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남태령으로, 한남동으로 달려간 이유

괴물을 뽑은, 약자를 외면한, 과거가 부끄러워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끝장내려고

다시는 역사에, 후손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신동진 마을활동가
신동진 마을활동가

불이 났는데 불은 안 끄고, 불 끈 뒤 집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얘기한다는 게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해 그동안 ‘공정귀촌’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글 쓸 힘이 있으면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내란 세력을 물리치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란 이후 선량한 주권자들이 고백한 부끄러움의 편린들은 마치 눈처럼 차곡차곡 내 마음에 채워져 결국 이렇게 글 쓸 작심을 하게 만들었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과 그 일당이 일으킨 내란을 막고, 나라를 지키고자 주권자들이 나섰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들, 동영상들 속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얘기하는 ‘부끄러움’이었다.

“12월 3일 국회에서 쿠데타군을 막아준 분들에게 부끄러워서 나왔다.”
“우리나라가 너무 창피한 나라가 될 것 같아서 나왔다.”
“추운 거리에서 탄핵 집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나왔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세상을 물려줄 수 없어서 나왔다.”
“윤석열을 뽑은 게 부끄러워서 나왔다.”
“과거의 저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이번에는 거리로 나왔다.”
“훗날 역사책에 쓰일 지금, 이 순간에 누나는 뭐했냐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왔다.”

 

2024년 12. 7. MBC뉴스투데이 화면 갈무리
2024년 12. 7. MBC뉴스투데이 화면 갈무리

부끄러움 아는 시민들이 부끄러움 모르는 자들에 맞선 빛의 혁명

나도 가족과 함께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었다. 나 역시 임금의 나라를, 천황의 나라를 종식시키고 빼앗긴 나라를 헌신하며 되찾아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의병과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갔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인간의 4가지 본성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중 의(義)에서 발현되는 마음이라고 했다.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양심이자 도덕적 자각이 수오지심이다. 자신의 손에 왕(王) 자를 새겼던 윤석열은 마치 ‘제왕무치(帝王無恥)’ 즉 ‘왕은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 라는 전제 군주 시대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무치, 무도함을 거침없이 온 세상에 드러냈다. 인간이 갖춰야 할 본성이 거세된 소시오패스임을 입증한 것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내란을 옹호하며 의원들에게 “얼굴 두껍게 다녀야 한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후안무치(厚顔無恥),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공자는 “법치로 다스리면 백성이 부끄러움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내란 세력들은 그동안 법을 집행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치외법권자로서의 의식을 갖게 된 모양이다. 결국 불법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진, 인두겁을 쓴 파렴치한 괴물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 부끄러움은 주권자의 몫이 되었다. 주권자의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주권의 대행자들을 보며 의분(義憤)에 북받친 주권자는 불의를 물리치는 빛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빛은 그동안 어둠 속에 있던 부끄러움을 비추기 시작했다. 바로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했던 부끄러움. 이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일어난 연대는 12월 21일 남태령에서 1894년 꺼졌던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전남과 경남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출발한 ‘전봉준투쟁단’ 트랙터가 6일 간 달려와 서울 진입을 앞두고 남태령에서 길이 막혔다. 이 길을 뚫은 주력은 2030 도시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심야에 남태령으로 달려간 이유에도 부끄러움이 있었다.

“살수차에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일이 마음의 빚이다. 어떻게든 농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농민 분들 사정에 너무 무지했다는 걸 알아서, 너무 부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막차 타고 왔다.”

 

2025. 1. 1. SBS 8시 뉴스 화면 갈무리
2025. 1. 1. SBS 8시 뉴스 화면 갈무리

성별도 세대도 지향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 만든 ‘대동의 남태령’

‘전봉준 투쟁단’은 2015년 백남기 농민 사망 때 처음 조직됐고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때도 등장했지만 당시 도시민들은 그들을 외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다름을 만든 2030 도시 여성들이 참여한 동기가 바로 ‘부끄러움’ 이었다. 헬조선에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특히 윤석열 정권이 젠더 갈등 프레임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면서 만들어진 마초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현 시대 기층의 삶을 살게 된 2030 여성들은 그동안 외면했던, 수백 년 기층 민중으로 살아온 농민과 부끄럽게 직면했고, 그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내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2030 여성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서 민중가요로 만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만든 세계는 부끄러움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였고, 그 세계는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이 만들고자 했던 대동의 세계였다. 전봉준투쟁단 총대장,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그 감격을 이렇게 남겼다.

“여러분! 역사는 지난 이틀을 ‘남태령 대첩’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저 이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혐오와 차별 속에 주류사회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노인, 도시빈민, 농민이 만든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성별도 세대도 지향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연대를 넘은 ‘대동의 남태령’을 열어냈기 때문입니다.”

 

2024.12.23.  게시글 사진 갈무리
2024.12.23. 게시글 사진 갈무리

내란 종식 후 빛의 혁명이 이룰 새 세계에 대한 희망

2024년 12월 21일 밤부터 22일 오후까지 남태령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억눌림을 받았던 사회적 약자들의 발언이 자발적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빛의 혁명은 그동안 어둠 속에 있던 부끄러움을 공감과 연대의 무대에 주역으로 등장시켰다. 그 연대의 힘이 결국 대동세상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이 내란 이후 빛의 혁명이 사회대개혁 연대로 나가고 그 대개혁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130년 간 우금치를 넘지 못했던 농민의 전진을 도시의 기층 민중과 손잡고 함께 이뤄낸 ‘남태령 대첩’은, 평소 도농상생과 풀뿌리 자치를 위한 공정귀촌을 주장하는 내게 내란 종식 후 다시 만날 세계가 이전의 도시 중심 세계가 아닐 것임을 보여주는 희망의 빛이었다. 몰염치한 정권의 벽을 뚫은 ‘남태령 대첩’은 빛의 혁명이 내란을 종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해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촌을 착취했던 도시의 부끄러움.
생명을 말살하며 만물의 영장을 자처했던 부끄러움.
미래 세대 삶의 터전을 망가뜨린 기성세대의 부끄러움.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을 권력자로 길러낸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관성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내란을 끝내는 과정에서도, 끝낸 이후에도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여는 저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주권자를 죽이고 독재를 했어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세력을 추종하며 그 패륜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 내려 했던 윤석열과 그 괴뢰도당이 일으킨 내란은 부끄러움을 자각한 주권자의 손에 끝장날 것이라 믿는다. 마침 올해가 을사년이라고 하니 윤석열과 그 일당이 비상계엄 상태에서 120년 전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친 역사를 올해 재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소름 끼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란을 내전으로 만들려는 반동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그 끔찍한 상상이 혹시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깔끔히 떨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훗날 12.3 내란은 역사에 이렇게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도당은 내란을 일으켰고, 부끄러움을 아는 주권자는 내란에서 나라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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