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수습이 늦은 듯 결코 늦지 않으리라는 믿음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다. 런던과 파리에 사는 친구도 볼 겸 박물관과 전시회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의 여행이라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왔다. 한국이 해외에서 얼마나 높은 인기를 누리는지, 그리고 오늘날 한국 문화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한국음식, 케이팝, 한국 예술작품
우선 런던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너무 세서 놀랐다. 가는 곳마다 한국 음식점이 보이고 한글 간판이 보였다. 예전에도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한국 식당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중식집이나 일식집보다 그 수가 훨씬 많고 굳이 구글맵을 참조 안 하더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 한국음식이 대세라면서 시내 한 한국음식점에 들러서 친구와 점심도 한 번 먹었다. 비록 그날 먹은 미역국이 맛은 없었지만 이렇게 쉽게 사전 조사도 없이 런던 한가운데서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왔다.
런던의 중심거리인 ‘Oxford street’(서울로 따지면 명동 정도) 옷가게에서 길가로 흘러나오는 음악의 절반 정도는 케이팝이었고 ‘분식’이라는 런던 체인 한국음식점 문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런던은 예전에도 많이 가 본 도시지만 이런 정도로 ‘한국화’가 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음식과 음악뿐이 아니다. 영국의 모던아트 최고 갤러리인 테이트 모던 메인 홀에는 한국인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미래의 ‘Open wound(‘열린 상처’)’는 전시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상설 전시품 중에서도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종종 보였다. 서울에서 온 나는 런던 길가에서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 박물관에서 한국 예술인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국뽕을 매우 안 좋아하지만 이럴 때는 애국(?)의 마음이 안 차오를 수가 없다.
묻는 이나 답하는 이나 당황스런 질문 “한국이 요즘 왜 그래?”
하지만 다른 면도 있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산 경험이 있거나 최소한 한국 유경험자라서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반가워 했지만 모든 대화는 “한국이 왜 이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무 답답했다. 설명하려면 배경 설명까지 다 해야 해서 말이 길어질 뿐 아니라 너무 상황이 복잡해서 요약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대충 두어 마디로 어물쩍 넘어가 보려 하지만 그런 설명이 먹힐 리 없다. 다들 머릿속에 있는 대한민국 이미지와 실제 일어난 일이 서로 너무 안 맞아서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는 언론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숙소에서 TV를 켤 때마다 한국 관련 보도에 한숨 밖에 안 나왔다. 현재 국내 상황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심각하지만 아무튼 법 절차를 밟아서 사태가 수습 중이고 끝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외신 보도를 보면 마치 아프리카 급의 쿠데타가 일어나 나라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판하는 언론사는 없는 것 같지만 전반적인 보도의 뉘앙스는 딱 한 단어, ‘당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황.
외신은 로제의 ‘아파트’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미키17’만으로 도배되다가, 갑자기 후진국이 아닌 나라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내란 사태’라는 문구가 ‘코리아’이라는 국명 앞에 등장하니 다들 당황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Dynamic Korea’인가.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전혀 놀랍지 않은 나라인가, 다음에는 어떤 뉴스가 나올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그래도 한국은 빨리 이 사태를 수습할 거라는 믿음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를 때였다. 파리 공항은 워낙 규모가 커서 오가는 탑승객이 매우 많다. 짐 검사대 앞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담당 직원은 영어로 ‘천천히 들어오세요! 한 명씩, 한 명씩 부탁드립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시간 많습니다!’라고 줄을 관리했다. 반면에 귀국해서 인천공항 입국 소속대 앞에 사람이 몰리자 담당 한국인 직원은 “여권 케이스 미리미리 빼 주세요! 빨리빨리 움직이실게요! 빨리 들어가세요, 뒤에 사람이 밀려요!”라고 반복적으로 외쳤다.
역시 한국은 뭐든 다 빠르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계엄도 빨리 했고 해제도 빨리 했으니 수습도 빠르게 할지 모른다. 왜 이리 법 절차가 느리냐고 많은 사람들이 속터져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이 만일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다면 몇 년, 몇십 년이 걸려도 해결할 엄두도 못냈을지 모른다. 앞으로 한국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확실히 단도리만 할 수 있다면 이 속도는 결코 느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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