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5060세대로까지 개혁진영 확장

단독 집권 할 수 있는 분기점에 이르러

무엇으로도 되돌리기 어려운 도도한 흐름

범야권은 국민이 준 기회의 무게 절감해야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범야권은 거의 189석에 달하는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번 총선은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방적으로 편들고,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면서 사기성 선심 공약을 남발하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하며, 사법부까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연거푸 재판에 소환하는 등 매우 불공정한 환경 속에서 치러졌다. 한마디로 이번 총선은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노골적인 관권 선거로 얼룩진 최악의 선거였다. 극우사대주의 세력의 야비한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범야권은 기록적인 압승을 거두었고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반국민적, 반국가적 정치로 일관한 윤석열 정권은 임기 초반부터 국민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반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고 마침내 임계점을 돌파함으로써 거의 60~70%에 달하는 국민들이 콘크리트화된 반윤석열 심리를 갖게 되었다. 윤석열 정권이 무슨 짓을 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국민들의 비율이 최소 60% 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던 정권 심판의 용암은 ‘도주대사’ 임명 사건, 대파 사건 등을 거치면서 거세게 분출하기 시작했고 범야권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야당 압승은 윤석열에 대한 심리적 탄핵 바람

이번 총선은 내용적으로는 윤석열 탄핵 여부를 건 일종의 대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권 심판론을 매개로 양 진영, 즉 개혁 성향 국민들과 보수 성향 국민들이 결집해 격돌했다. 한국에서 보수 성향 국민들은 TK와 부울경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따라서 양 진영이 격돌할 경우 전국적 범위에서는 범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높더라도 부울경 지역은 그렇게 되기 힘들다. 범야권이 부울경에서까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그곳이 들썩거릴 정도로 정권 심판 바람이 아주 거세게 불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그 강도가 부울경까지 뒤흔들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범야권이 200석을 돌파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의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범야권 200석 돌파는 막연한 희망이었지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는 아니었다. 설사 범야권이 200석을 넘어섰다고 해서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탄핵을 향해 나아갈 거라는 담보는 어디에도 없다. 양적인 의석수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마치 당나라 군대 같았던 민주당이 전투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으며 세상을 바꾸려는 국민들의 의지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사회를 개혁하는 주체는 야당이 아니라 국민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백승아 공동대표가 12일 오전 22대 총선 당선인들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4.12 [공동취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백승아 공동대표가 12일 오전 22대 총선 당선인들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4.12 [공동취재] 연합뉴스

보수대연합이 만든 보수 우위 정치지형을 변화시킨 세월호 참사

이번 총선은 극우사대주의 세력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다. 90년대 들어서자마자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의 3당 합당(민자당)을 성사시킴으로써 소위 보수대연합 구도를 정착시켰다. 지역적으로 말하자면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이 연합하여 호남을 고립시키는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보수대연합과 그로 인한 다수 국민들의 보수화는 개혁 세력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보수대연합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개혁 진영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보수 성향의 국민들이 다수를 점하는 정치 지형이 견고해졌다. 이런 정치 지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던 결정적 계기는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을 대거 각성시켰고 결국에는 박근혜를 탄핵하는 쾌거로 귀결되었다. 이후 개혁 성향 -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개혁 성향,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적 정치 성향(묻지마 보수, 맹목적 보수가 아닌 합리적 사고에 기초하는 정치 성향) - 국민들의 비중은 계속 확장되었다. 개혁 진영과 극우 진영이 1:1 구도로 대결했던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거의 50%를 득표했다. 지난 대선은 개혁 성향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마침내 과반을 넘어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개혁 진영이 반개혁 진영과 정면 대결하더라도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분기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개혁 진영의 동진과 세대별 확장

지역적으로 볼 때 이번 총선은 개혁 진영이 수도권과 충청권을 넘어서서 부울경 지역으로까지 동진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비록 민주당은 부산에서 1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박빙의 승부를 펼친 곳이 많았고, 지는 경우에도 득표율 차이가 10% 내외로 그 격차가 크지 않았다. 역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획득한 부산의 득표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이번 총선에서는 45% 선에 도달했다. 대구에서도 민주당의 득표율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므로 다음번 전국 선거에서는 부산의 개혁 진영 득표율이 50%를 넘어서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한다. 개혁 진영의 동진은 부울경을 최후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극우사대주의 세력에게 치명적이다.

세대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번 총선은 개혁 진영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는 개혁적인 반면 중장년, 특히 50대인 장년 세대 위로는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젊을 때는 개혁적일지라도 50대가 넘으면 보수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보편적 법칙에서 예외인 특이한 세대가 있다. 바로 586세대다. 나는 『트라우마 한국사회』라는 저서에서 586세대를 ‘민주화세대’로 지칭하면서 이 세대는 나이가 들더라도 쉽게 보수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즉 민주화세대는 적절한 자극과 방향 제시만 있다면 50대를 넘어서더라도 개혁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는 이런 예측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2년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대의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43%, 민주통합당 22%, 통합진보당 2%였다. 그러나 2024년의 조사에서는 민주당 37%, 국민의힘 30%, 조국혁신당 16%였다. 50대 53%가 야당을 지지한 반면 30%만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두고 『시사인』(2024.04.08.)은 “당시(2012년)만 해도 ‘보수정당의 든든한 기반’이었던 50대 유권자들이 이제는 야당의 우군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나이를 먹어도 보수화되지 않는’ 낯선 유권자 그룹을 마주한 것이다”라고 평했다.

청년 세대 정치성향은 보수화가 아니라 합리적 개인주의

지난 대선에서 다수의 이대남들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자 한국의 젊은 세대가 보수화되고 있다며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한국의 청년 세대는 보수화된 세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정치 성향 - 주로 개인주의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 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즉 그들은 맹목적인 보수와는 거리가 멀고 자기의 이익을 중심으로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년 세대는 민주당이 개혁을 추진하면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수를 선택하거나 아예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이번 총선에서 20대 여성들은 범야권에 몰표를 줬다. 20대 남성들의 경우에도 범야권 지지율은 47.7%였지만 여권 지지율은 약 30%에 머물렀다. 이것은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반감을 악용한 이준석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들을 국민의힘 고정 지지층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총선에서 개혁 진영은 젊은 세대부터 50대까지의 넓은 범위로 확장되면서 마의 50% 벽을 돌파했다. 개혁 진영은 현재의 50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60대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는 어떠한 것으로도 되돌리기 어려운 도도한 흐름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극우세력이 살아남을 방법은 별로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국민들은 극우사대주의 세력이 역사의 무대 뒤로 영원히 퇴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민주당, 개혁 않고 손놓고 있다가는 또 응징당할 것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범야권이 윤석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위해 맹렬하게 싸우고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한다면 개혁 진영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매장될 것이다. 그러나 범야권이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지 못하거나 개혁에 소극적이라면 국민들은 정치적 무관심이나 정치 혐오에 빠져들거나 반대로 민주당을 응징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개혁 진영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한다고 해서 개혁 진영이 앞으로도 선거마다 압승할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부진한 개혁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은 개혁을 배반한 정치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하게 응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은 국민이 준 이 기회가 갖는 무게를 절감해야 한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과 협치하라고 범야권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 아니다.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벼랑 끝에 선 민생 문제를 해결하며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라며 표를 준 것이다. 만일 이 기회를 또 놓쳐버린다면 민주당은 국민에게 버림받게 될 것이고 극우세력이 극적으로 부활하여 한국은 자민당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일본처럼 될지도 모른다. 범야권은 비상한 투지와 각오로 윤석열 정권을 조기 종식시키기 위해, 한국 사회를 과감하게 개혁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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