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 묻은 흙에서 느끼는 산불 이재민들의 슬픔
내란으로 천불 난 가슴에 기름 부은 최악 산불
이 봄, 반생명적 폭거 일으킨 법비들 다듬질도 다짐
봄풀이 지천이다. 초봄, 작물을 심기 전 봄풀은 나물이 돼서 식탁을 채워준다. 봄풀이 이렇게 풍요로운지, 귀촌해서 농사를 짓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들인 공 없이 자연이 아낌없이 주는 봄풀로 인해 내 삶을 하늘과 땅이 넉넉히 지지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봄풀 캐는 얼치기 농부의 땀을 식히는 바람이 분다. 그런데 그 바람 끝에 걱정 한 자락이 남는다. 산불 때문이다. 경상남북도의 산불은 여태껏 산불 규모 중 최대였다고 한다. 올봄 유난히 심한 바람과 고온 건조한 기후가 산불을 키웠다고 한다. 나무 수종의 문제도 있고, 산림 행정의 문제도 지적되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는 산불의 원인이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최악, 최대 규모의 산불이 지나면 폭염이든, 폭우든 또 다른 기후 재앙이 ‘사상 최대,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발생할 것 같아 불안감이 든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닥쳐올 ‘최대, 최악’의 재앙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위험보고서 2025>는 10년 뒤인 2035년도의 위험 리스트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 (Global Risks 2035 : The point of no return)’이라는 제목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르면 2035년 위험 리스트 10위 중 1위~4위, 그리고 10위가 환경(Enviromental)관련 위험이었다.
전 세계 학계, 비즈니스계,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에 종사하는 약 900명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024년 9월 2일에서 10월 18일 조사해 얻은 답변에 따르면 1위 ‘극심한 기상현상(Extreme weather events)’, 2위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Biodiversity loss and ecosystem collapse)’, 3위 ‘지구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Critical change to Earth systems)’, 4위 ‘천연자원 고갈(Natural resource shortages)’이었다. 지금 겪는 산불이 바로 1위로 뽑힌 ‘극심한 기상현상’ 중 하나다. 이 보고서는 10년 뒤 위험을 2년 뒤의 위험과 비교했다.
위 도표의 가로축은 2년 뒤의 위험, 세로축은 10년 뒤의 위험이다. 2년 뒤의 위험보다 10년 뒤의 위험이 감소하면 오른쪽 아래에 점이 분포하게 되고, 그 반대면 왼쪽 위에 점이 분포하게 된다. 표에서 보듯 왼쪽 위쪽에 점이 분포해 있다. 특히 환경적 위험(녹색점)은 그 상향폭이 크다. 10년 뒤 가장 큰 위험 요소인 ‘극심한 기상현상’은 위험도 약 4.6에서 5.9로 상향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위험해질 것이라고 세계 각 분야 전문가는 비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낙관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이유가 지금 나의 삶을 조건 없이 지지해 주는 자연을 망가뜨린 결과라는 사실이 농촌에서 마을활동가로 사는 나를 우울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내란이 일으킨 천불에 기름 부은 ‘최악의 산불’
이번 산불에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거동이 불편해 화마를 피하지 못하셨다.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고 고령의 노부부만 같이 살다 화를 당하셨을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도 흔한 경우다. 그런 뉴스를 접하며 ‘우리 마을에 산불이 나면 난 “어느 어르신을 먼저 모시러 가야 하나?” “동선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화염과 연기에 가려 차를 논두렁에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을 길이 더 또렷하게 각인되기도 했다. 초고령화, 과소(過疎)화, 저소득 등으로 인해 생기는 촌의 문제는 기후재앙의 피해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이번 산불로 불타 버린 마을은 그렇지 않아도 소멸 위기였는데, 이번 산불로 바로 당장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내란으로 마음속에는 천불이 나 있는데, 산불로 확인되는 기후불평등이 천불에 기름을 붓는다.
봄풀 다듬으며 깨닫는 뭇 생명들의 연결
봄풀을 나물로 먹기 위해서는 다듬질을 해야 한다. 흙을 털고, 씻고,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이게 시간이 솔찬히 걸린다. 잔손질도 많이 가고, 반복적이기도 하고, 한 일에 비해 성과가 풍성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신이 나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허투루 할 수도 없고, 이 과정이 없으면 식재료가 안되니 안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듬질 하며 마음 수양을 하는 기분이다. 절에서 주는 음식을 공양(供養)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런 수양하는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나는 풀을 다듬으며 풀의 일생을 상상하곤 한다. 이 뿌리가 왜 이쪽으로 자랐을까, 저 뿌리는 왜 저리 꼬부라졌을까, 이 뿌리는 가늘고 길고, 이 뿌리는 굵고 바르고… 등, 뿌리를 보며 물을 찾아, 양분을 찾아, 돌을 피해 생명을 유지하려 애썼을 뿌리의 노력을 느껴본다. 비록 지금 내 손에 있지만 쉼 없었을 그 삶의 노력을 진하게 느낀다. 흙 속에는 60가지 이상의 원소들이 있고, 흙 1g 속에는 약 3천만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미생물들의 상호 활동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라고 한다. 흙 1cm가 만들어지려면 약 2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런 흙을 털어내고 닦아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에 무지한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만들어진 흙에, 그 흙을 만들어 온 숱한 생명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나의 왜소함과 함께 감사함을 느낀다. 봄풀을 다듬으며 내 마음도 다듬어진다. 도시에서 살 때는 없었던 다듬질 시간이다.
