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 전원회의, 의도적인 남한 외면
남북관계 규정, 정전협정 밖에 안 남아
‘남북기본조약’으로 평화공존 제도화를
평화공존, 법·제도 개혁으로 뒷받침해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과 분단 8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해이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미국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국제정세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하고 위험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윤석열 패당의 12.3 내란사태로 정국이 혼돈 속에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리더십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조기 파면 결정으로 하루빨리 리더십 공백 사태를 해결하고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맨 먼저 우리 민족의 ‘아픈 손가락’인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대안을 모색해 본다.
굳어져 가는 남북한 두 국가관계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북한이 각종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한반도 안보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북한은 단순 보도와 김여정 당 부부장의 조롱성 담화 이외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 23~27일 닷새간 열린 제8기 11차 당 전원회의에서도 아무런 대남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2024년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한국에 대해 딱 한 번 언급했다. 그는 반공을 국시로 한 미국의 적대성, 미·일·한 동맹의 침략적인 핵군사블럭, 대한민국의 반공 전초기지 등 3가지를 거론하며 ‘전망적인 국익과 안전보장을 위하여 최강경 대미 대응전략’을 채택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한국을 핵군사블럭의 일원이자 반공 전초기지로 규정한 것뿐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대남 무관심은 2023년 12월 말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10월 7일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은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한국)를 의식하지도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김정은이 ‘남조선해방’이나 ‘무력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천명한 것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말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한다는 명분이 근거가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최근 태도가 당장은 윤석열 패당에게 종북 운운하는 빌미를 주지 않고 적어도 북한발 군사충돌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외면하고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길게 본다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단절과 적대가 오래되면서 각종 군사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구분단으로 고착돼 서로 ‘외국’으로 남게 될 뿐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를 방치해 놓아서는 안 되며, 어떻게든 관여의 틀을 유지해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해야 한다.
남북관계, 정전협정 빼고는 무규정 상태
현재 남북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법규범은 남북이 동시에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 유엔헌장과 1953년에 체결한 한반도 정전협정뿐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규정해 왔던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판문점공동선언’ ‘9.19군사합의서’ 등은 모두 파기되거나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헌장의 규정에 따르면, 남북관계는 두 주권국가 간의 관계이고, 한반도 정전협정에서 남북관계는 ‘교전관계’이다. 아직까지 한국전쟁의 종전이 이뤄지지 못했으니, 남북한은 여전히 국제법적 전쟁상태(state of war in law)에 있다. 그런 점에서 현 남북관계는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는 규정만 남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서로 합의를 통해 양자관계를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류협력을 진행해 왔다. ‘7.4공동성명’으로 정치적 실체를 인정해 정부간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기본합의서’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인정해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을 시행했다. 비록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했지만, 아직 남북이 합의한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는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로 행동하고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민족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1국가 지향의 특수관계’이다. 특히 국내적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이 바뀌지 않는 한, 학자나 시민운동가는 몰라도 정부나 국회의 관계자들은 ‘두 국가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1국가 지향의 특수관계’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조를 들어 이를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런 점에서 ‘1국가를 지향하는 특수관계’와 ‘두 국가관계’의 중간단계로서 두 개의 국가지위, 두 국가성(two statehood)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서독이 체결한 ‘기본조약’에서 사용된 개념이다.
국가성(statehood)이란 현실적으로 국제법 주체로서 상대의 국가지위를 인정하되 ‘외국’은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개의 국가(state)를 인정하는 것과 두 개의 국가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법규범 상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라도 국가성 개념을 도입해 남북관계를 평화공존의 관계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동독의 국가성(statehood)을 인정한 것에 대해 서독에서 논란이 됐지만, 서독 헌법재판소가 합법 판결을 내린 것은 서독정부가 동서독 통일과 법적 통일성 및 동독 주민의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 조성렬, “김정은 적대적 2국가관계론과 임종석 통일 포기론”
평화공존 위한 남북기본조약의 중요성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앞두고 발표한 12.12 담화에서 거대야당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도발, GPS 교란, 오물풍선에 동조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 편을 든다며 반국가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내란 세력들은 야당과 민주인사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탄압의 구실로 북한을 들먹이고 있다.
이번 12.3 내란사태에서 보듯,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극우세력의 도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북 적대관계는 오히려 극우세력에게 힘을 키울 빌미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패당과 같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내란 세력이 다시는 등장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공존 관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서독의 경험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의 출구전략을 찾기 위해, 남북 교류·협력의 궁극목표가 통일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북한 주민의 보호 의무도 게을리하지 않되 헌법 4조의 평화통일 규정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통일을 정책적으로 추진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남북관계를 재규정할 ‘남북기본조약’을 추진한다. 합의서가 아닌 조약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비준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남북기본조약에는 기존 남북합의서의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는다. 남북한은 △상호 국가적 실체의 인정과 선린관계의 발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무력사용 포기와 불가침 △인도적 문제의 해결을 포함한 교류·협력의 추진 △각자의 관할지역에 국한된 국가권력 행사 △기본조약과 헌법, 법률의 상호 영향 배제 △양측 정부를 대표한 상주대표부 교환 설치 등이다.
이같이 남북관계를 평화공존의 관계로 재규정한 뒤에 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미·중 대립구도의 심화 속에서 동아시아 질서의 현상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평화체제 구축을 곧바로 추진하기 어려울 경우, 이에 앞서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새로운 군비통제 협상을 모색한다.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토대로 일부 변화된 상황에 맞게 새로운 군사합의서를 체결한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남북한 군비통제와 연계하지 않고 병행해서 추진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선 북한의 핵개발 동기가 됐던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여 동북아 역내국가들과 교차승인을 완성함으로써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국제안보환경을 만들어간다.
민주주의 공고화 위해 법·제도 개혁 필요
이번 12.3 내란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 사회의 압축적 민주화가 가져온 양면성이다. 한 면은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민중의 힘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여전히 남아있는 반민족적인 극우 맹동세력의 준동이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감한 개혁을 통해 이러한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북기본조약의 체결이나 새로운 남북군사합의서 채택 외에, 국내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적대적인 제도와 법령들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에서 반통일부로 전락한 통일부와 반민족, 반통일의 선봉에 선 민주평통자문회의를 취지에 맞게 정상화해야 한다.
아울러 최근 남북 군사적 긴장의 원인이 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또한 국가보안법 가운데 악용 소지가 있는 조항들의 개정 또는 형법으로의 편입도 검토가 필요하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흡수통일론의 근거가 되고 있는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도 재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천하의 흥망성쇠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등 우리 민족의 운명은 민중의 손으로 만들어져 왔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남아있어 속단은 금물이지만, 이번 12.3 내란 사태가 대통령 파면으로 결론 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관계도 적대적 공존 관계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관계로 나아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승리의 그날까지 고삐를 늦추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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