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윤석열 탄핵 국면이 전혀 다른 세 가지
이번엔 북한의 안보 위협 없다…18시간 경계만
트럼프, 북핵 관리 토대 물밑서 북미대화 준비
헌재 결정의 속도에 달린 외교 안보 불안 요소
위기관리체계 즉시 가동, 리더십 공백 대응을
대통령 윤석열(이하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빙자한 12.3 내란 사태로 한국의 정정이 크게 불안해지고 외교 일정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군대를 무단 동원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로 한미동맹마저 위험해졌다. 미국의 정권 이양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을 순방할 예정이던 오스틴 미국 국방방관의 방한이 취소되고, 워싱턴에서 개최 예정이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제4차 회의 및 제1차 NCG 도상연습(TTX)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주한 미 대사관의 영사업무가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하루 전 방한을 전격 취소했고, 내년 1월 초 이시바 일본 총리의 방한을 사전 조율하기 위한 스가 전 총리의 방한, 카자흐스탄 국방장관의 방한도 취소되었다. 방한 중이던 자라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한국형 기동헬기를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비상계엄으로 급히 돌아갔다. 윤석열이 내란 혐의로 입건되면서 상당 기간 정상회담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등 외교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석열의 대통령직 직무정지로 리더십 공백기를 맞고 있는 현 대한민국의 위기는 2016년 12월~2017년 5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과 유사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그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졌고,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윤석열이 탄핵 소추되었다. 하지만 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북한의 태도, 국회의 의석분포, 군 지휘부의 존재 등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박근혜 탄핵국면, 한반도 전쟁위기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그 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이튿날인 5월 10일 정권의 인수인계도 없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개시까지 한국은 5개월의 리더십 공백기(2016.12.9.~2017.5.9)를 겪었다.
한국의 리더십 공백기는 공교롭게도 2016년 11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듬해 1월 20일 취임한 뒤 ‘100일 계획’을 발표한 기간과 거의 중첩된다. 당시 북한이 2016년 5월 당대회를 개최한 뒤 본격적인 핵미사일 개발에 나설 때여서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안정했다. 36년 만의 당대회였다.
2017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그 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5월 10일까지 6회 9발, 출범한 뒤 그해 말까지 9회 11발 등 2017년 한 해에만 15회 20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다. 이는 김정일 시대(1998~2011)의 13년간 9회 16발의 시험발사를 초과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리더십 공백기에 북한의 도발을 우려해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고위급 인사들을 잇달아 파견하였다. 2월 2~3일 매티스 국방장관, 3월 17~18일 틸러슨 국무장관, 4월 16~18일 펜스 부통령이 방한했다. 이들의 방한 목적은 한국 방위에 대한 미국 신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오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계속되었다.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처음으로 시험발사한 데 이어 7월 28일 재차 발사했다. 9월 3일에는 수소폭탄을 이용한 제6차 핵실험을 실시하였으며, 마침내 11월 29일 ICBM 화성-15형의 시험발사 성공 뒤 정부성명을 통해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였다.
미 국방정보국(DIA)는 7월 28일 평가보고서를 통해 화성-14형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군사행동 장전 완료’ 등 발언을 통해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북한은 괌도 주변 4곳에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예고하며 반발했고, 이에 8월 13-14일 던포드 합참의장, 8월 20~22일 미 태평양사령관·전략사령관·미사일방어청장 등 미군 고위 인사들이 잇달아 방한해 북한의 오판을 견제했다.
이처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제의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 선언’과 한국의 동의 없는 대북 군사행동을 반대한 ‘8.15 대통령 경축사’ 등을 계기로 점차 완화되어 갔다. 마침내 문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연기를 발표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는 등 적극적인 상황관리를 통해 2018년 한반도의 봄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탄핵국면, 북한은 왜 조용한가
박근혜 탄핵이 대통령의 직무유기와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윤석열 탄핵은 군대를 불법으로 동원한 대통령의 내란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를 통한 계엄설’은 일찍부터 나돌았다. 그런데 국민의 저항과 국회의 침착한 대응으로 12.3 내란이 무산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찍부터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한 것을 넘어 유도함으로써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군이 대남 오물풍선 투하로 대응하자 지난 10월 8~9일 드론작전사령부의 무인기를 심야에 평양 상공에 보내 전단을 대량 살포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의 오물풍선이 계속 남쪽으로 떨어지자, 지난 11월 28일 김용현 국방장관은 합참에 북한군의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합참의장이 정전협정 위반과 국지전 위험성을 제기해 실행되지 않았다.
