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지만 요즘은 아주 발가벗고 나서는 ‘일등 신문’

김의겸 전 국회의원
김의겸 전 국회의원

<조선일보>의 왜곡·편파 보도는 새삼스러울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발가벗고 나서는 경우도 흔치는 않았다. 사례야 차고 넘친다. 하나만 꼽자면 서울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다룬 기사들이다. “법원이 공격받을 짓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투다. ‘법과 질서’를 목놓아 외치던 <조선일보>가 맞나 싶다. “기자의 펜이 독사의 혀가 되는구나” 싶은 사람들도 적잖을 것이다.

박근혜 때와 비교해도 요즘 탄핵 국면을 다루는 <조선일보>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8년 전 박근혜 감싸기는 없었다. 아예 입을 닫으면 닫았지 박근혜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지는 않았다. 당시 박근혜는 <조선일보> 지면에서 ‘잊혀진 여인’이었다.

박근혜는 버리고 윤석열은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이유

하지만 윤석열은 여전히 살아있는 대통령이다. <조선일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작은 것들부터 한번 짚어보자.

첫째, 인연이 다르다. <조선일보>와 박근혜는 애초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다. 2008년 대선 경선 때 <조선일보>가 노골적으로 이명박을 밀면서 박근혜와 감정의 골이 생겼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놓고 꽤나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조선일보>가 낳은 옥동자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사주 방상훈과 비밀회동을 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권의 꿈이 이때부터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는 게 세간의 관측이다. 그 이후 <조선일보>는 고비고비마다 윤석열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명성을 드높여주었다. 윤석열을 키운 건 8할이 <조선일보>였다. 적어도 <조선일보>로서는 그런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조선일보>를 너무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아닐까? ‘옛정’ 따위에 흔들릴 <조선일보>가 아니다.

 

1974년 10월 24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원로 언론인들이 해직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2024. 10. 24 사진 강기석 에디터
1974년 10월 24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원로 언론인들이 해직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2024. 10. 24 사진 강기석 에디터

둘째, 독자들의 영향이다. 모든 언론사는 독자층의 요구와 시장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때 아픈 경험이 있다. TV조선 이진동 부장이 ‘박근혜 의상실 CCTV’ 등으로 특종을 이어가자, 꿈도 꾸지 못했던 포상금 5천만 원을 주며 격려했다. 부국장 승진도 시켜줬다. 그런데 태극기부대가 <조선일보>를 에워싼 채 욕설을 퍼붓고, 독자들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자 <조선일보>의 태도가 급변했다. 조사위원회를 꾸려 이진동을 취조하듯 몰아부쳤고, 엉뚱한 이유로 그를 쫓아내 버렸다.

<조선일보>는 이런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독자에 충성하는 게 살길이라는 전략 말이다. 게다가 요즘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하도 높다보니 눈치를 볼 법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조선일보>를 너무 왜소하게 바라보는 것 아닐까? 천하의 <조선일보> 아니던가? 게다가 요즘은 구독자에 의존하던 시대가 지났다.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북 치고 장구 치며 이재명 악마화 앞장 선 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

셋째, 이재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재명을 범죄자로 몰아간 것은 윤석열 검찰이지만, 옆에서 북치고 장구치며 이재명 악마화에 가장 앞장선 건 <조선일보>였다.

‘대통령 이재명’은 악몽 중의 악몽일 것이다. 게다가 이재명은 어떤 대선 후보도 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조선일보 OUT’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것이다. 그때 어떤 자리에서 내가 이재명 대표에게 ‘상당히 상징적이다’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저들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서서히 오랫동안 때려서 (나를) 죽일 것이다. 결국 정면승부다. 죽더라도 악 소리하고 죽어야 한다.” “어차피 저들은 총공세인데, 첫 깃발을 조선일보가 들고 있는 것.”

우리 옛말에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고 했다. <조선일보>로서는 이재명을 막을 수만 있다면 윤석열을 업고 다니고 싶지 않을까? 이 추론은 어느 정도 논리적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재명이 대통령 됐을 때 실제 <조선일보>를 손 볼 수 있느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윤석열조차도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초갑’”이라고 하지 않았나?

결론적으로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불안’이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 주역의 자리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조선일보>는 1980년 전두환 때부터 한국 사회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 있었다. 한번도 내려온 적이 없다. 이로 인해 누려온 부귀영화는 일일이 셀 수가 없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을 것도 많은 법이다. 잃을 게 많으면 두려움도 커진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하지만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정치지형이 바뀌고 사회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조중동 카르텔’ 붕괴, <조선일보> 홀로 ‘극우’로 버틸 수 있을까?

그 충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게 ‘조중동 카르텔’의 붕괴다. <동아일보>는 사실 탄핵 이전부터 윤석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찌감치 카르텔에서 이탈하는 조짐을 보여왔다. 내란 이후에는 태도가 분명해졌다. <중앙일보>는 대체로 ‘순한 맛 조선일보’였으나, 내란을 기점으로 조선과 분명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윤석열의 탄핵이 매듭지어지면 우리 사회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일보>가 그 흐름을 거스를수록, 내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윤석열을 감쌀수록 역사의 물결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고 매를 버는 격이다.

<조선일보>는 계속 극우의 길로 치달을 것인가?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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