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스캔'하고 마음 챙기면 소리도 깊어져
연주는 몸의 리듬으로, 들을 때는 마음으로
자연스런 발음으로 삶을 '스캣'하는 게 재즈
“호른 연주자가 되려면 악기 연주를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트레칭, 명상,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연습하고 수영과 조깅 등의 운동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노르웨이 음악원의 호른 연주자 율리우스 프라네비 키우스의 이 글이 마음에 와닿는 것은 호른 연주,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일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들을 간결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가 요가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 것은 이십대였다. 세미나에서 들었던 요가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압도되어 바로 그날 등록을 해버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열정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단계가 올라간 만큼 난이도가 더해진 동작들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 나는 요가를 하는 대신 명상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의 독서는 순간적인 감동에 그쳤을 뿐, 이 명상이 실제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마음챙김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나브로 마음챙김이 생활 속에 자리잡으면서 건강해지고, 목소리도 깊어졌다.
스캔(scan)은 사진, 문서를 복사해서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거나 프로그램의 내부를 검색하여 필요한 항목을 찾는 것을 뜻하지만 동사로는 ‘무엇을 유심히 살피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바디스캔(body scan) 명상은 마치 스캐너로 스캔하듯이 각 신체의 부분을 집중해서 관찰하며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명상이다.
알아차림은 다시 명확하게 보는 것이다. 스캔(scan)과 알아차림(awareness)은 그대로 살피고 느낀다는 의미에서 많이 닮아 있다. 바디스캔은 단순히 몸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서 열려 있는 감각으로 ‘완전히 깨어남’이며, 내 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느끼고 이완시킴으로써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신체의 각 부분을 눈을 감고 조용히 머물며 집중하다 보면 긴장된 곳이 느껴지는데 그곳에 바로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으로 몸을 수용하는 순간, 호흡은 부드러워지고 억눌린 감정들이 고요해지며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의식과 의도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알아차릴 때 내 안의 소리(Innervoice)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피타고라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고요할수록 많은 것이 들린다”고.
마음이 흔들리면 호흡이 고르지 않다. 바르지 않은 자세는 성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호흡장애로 나타나며, 에너지가 막혔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두려움이라고 한다. 다정해지면 혈당이 내려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몸에 대한 소통과 새로운 인지는 원활한 혈액순환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진다.
건강한 삶은 재미있는 삶이다. 재미는 원래 자미(滋味)의 뜻도 있는데 풍부한 맛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다양한 맛을 지닌 재미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交(사귈 교), 이 글자는 사람이 다리를 꼬며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다. 교제한다는 것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이라면, 만나면 누구나 함께 춤으로 주거니 받거니 열린 마음으로 소통이 가능했을 것이다.
<서경>에는 “시는 사랑의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고, 노래는 가락을 붙여 길게 말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옛 선인들에게는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재미있는 삶은 마치 노래하고 춤추며 사는 기분으로 신명나게 사는 것이다.
장자는 음악론에서 ‘임악(林樂, 숲의 음악)’이라 하여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등 모든 소리가 ‘자연의 주는 최고의 음악’이라 하였다. 그리고 ‘무릇 음(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으로 소리를 낼 때는 ‘일정한 소리에 얽매이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자연의 리듬을 받아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연주이기에 연주를 할 때는 온몸이 리듬을 타야 하고 음악을 들을 때는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이러한 장자의 주장은 재즈의 스캣에도 적용된다. 스캣(Scat)은 가사 없이 악기처럼 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루이 암스트롱이 ‘Heebie Jeebies’라는 곡을 녹음하던 중에 악보를 떨어뜨려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듯이 노래한 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이는 당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재즈보컬들의 스캣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정해진 발음(Syllable)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브이야 르바르밥……댑, 데이요데이요…바루루 레이오…두웨에 으레로레로…베레레 레럽…레이아 르와…두비두웨에…두웨든 두웨든…슈브르브 르밥…뤠바리야…루이루레로…
내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발음이면 된다. 가사에서 자유로워진 스캣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다. 앞서 얘기한 장자의 음악론과 스캣이 중첩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무한히 열려 있는 것. 스캣은 악기소리를 흉내낸 것이고, 이 악기는 자연에서 온 것이다. 악기는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으므로 스캣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재즈보컬은 ‘깅기리잉 갸앙걍걍 거엉겅 공공’으로, ‘계이름’으로 스캣을 한다. 또 어떤 보컬은 가사를 부르지 않고, 휘슬(whistle, 호루라기) 사운드로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가 하면 아예 입트릴(입술털기)로 스캣을 선보이는 보컬도 있다. 가히 스캣의 향연이다.
스캣(scat)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뮤즈다. 그 뮤즈는 연주자의 스캣으로 쏟아진다. 최고의 몰입으로 빛처럼 쏟아지는 소리다. 장자가 말한 자연의 리듬을 타기 위해서는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스캔해야 한다. 건강한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고요함 속에서 자연의 감정이 우러나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다양한 스캣의 발음(Syllable)을 위해서는 곡 해석과 스케일 연습,그리고 혀의 이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주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학생이 “교수님, 스캣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하고 묻는다. 가사로 익히고 나니까 스캣도 하고 싶단다. 코드 톤으로 음을 내기는 하는데 ‘빠아아 빠아아’가 전부다. 편한 발음을 내보라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참, 지난 주에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바빴겠구나.”
“네, 바빴어요(이거다!) 많이 바빴니?”
“엄청요.”
“그럼 ‘바빠’로 스캣해보는 건 어떨까? ‘바빠’를 바쁜 마음으로 휘몰아치듯이 네 번 정도 연달아 해보는 거야.”
당황할 것 같던 학생이 환해진 얼굴로 ‘바빠’를 쏟아낸다. 굿. (이제 ‘바빠’를 가지고 리듬 바리에이션만 하면 된다.)
바아아아아 바바밥빠. 아바바아아 밥빠. 아바바밥빠. 으밥빠아아. 바아바밥빠 으바밥 바빠. 바바바바바바 밥빠..
수업을 하다보니 30분이 더 지나 있었다. ‘바빠’가 준 몰입의 경지다. 오늘 아침 전철 안에서 들리던 두 사람의 대화의 대부분은 ‘그래그래그래그래, 내 말이. 맞아맞아맞아, 누가 아니래, 누가 아니래’였다. 아무리 들어도 내 귀에는 스캣이다.
나의 2집(용비어천가) 음반 중에 실린 고려가요 <이상곡>에서는 의성어로 스캣을 만들었다. ‘다롱디리 디우셔 미륵사지 마두너즈 너우셰 너우지…’ 순수한 우리말이다. 가끔씩 번개치듯 쏟아지는 나의 아이디어는 몸과 마음을 스캔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새소리처럼 내는 스캣이다.
일명 ‘새소리 스캣.’ 이 스캣은 최고의 컨디션과 몰입이 될 때에만 가능한 소리다. 이 시도는 3집 앨범(오감도) 첫 곡 ‘Boiteux, Boiteuse’ 속에 들어 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깊이 보고 들을 수 있으려면 매일 나의 상태를 스캔해야 한다. 스캣은 또다른 ‘내 안의 말’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에너지 넘치는 말. 이렇게 시도되는 다양한 말은 풍부한 삶을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다. 삶을 스캔한다는 건 삶을 스캣하는 것. 스캔이 되면 스캣이 된다. 혹시 아는가? 당신 안에 놀라운 스캣이 숨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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