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투표율 우려에도 보수 첫 단일후보 눌러

‘2차 정권 심판’ 보궐선거 가장 중요한 승부처

극단적 태극기부대 외엔 보수층도 윤 정권 외면

민주진보 후보 선택, ‘탄핵 열차’ 막을 수 없단 뜻

끓는 민심 속 역사의 흐름 바꾸는 또 하나 분기점

민주당 문제도 드러나…서울 ‘100만 당원’은 허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동규 정치컨설턴트(탑위드 대표)
김동규 정치컨설턴트(탑위드 대표)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나선 정근식 후보가 96만 3876표, 50.2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중도보수를 표방한 조전혁 후보는 사실상 첫 보수 단일후보였음에도 45.93%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 치러진 6차례 교육감 선거의 패턴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23.5%의 낮은 투표율에도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조희연 교육감의 갑작스러운 낙마로 치러진 이번 보궐선거는 단순한 교육감 선거 이상의 선거였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윤석열 정권은 반성은커녕 무능, 불통, 독단적 국정운영 기조로 역주행을 거듭했다. 특히 광복절을 즈음해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친일인사를 발탁하는 등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황에서 치르는 선거였기 때문에 민주진보 진영으로서는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다.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이번 보궐선거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진영별 후보단일화였다. 보수 진영은 단일화하면 이긴다는 전략 아래 출마가 유력시되던 박선영 후보를 주저앉혀 일찌감치 뉴라이트 출신 의혹이 있는 조전혁 후보로 사실상 단일화했다. 윤호상 후보가 완주했지만 선거 구도에 영향을 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진보 진영은 우선 서울민주진보교육감 단일화 추진위원회에 8명의 후보가 참여해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으나 5명만 참여한 단일화 추진을 통해 서울대 명예교수인 정근식 후보를 단일 후보로 확정한다. 이후 방현석, 조기숙 후보가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난관에 부딪히지만 두 후보 모두 대승적 결단을 통해 정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단일화 대열에 합류했다. 마지막으로 최보선 후보가 후보 등록 후 완주를 선언했지만 사전투표 이틀째인 10월 12일 극적으로 정 후보 지지를 선언해 11명의 민주진보진영 후보자가 모두 참여하는 매머드 연합 캠프를 완성했다. 이로써 진보-보수간 1대 1 구도가 완성됐다.

이번 보궐선거의 총 선거인수는 832만 1972명이었고, 유효투표수는 195만 3849로 투표율은 23.48%였다. 개표 결과 정근식 후보가 민주진보 후보로는 처음으로 50% 이상을 득표했다. 1, 2위 간 격차는 4.31%p다. 지역별로는 용산, 서초, 강남, 송파 등 4개 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승리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서울에서 5.94%p 차이로 이겼다. 비슷한 추세다. 투표율 저하에 따라 강남 3구의 보수층 결집도가 상대적으로 조금 높게 나타났을 뿐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4.10.17. 연합뉴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4.10.17. 연합뉴스

이번 보궐선거는 지난 총선에 이어 윤석열 정권에 대한 ‘2차 심판’ 선거였다. 호남은 민주진보 진영의 우세지역이고, 인천 강화와 부산 금정은 보수 세가 우세한 지역으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선거였다. 게다가 윤 정권에 대한 탄핵의 임계점을 높여가는 선거였던 만큼 민주진보 진영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선거였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자랑스런 역사를 폄훼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일제 밀정’논란이 선거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가 됐다. 나아가 뉴라이트 사관으로 역사를 왜곡한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서막이기도 했다.

민주 진보 정근식 후보는 ‘뉴라이트 친일교육 심판’을 전면에 내걸고 역사 앞에 당당한 서울 교육을 지키고 혁신교육을 혁신함으로써 민주진보 교육을 사수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에 보수 조전혁 후보는 ‘조희연 혁신교육 10년 심판’을 내걸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학업성취도’ 전국평균 자료를 서울평균 자료로 조작하며, 무너진 서울교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지필고사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서울시민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인물 대결이었다. 보통 선거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 내외는 된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전쟁을 기본 전선으로 하는 이번 선거에서 정근식 후보는 민주진보를 대표할 적임자였다. 개인적 흠결이 없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해 이번 역사전쟁을 이끌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시대적 소명과 맞닿은 후보였다는 것이다.

