한남동의 '키세스 군단'은 나라를 구한 북만주 벌판의 청년독립군들의 현신(現身)이었다. 100년 전 거기 그 차갑고, 또 뜨거웠던 땅에서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조상들이 부활한 것이다. 노장청(老壯靑)이 어깨를 걸고서, 함께 밤을 새우며 벌인 그 퇴마제(退魔祭)가 끝내 악마를 감옥으로 던졌다. 사해동포들이 그 의식에 감격하며 참여했다. 하늘 높이 국격을 올린 굿판이었다.
말(言勾)과 말(馬)
윤석열의 말은 천박하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그 사람은 공격적인 언사에다가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 계엄도 본질은 크고 거칠고, 보통 사람들은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잔혹한 욕설 같은 것이었다. 말은 정성들여 가꾼 마음의 밭에서 캐내는 결실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농부의 감자밭에서 자갈이 나올 리 없다.
어린 소녀가 어른들 일하듯 마치 사명처럼 물 주고 거름도 주며 가꾸는 채송화 꽃밭은 그 아이의 세계다. 그 부모도, 형제자매도 이웃들도 소녀처럼 각각 땀흘리며 가진 힘껏 살림살이를 이어간다. 모두 가난하지만 울지도, 주저앉지도 않고 밭을 갈며 숙명의 시간을 귀하게 걸어간다.
윤석열의 거짓과 저주의 말들(言辭)은 미친 말(馬)이 되어 소녀의 채송화 꽃밭을 유린했다. 아이가 속한 공동체 전체의 터전과 근거를 무너뜨렸다. 그에게 터럭만큼의 관용조차 들지 않는 이유다. 이는 국회와 선관위를 공격한 위헌성 이상의 만행이다.
나쁜 정치는 더럽게 오염된 마음의 밭에서 나오는 나쁜 말들의 결과물이다. 그는 그 최악의 사례를 최선을 다하여 입증한 위인이 되었다.
자해와 망동의 파노라마
윤석열은 자신의 탄핵을 평결하는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서, 마땅한 사과 한마디 없이, 한 시간 넘도록 ‘개소리’를 지껄였다. 거짓말과 망상과 착각을 아무렇게나 섞어서 뱉어낸 그의 자기변론은 시종일관 역겨웠다. 그가 5천만 국민과 8천만 민족,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하여 한 문장의 진정한 사과를 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렸다. 끝내 하지 않았다. 쌍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그 변론내용 전부가 자해행위였기 때문이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바보 같은 언동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말들로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채웠다. 황당무계하고 해괴망측했다. 통째로 비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사람은 치료를 요하는 중증의 정신병환자였다. 현저했다. 우울증, 불안증, 고도의 스트레스가 그의 증상이다. 이는 십대 청소년 20%가 앓는 자해행위의 증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피부에 날카로운 칼로 상처를 내고 피가 나는 것을 들여다보며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기이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슬픔과 죄책감, 고통스러운 기억 등으로 인한 심리적 억압을 덜기 위하여,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하여, 힘들다는 말 대신 하는 또 다른 언어로, 자살직전에 보내는 구조신호로 자해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자해하는 10대들처럼 거짓말과 망상과 착각을 뒤죽박죽 섞은 언설로 스스로 ‘존재의 위기’를 드높였다. 이는 마치 날카로운 면도칼로 팔, 배, 허벅지 등에 상처를 내는 자해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사형(총살)이나,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형을 받게 된다. 강력한 징벌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전두환의 사례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혹시, 사법부가 그를 정신과의사들로 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결성하여 정신감정을 하지는 않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10차까지 이어진 변론과 최종변론은 그 내용 방향 전략 등 모든 면에서 정상인의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비율이 1:9도 아니고, 2:8도 아니었다. 0:10이었다. ‘0’이 고도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정신질환 판정을 받아 감형을 받거나, 석방되기 위하여 고도의 지능적 변론, 즉 광인연기(狂人演技)를 한 것은 아닐까.
