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유산 등재 과정 '외교 포기' 이끌어
친일 용납치 않았던 선친의 면모와 대조
'공직' 본분 지키려 목숨 끊은 권익위 간부와 대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사건 담당 간부로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민권익위원회의 국장급 간부에 관한 여러 사실들이 잇따라 알려지고 있다. 김건희 씨 사건 조사를 종결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끝내 무혐의로 종결 처리되는 것에 대해 괴로움을 토로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나왔다.
권익위의 전신인 부패방지위원회 때부터 주로 청렴과 부패방지 업무를 맡아 왔던 그로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자부심이 컸었기에 그만큼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는 말처럼 그의 죽음은 사실상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에 맞서, 권익위의 책무와 존재 의미가 부정당하는 것에 맞서 죽음으로써 저항하려 했던 듯하다. 자신의 명예와 함께 권익위의 책무와 존재의미를 지키려 했던 듯하다.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하여 고충민원의 처리와 이에 관련된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부패의 발생을 예방하며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권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적정성을 확보하며 청렴한 공직 및 사회풍토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권익위법이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죽음으로써 항거한 것이었다. 자신의 '공직'을 지키려 했던 것이었고, 조롱 당하고 비난 받는 권익위를 구제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공무원에 대해 가장 오해되는 말로서 흔히 얘기되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를 그는 보여줬다. 오히려 영혼이 없으면 공무원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직자'와 '공직자의 일'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그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공직자를 대표하는 이랄 수 있는 어느 고위공직자의 행태와 대조하게끔 한다. 바로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있는 부처, 외교부의 수장이다. 한국인들이 강제동원돼 희생된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외교부가 보인 행태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 거짓을 낳고, 그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있다.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와 전시 문안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는데 일본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외교부는 해명했지만 이는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가 받아들였다”고 한 말과 다르다. “협상 실패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고 우리 쪽의 ‘강제’ 표현 명시 요구를 일본이 거부한 사실을 일부러 감춘 것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해달라고 신청하면서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고 설명했지만 한국 외교부는 이걸 번역하면서 “모든 노동자”를 “한국인 노동자”로 바꿨다. “단순히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외교부의 대응을 지휘하고 있는 조태열 장관은 동원의 '강제성'을 윤 정부가 포기한 댓가로 '한반도 출신 노동자' 전시실 마련과 매년 추도식 개최를 약속한 게 이번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진정성 있는 모습"이었다고 오히려 일본 정부를 칭찬하고 있다. 앞으로 그 약속 이행에서도 "진정성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굴욕적’인 이 논의 과정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최대 외교안보 성과로 내세우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의중에 따라 ‘등재 찬성’이란 답이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는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지난 6월 등재 ‘보류’ 권고를 내리는 등 우리 쪽에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강제동원’ 명시를 거부한 일본에 협상 내내 끌려다녔다는 것은 외교부의 '외교 포기'를 보여준다.
‘제3자 변제’에 이어 사도광산 등재 찬성까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에 잇따라 면죄부를 쥐어주는 굴욕 외교를 이끌고 있는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조태열 장관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는 무엇보다 그의 선친이 고(故) 조지훈 시인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4.19 혁명 때 앞장서서 학생 운동을 지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준 조 시인은 친일 세력이 광복이 되자 친미 세력으로 변신하고 이승만이 그들을 중용하는 것을 보고 이승만과 자유당 비판에 나섰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일본 군인 출신들과 권력을 형성하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추진하자 이를 매섭게 규탄했다.
친일을 용납하지 않았던 조지훈 시인이었다. 조 시인의 아들이었기에 조 장관은 여느 외교 관료 이상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이는 그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밝혀온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 선친"이라며 "아버지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은 걸 인생의 최고의 목표라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늘 말해 왔다.
그러나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은 조지훈 시인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윤석열의 대학 선배’라는 인연이 주로 작용해 장관이 된 인물로 비친다. 그는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학과 선배로, 외교부 차관과 주UN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지낸 후 공직을 떠났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외교부장관 후보에 지명되며 올해 1월에 외교부장관이 됐다. 그리고 윤석열의 대일 굴욕 맹종 외교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는 이번 사도광산 건 이전에도 이미 의혹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해외 파견 확대 등을 위해 정부 희망대로 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상대 손배소 재상고심 판결을 늦추는 거래를 하는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이었다. 그는 ‘법원의 강요에 의해 움직였을 뿐, 재판거래에 협조할 의사가 없었다’고 진술하면서 자신도 피해자란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조 장관이 협조자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조 장관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도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조 장관의 아버지 조지훈 시인은 1960년 3월 ‘지조론’이란 글을 어느 잡지에 발표한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이 글이 발표된 건 4·19 혁명 직전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가 서슬 퍼럴 때였다.
조 장관 자신도 물론 읽고 또 읽었을 글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권하려는 건 이 '지조론'이 아니다. 그에게 '지조론'에서 얘기하는 각오와 실천까지 바라는 건 매우 무리일 듯하다. 다만 과거 그 자신이 선서했고 이제는 자신 앞에서 신임 외무공무원들이 선서를 할 외무공무원법 18조의 조항을 다시 꺼내 읽어보길 바란다.
“대한민국 외무공무원으로서 조국에 충성을 다하여...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며, 국가이익을 보호·신장함으로써 본인에게 부여된 사명과 책임을 완수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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