반면 조전혁 후보는 뉴라이트 출신 전력에 학폭, 막말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후보였다. 왜 하필 가뜩이나 윤석열-김건희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비등한 가운데 보수가 보기에도 인정하기 어려운 조 후보를 내세웠을까? 만약 뉴라이트 출신이 아니고 보수적인 교수 출신이 보수 단일후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선거에서 아무리 ‘인지도가 깡패’라는 말이 있어도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면 선거 막판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조 후보가 패배한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이번 선거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또 다른 지점은 투표율이었다. 서울선거에서 통상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세가 강하고, 투표율이 높은 동남 4구를 중심으로 결집해 전세를 역전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이다. 교육감 선거는 민주진보 단일후보였던 주경복 후보가 1.78%p를,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0.6%p를 졌는데, 모두 17개 구에서 이기고 8개 구에서 패배한 결과다. 서울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으면 항상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선거의 경우 윤석열 정권의 국정지지율이 마지노선이라 할 만한 20% 내외를 오르내리고, ‘뉴라이트 일제 밀정 논란’에 이어 ‘명태균 게이트’가 터지면서 보수층마저 윤 정권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어서 필자는 승부를 가를 분기점을 투표율 20%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25% 미만이면 민주진보 후보의 승리가 어렵고, 30%는 되어야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사전투표율이 8.28%에 그친 상황에서 25%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이기도 하거니와 현실감 없는 목표는 투표의 절박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2024.10.17. 연합뉴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2024.10.17. 연합뉴스

그럼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낮은 투표율에도 민주진보 정근식 후보가 승리한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극단적 태극기 부대 이외에는 보수층도 대개 윤 정권에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윤 정권과 국민의힘이 기댈 언덕이 거의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국정 기조에 대한 획기적 변화 즉 ‘이채양명주’에 대한 분명한 해법 제시, 김건희 특검법 수용,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의대생 정원 원점 검토, 뉴라이트 인사 퇴출 등의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미 출발한 탄핵 열차를 막을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한다.

국민의힘의 서울 마지막 보루인 강남 3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강남 3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고, 지난 총선 때 정도의 투표 성향을 보여준 것도 맞지만 보수층이 더 강하게 결집했다면 교육감 선거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그럴 힘이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지켜야 할 명분을 잃은 것이다.

또한 투표율이 낮은 것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누구보다 이번 교육감 보궐선거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민주당이라면 선거 초기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율 제고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정당이 직접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기는 어려워도 투표율 제고를 위한 활동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국민의힘의 전략은 인지도 높은 의원 출신 조전혁 후보를 내세우고, 최대한 투표율을 낮추는 것이었다. 이를 알고도 민주당이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사전투표율이 기대 이하로 저조하자 뒤늦게 나선 것은 이번 교육감 보궐선거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민주당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전체 투표자가 200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서울 민주당원만 100만 명을 상회한다는 것이 상당 부분 허수라는 말이다. 향후 탄핵 국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울 지역임을 고려하면 민주당은 더 적극적으로 투표율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정근식 후보 또한 투표율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역사전쟁 선봉장으로서의 이미지를 본선거 초기에 상당 부분 완화한 측면이 있다. 거리 현수막 슬로건으로 채택된 “교육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뀝니다”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산토끼론’이다.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많은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집토끼가 투표할 생각을 하지 않는데 웬 산토끼냐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었다. 다행히 낮은 사전투표율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뉴라이트 친일교육 심판”으로 거리 현수막을 교체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때맞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낭보가 알려지고, 보수교육감이 집권한 경기도 교육청이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도서로 보고 폐기한 것에 대한 분노와 위기의식이 투표율 제고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17.5%내외로 예상됐던 본투표율은 20%를 넘어 23.48%에 이르러 민주진보 정 후보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향후 정국은 시계 제로 상태다. ‘명태균 게이트’가 일종의 도화선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끓고 있는 민심의 분노 게이지가 어느 시점에 어느 계기와 만나서 폭발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게 터진 민심에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진보 진영이 하나의 대오로 대동단결해 화답해야만 제2의 촛불 혁명은 현실이 될 것이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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