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이 통제하고 싶은 표현의 자유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형성해 준다. 우리가 아무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사고도 자유로워진다. 거꾸로 우리 생각을 제한하려면 언어를 통제하면 된다. 권력자들은 이를 잘 안다. 그래서 독재 정권이 가장 먼저, 늘 하는 것이 말, 즉 표현의 통제다. 말을 못하게 하거나, 싫어하는 표현을 완곡하게 바꿔서 사용함으로써 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고 한다. 지금 탄핵 심판 대기 중인 대한민국 대통령 직위에 있는 분의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도 그렇다. 그의 입에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한 말이 나와서 매우 놀랐다. 독재자, 혹은 ‘독재 지망생’이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많이 닮았다.

크림반도 점령이 ‘합병’ 아니고 ‘탈환’이라는 완곡어법

러시아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2014년 3월에 일어난 크림반도 합병 사건을 두고 친푸틴계와 반푸틴계가 서로 다른 말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군사적으로 합병 했는데, 이를 정당화 하는 친정부 언론은 ‘탈환’ ‘고향으로의 귀환’ ‘긴 여정의 행복한 마무리’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 땅이고, 역사적 굴곡 때문에 잠깐 헤어져 산 기간이 있었으나, 드디어 이 세상의 이치에 따라 ‘우리 것이 다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의 표현’이었다.

반푸틴계는 이 사건을 오로지 ‘합병(annexation)’이라고 불러 왔다.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무력으로 점령했다는 ‘생각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2014년부터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누가 어떤 표현을 쓰는지 보면 바로 그의 정치적 입장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특정한 말 사용은 어떤 세력에 속해 있는지를 밝히는 소속감 표현의 수단이 됐다.

그 이후에도 러시아 정부가 이런 식으로 러시아어에서 많은 완곡어를 만들어 왔다. 그 중 일부는 인터넷 속 밈도 되어 버렸다. 서방 제재의 영향을 열렬히 부정했기 때문에 러시아 GDP나 경제 규모의 성장 수치가 하락하는 것을 ‘부정적 성장(negative growth)’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루블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부정적 성장 조정 (negative growth correction)’이라고 불렀다. 아파트 단지 내 낙후된 시설로 인한 가스폭발은 ‘시끄러운 쿵 소리(clap)’라고 일축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도 역시 그렇다. 푸틴은 이를 처음부터 ‘특별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고 불러 왔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게 생겼다. 예전에는 그래도 현상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별 조치가 없었는데 2022년 2월부터는 ‘특별군사작전’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말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러시아가 가해자인 것처럼 안 좋은 어감이 들까 봐 표현을 왜곡해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다른 혀로 비슷한 말 쏟아내는 독재자들의 입

이처럼 말은 독재의 수단이 되었다. 대통령 윤석열의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특별히 귀에 거슬린 표현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와 ‘소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인가’다. 말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이 표현을 해석하자면 “내란은 길게 해야 내란이지, 2시간만 잠깐 하면 내란이 아니다.” “폭동은 대규모의 병력을 오래 투입해야 폭동이지, 잠시 그리고 소수만 했으니 폭동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보인다. 잠깐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해서 일부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빨리 하는 것은 ‘특별군사작전’이지, 전쟁이 절대 아니라는 표현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논리다. ‘명품백’을 ‘작은 파우치’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사건’으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현상을 아주 잘 그려 주는 소설이 바로 조지 오웰은 ‘1984’이다. 소설 속에서 이런 꼼수를 ‘신어’라고 부른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신어는 ‘사고의 폭을 좁혀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당에게 반역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가 되어 있다. 딱 현 러시아 상황이다.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보면서 한국도 그쪽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닐까, 매우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