국지전 유도가 실패하자 윤석열은 북한의 도발이 없음에도 12월 3일 22시 23분 부로 비상계엄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12월 4일 새벽 1시 1분에 국회의원 190명이 참석해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한 뒤,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계엄사가 해체되었다. 12월 14일 국회에서 재적의원 2/3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이 의결되면서 윤석열의 대통령직이 직무정지되었다.
향후 일정은 2025년 6월 14일 이전에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엔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윤석열이 12.12 담화를 통해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탄핵심판에 대한 정면 대응을 선언하며 헌재 심판을 지연시켜 지지세력을 결집할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내란 사태의 시말이 분명한 만큼 2~3개월 내에 헌재 심판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박근혜 탄핵 국면 당시와 비교할 때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동향이다. 북한은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부가 계엄포고령 1호를 발효하자, 12월 3일 23시경부터 4일 오후 5시까지 18시간 동안 북한군에게 전군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12월 11일 『로동신문』을 통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및 탄핵 추진 상황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북한이 한국의 내란사태을 주시하면서도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김정은이 연초에 공개한 두 국가론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에 준하는 보도 수위를 유지한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비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를 위한 도발을 회피하고 경계만 강화한 채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트럼프와 '케미' 안 맞는 윤석열
만약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되지 않은 채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했다면, 외교안보적으로 더 큰 일이 날뻔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는 바이든 행정부의 지향점과 어느 정도 부합했지만, 트럼프의 국익 외교와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양자주의를 선호하는 데다가 바이든 지우기(ABB)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핵 관리를 기본 틀로 하는 북·미 직접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18~19년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를 맡았던 알렉스 웡을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임명하였고,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 대사를 북한, 엘살바도르 등의 국제현안을 담당하는 특임대사에 지명했다. 조기에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대 외교성과라고 자찬한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의 구축도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은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금년 7월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각서 체결 및 11월 한미일 안보협력사무국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의 주역인 기시다 총리는 이미 퇴진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곧 퇴임 예정이며 윤석열은 탄핵 소추되어 3자 안보협력의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 러시아를 둘러싸고 미국 신정책과의 딜레마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역외균형 전략에 따라 대러, 대북 접근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북․러 접근을 비난하며 최근 대러 적대시 정책 및 대중 접근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대러 접근 및 반중 전선 강화와 윤석열 정부의 대중 관계개선 움직임 사이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윤석열 정권이 유지됐다고 해도 낮은 지지율 탓에 트럼프 행정부와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대통령이 이미 정통성을 상실해 한·미관계와 한·미·일 3각 공조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거국적 위기관리체계가 필요한 까닭
향후 한국의 리더십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한국 외교의 전개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지 기각될지 여부이다. 결국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박근혜 탄핵과 윤석열 탄핵의 다음 세 가지 특징을 비교할 때 헌재의 윤석열 탄핵 인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 위협의 여부다. 박근혜 탄핵 당시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등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핵군축론을 내세워 북미대화를 준비하고 있고, 북한도 강선단지의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하고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등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둘째, 국회 의석수의 분포다. 박근혜 탄핵 때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122석, 민주당 123석, 국민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보수정당(새누리당+국민당) 의석이 더 많았다. 현재는 국민의힘이 108석, 민주당 170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진보당 3석, 사회민주당 1석, 기본소득당 1석, 무소속 2석 등 민주진보세력이 187석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셋째, 계엄 지도부의 건재 여부이다. 박근혜 탄핵 국면 때는 계엄군 지도부가 그대로 유지돼 있었고, 만약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었을 때에 대비해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비상계엄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방장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친위쿠데타 주역들이 모두 체포, 구속되어 제2의 친위쿠데타를 모의할 구심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처럼 윤석열 탄핵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하기 전까지 한덕수 대행체제 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국회와의 소통과 협의 △비정파적이고 초당적인 협력 △새 정책의 추진이 아닌 상황관리에 주력할 것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덕수 대행체제의 한계가 분명한 가운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정안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친윤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여당이며 당정협의를 통해 책임정치를 해 나가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당정협의에 의한 책임정치는 국회의 계엄령 해제 결의 직후 윤석열이 제안한 한동훈-한덕수 당·총리 공동운영 방안과 같은 초헌법적인 방식이다.
현재 트럼프 2.0시대가 몰고 올 국제정세 변화의 태풍은 권성동 대표가 국내 정치게임의 차원에서 바라볼 만큼 만만하지 않다. 트럼프 2.0시대는 경제·통상은 물론 외교·안보와 남북관계에도 일대 격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이때, 리더십 공백 사태를 맞아 어느 때보다도 초당파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맞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의결한 윤석열 탄핵소추를 조기에 인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재확인하고 다시는 이러한 친위쿠데타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또한 탄핵심판 일정을 앞당겨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조기 대선을 통해 새 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한국외교의 방향 전환을 추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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