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은 단순 정권교체 아닌 보수주류의 몰락
대한민국 헤게모니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
겸손이 아니라 개혁의 성과 만들 준비 할 때
‘무조건 통합' 아닌 원칙있는 재편과 주체적 연대 필요
4월 4일 윤석열 파면 직후부터 ‘통합’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그동안 심하게 다퉜으니 이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이다. 7일자 <한겨레>에 실린 강준만 교수의 칼럼도 통합의 미덕을 강조한다. ‘극우를 가두는 원을 그려야 하나’라는 제목의 이 글은 “극우를 가두는 원을, 그것도 크게 그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강준만 교수라면,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랑받는 ‘진보 지식인’의 공자 말씀 ‘통합’
강 교수는 <조선일보>와 만나서는 민주 진보 진영에 대한 독설을 쏟아내 <조선일보>로부터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한겨레>에는 점잖게 공자 말씀을 늘어놓는 칼럼을 쓰면서 ‘진보 지식인’이라는 호칭을 유지한다. 두 대척점에 서 있는 언론사를 한 몸에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능란한 처세술이다. 하지만 이런 책략이 정부 차원에서 가능할까? 아니 윤석열 이후를 책임져야 하는 정권이 취해야 할 전략일까?
8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했다. 가슴이 쓰리지만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 많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핵심적으로 개혁을 관철할 주력군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통의 목표와 가치를 공유한 세력, 흔들리지 않고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주체가 미약하거나 부재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개혁에 맞선 저항세력의 힘은 강고했다.
윤석열의 파면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보수 주류 질서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는 박근혜의 파면과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헤게모니가 전환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다. 국민 다수는 기존 권력 질서에 대한 거부감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개혁’ 자초한 ‘개혁 저항세력’, 검찰-국힘-언론 카르텔
지금은 8년 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실화된다면 그 여건은 더욱 나아질 것이다. 이른바 검찰-언론-정당 카르텔만 봐도 그렇다.
과거 문재인 정부 때 검찰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아니 적폐청산 과정을 거치며 근육을 더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검찰은 이제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될 처지에 놓였다. 12월 3일 이후 심우정 검찰총장이 보여준 행태는 검찰이 들어가 누운 관뚜껑에 대못을 박는 행태로 비쳤다. 이제는 검찰의 장례식에서 그 누구도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없다. 경찰, 군대, 국정원에 이어 대한민국 기득권 카르텔을 떠받쳐왔던 마지막 물리력 검찰이 사라지는 것이다.
국민의힘 역시 내부적으로 붕괴 조짐이 역력하다. 겉으론 단단히 결속한 듯 보이나, 내부에서는 골병이 깊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12월 3일 하루만 놓고 본다면 윤석열 개인의 쿠데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이 윤석열 편에 섰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헌법과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버릴 정당이 국민의힘이라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됐다. 분리되지 않고 뭉쳐 있음으로 인해 내부갈등은 더 고조될 것이다. 홍준표와 한동훈이 한 지붕 밑에서 한 살림을 해나가는 그림을 그려보라. 이처럼 갈등이 내재화된 구조는 언젠가 반드시 폭발하게 마련이다.
언론의 경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박근혜 시절엔 언론사들이 시기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박근혜를 비판했다. 비판한 정도가 아니라, 근거없는 내용까지 기사화할 정도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에서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이 끝까지 정권을 비호했고 탄핵에 반대했다. 이는 언론 권력이 윤석열의 공범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윤석열의 몰락은 곧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개혁의 시점을 현실화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겸손하거나 자신을 과소평가할 때 아니야
지금은 김대중 시대가 아니다. 정권을 얻기 위해 김종필에게 구차하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때가 아니다. 늘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은 지난 2016년 선거 때부터 다수당이 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자신의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 일을 자신있게 처리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했고, 민주 진보 진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 그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느냐이다. 겸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류를 교체한다는 건 단순히 대통령을 바꾸는 게 아니다. 권력구조, 경제질서, 문화와 가치관, 역사인식 등 사회 전반의 헤게모니를 바꾸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과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개혁세력은 강력한 개혁 동맹 만들어 개혁 나서야
우선, 개혁세력은 자기 정립이 분명해야 한다. “통합하자, 배제하지 말자”는 말은 아름답지만, 통합은 자칫 무원칙한 타협으로 흐를 수 있다. 개혁 주체가 약하면 결국 해내야 할 일도 흐물흐물해진다. 원칙 없는 통합은 개혁의 본질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다.
언론 문제만 해도 <조선일보> 사주와 타협해서 언론 환경을 바꾸겠다는 발상이 현실성이 있을까? 국민의힘과 합의하에 언론관련법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렵다.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언론개혁은 누더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동맹을 만들어낸다면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언론노조 등 현장기자들과 연대가 이뤄진다면, 시민사회와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들이 든든한 주력군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정부에서 거부권 행사로 좌초된 방송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약속부터 실천하고, 이후 <네이버>에 종속돼 있는 유통구조를 대체할 공공플랫폼 구축이나 정부 광고의 공정 분배를 위한 법제화 등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언론사 소유구조의 투명화까지도 추진할 수 있다.
5년의 운명은 앞으로의 두 달에 결정된다
민주 진보 진영은 두 달간의 선거 기간 동안,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해야 한다. 5년의 운명은 첫 해에 결정되고, 첫 해의 성패는 선거 기간에 어떤 과제를 도출해내고 어떤 개혁연합을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수위조차 없이 시작해야 하는 선거이기에 더욱 전략적이고 준비된 접근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원칙 있는 재편과 주체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 이제는 그 출발선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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