AI 알고리즘으로 뇌가 썩은 법비 윤석열
얼마 전 읽었던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라는 책에서, 개소리가 많아지는 이유로 너무 자주 말을 해야만 하는 매체 상황을 지목했다. 생각과 말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말을 한다. 지식인이랄 수 있는 사람들도 유튜브니까 편하게 한다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을 해댄다. 자신의 발언이 뇌피셜, 추정이라고 밝히는 것이 면죄부라도 되듯, 시간을 메울 말들을 쏟아내고, 그 말들은 어딘가에서는 누가 이런 얘기를 했다며 마치 진실처럼 유통된다.
최근 저서 「넥서스(Nexus)」를 출간하고 홍보차 내한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소셜미디어의 정보는 대부분 쓰레기. 판타지, 망상,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정보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시간, 돈, 노력을 기울여야 하므로 비싸다. 그러나 허구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되기 때문에 값싸다”라며 이런 허구들이 만든 알고리즘이 인간의 대화 능력을 파괴했으며 가짜뉴스와 음모론, 증오를 퍼뜨렸다고 지적했다. 마치 앞서 보여 준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위험리스트 중 5위로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Misinformation and disinformation)’가 뽑히고, 6위로 ‘AI기술의 부정적 결과(Adverse outcomes of AI technologies)’가 선정된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위 글로벌 위험리스트 9위로 선정된 ‘사이버 간첩과 전쟁’(Cyber espionage and warfare)까지 적용해 보면,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윤석열은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즉 ‘AI기술의 부정적 결과’로 뇌가 썩어서 부정선거라는 ‘잘못된 정보, 허위정보’를 믿고, ‘사이버 간첩과 전쟁’을 벌인다며 계엄을 선포했던 것이다.
공감하고 소통하고 몸을 쓰는 기술이 절실한 시대
나물을 먹기 위해 다듬는 일은 혼자 하면 좀 지루하다. 그래서 예전 아낙네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같이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다듬곤 했다. 그렇게 평상에 풀 소쿠리를 가운데 두고 함께 다듬으며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속내를 풀어놓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평평한 세상에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연민과 신뢰를 되새김 했으리라. 그래도 풀리지 않는 속은 다듬이 방망이로 다듬질하며 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다듬질 방망이 소리와 박자가 유난히 힘차고 신나면 그만큼 마음속에 있던 주름도 잘 펴졌을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다듬질할 일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다듬질은 허드렛일이고 그 일하는 시간은 소모적인 시간처럼 여겨지기 쉽다. 매장에 가면 누군가의 값싼 노동력으로 다듬어진 물건들이 많다. 그런 것을 사 쓰고 자신은 뭔가 더 지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내 삶의 성공의 징표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다듬지 않은 말들이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시대다. 처음 시민언론이 등장했을 때는 기득권층에게 독점됐던 매체의 장벽을 허무는 언론자유의 확장이 더 중요했다. 시민언론의 위험성을 지적할 때 공론의 장에서 자율 정화될 것이라는 반론이 주효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아닌 AI가 공론의 장을 주도하게 된 시대에 그 반론은 힘을 잃었다. AI가 사람의 다듬질을 대체했다. AI는 다듬질로 건강을 유지해야 할 사람의 뇌를 썩게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정보시장이 100% 개방되면 진실이 허구의 바다에 묻혀버릴 수 있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인간의 기술 세 가지, 즉 ‘머리를 쓰는 지적 기술, 공감과 소통을 하는 감정 기술, 몸 쓰는 기술’ 중 ‘지적인 기술’이 AI로 대체되기 가장 쉬운 기술이라며 지적인 기술로의 편향을 경고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과 공감, 소통하거나 몸을 쓰는 기술과 담쌓고 머리로 법 기술만 익힌 법비(法匪) 윤석열이 AI 알고리즘에 세뇌된 이유도 이해가 된다.
이 봄, ‘계몽’이란 개소리를 다듬질 해야 하지 않겠나
봄풀 캐는 노동으로 몸을 쓰고, 나물 다듬으며 이웃과 교감하며 사는 삶이 AI시대를 슬기롭게 사는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풀 캐고, 봄나물 다듬으며 내란으로 천불 난 속을 다듬는다. 산불로 논, 밭 잃고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을 피해지역 어르신들의 슬픔을 봄풀의 흙을 부비며 느껴보려 한다. 긴 겨울을 견뎌 낸 봄흙의 촉감에서 그 숱한 생명들의 순환에 콧등 시큰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반생명적인 폭거를 ‘계몽’이라고 개소리하는 법비들을 다듬질할 마음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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