그의 최종변론을 보면서, 한 여인이 생각났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의 그 ‘특별한 연설’을 보고 계실 그의 어머니다. 검색해보니, 90살 노인이다. 연세에 비하여 건강하시다면, 자당께서 급하게 정부에 탄원서를 넣어 아들 손을 잡고 정신병원으로 데려가실 것 같았다. 엄마의 마음은 젖먹이 아들이나, 예순 살의 아들이나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실상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들의 망동과 망언을 지켜보는 그의 노모가 마음에 걸린다. 실은 내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취임해서 지금까지 먹고살기 힘든 계층을 위하여 단 한 번도 좋은 생각, 따뜻한 마음으로 고민한 적 없다. 오로지 나쁜 짓만 해온 이 윤가놈을 어서 파면하고 사형선고하여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물론 사면복권 없는 종신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마음은 동식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편드는 사상이다. 그 관용을 본받고 싶다.
나도 사형제 반대론자다. 그런데, 이번 딱 한 번만은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12.3 계엄 같은 비상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 어느 날, 소시오패스가 하나가 또 다시 정권을 잡은 뒤에, 더 심각한 ‘망국조치’(亡國措置)를 펼칠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예외없이 허점과 약점을 내장한 채 구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품격정치를 위한 제언
1997년 12월 YS와 DJ가 전두환을 사형시켰더라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12.3 계엄도 없었을 것이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두환은 양김씨의 정권교체기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수감된 지 8개월 만이었다. 노상방뇨 단속하는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기억에도 없는 폭력을 쓴 취객쯤으로 봐준 것이었다.
전두환이 명이 길어서 사형을 면하고, 지금까지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면, 아니, 적어도 15년쯤 ‘콩밥’을 먹인 뒤에 사면했더라면 어땠을까. 풀어주기 전에, 수형생활에 관하여 다양한 의무규정을 마련해놓고, 자유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늘려주었다면 어땠을까. 그에 더하여, 광주시민들도 인정할 정도로 감동적인 참회록을 쓰고, 사실상 강탈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전재산을 5.18재단에 기부했다면 또 어땠을까. 전두환은 당연히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쳤을 것이다.
또 하나의 상상이다. 당시에, YS와 DJ가 그렇게 전두환을 처리하고 나서, 상징적으로 광주의 정치인 다섯 명을 부산에, 부산의 정치인 그만큼을 광주에 공천하고, 양쪽을 왕래하며 그들의 선거운동을 도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그 특별한 정치인들이 양김씨의 전성기 못지않게 의정활동을 하며 실망시키지 않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정치는 세계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K-Culture의 전위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법칙처럼, 각 나라의 정치인들이 모두 줄지어 찾아와서 학습하는 위대한 정치학교의 위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전두환 훈방조치'가 만든 부작용이 오늘 이렇게 흉포한 세상을 만든 것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전두환은 “전 재산 29만 원‘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맘껏 자유를 누리고 살았다. 죽는 날까지 사법제도를 능멸했다. 빛고을 광주, 이 땅의 착하고 의로운 씨알들을 지속적으로 모욕했다. 국격을 추락시켰다. 지금 이 시간,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은 모두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거대자금은 차명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내심 그의 죽음을 고맙게 여기며 안도했을 거다. 재산환수조치 당할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 때 만일 양김씨가 전두환을 사형시키면서, “대한민국은 오늘부로 사형제를 항구적으로 폐지한다. 아울러 노심초사하며 지옥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형수들 전원을 무기로 감형한다”고 온 세상에 공표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드라마틱한 인권선언은 온 세상을 감동시키며 인류사회의 자산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전두환 사형은 국제사회로부터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김씨는 지상최고의 품격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낭비해버렸다.
사법부와 차기정부가 윤석열에 대한 징벌을 결정할 때, 전두환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 그 엄중한 과정에서 필히, ‘천길 벼랑에 핀 꽃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순수한 마음을 높이 존중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이것이 7공화국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새 정부에게 지워진 의무와 도리가 천 가지라면, 이 품격이 맨 앞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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