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에 노동기준 제대로 자리 못 잡아

얼렁뚱땅 경영 들러리, 구경꾼 될 가능성

노동이사, 노사협 통해 환경·사회 목소리내야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지난 글(☞ESG 선풍 속 노동(L)이 제대로 자리잡을 곳)에서는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ESG(L-ESG)가 노동기준의 개선에 머물지 말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의제를 폭넓게 포괄할 필요가 있겠다고 제안했다. 자본의 선의나 정부의 온정주의에 기댈 일이 아니라 노동이 주체가 되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자본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명분으로 ESG 경영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ESG가 이윤의 자장(磁場)을 벗어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ESG 경영에서 노동기준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배경에는 노동배제의 ESG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노동의 관점에서 ESG 경영을 실현하려면 노동의 개입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ESG 가운데서 G, 즉 거버넌스가 그것이다. ESG는 G를 하부구조(infrastructure)로 삼아 E(환경)와 S(사회)가 배치되는 입체적인 건축물이다.

E와 S가 실질적인 가치(substantive value)라면 G는 절차적인 가치(procedural value)에 해당한다. 민주주의가 절차적·형식적 차원에서 정의되듯이 ESG에서도 절차(G)가 실질(E와 S)을 정의한다. 거버넌스는 E(환경)와 S(사회)의 추진과 이행력 확보를 위한 의사결정체계라는 점에서 ESG의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노동 ESG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결과 못지않게 절차로서의 거버넌스다. 거버넌스에 참여함으로써 ‘노동에 의한 목소리’는 ‘노동을 위한 목소리’로 바뀐다. L-ESG가 지금까지 사회적 가치(S)에 주목해왔다면 이제 강조점을 거버넌스(G)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진단이다. ESG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경영권’에 막혀 경영 주변부 맴도는 노사협의회

거버넌스 관점에서 바라보면 ESG 경영은 이해관계자 경영과 동의어를 이룬다. 2020년대에 들어서서 주주 자본주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거버넌스의 개념은 이해관계자의 권리 또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의사결정체계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ESG는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주주우선주의(shareholder primary)에 도전한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2012; 이관휘, 2022)를 묻지 않더라도 ESG는 기업의 의사결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주의의 일환이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의 집단적인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일터를 민주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는 회사를 주주집단의 이해추구단체에서 ‘주주, 경영자, 노동자로 구성된 이해관계자의 생산공동체’로 파악한다.

그렇다면 ESG 경영에서 이해관계자이자 생산공동체의 파트너로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고 있을까? ESG 경영이 노동자의 참여를 강조한다면서 기껏해야 ‘직원’과의 소통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직된 노동’의 참여에 대해 침묵한다면 ‘이해관계자와의 소통과 참여’는 한낱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실제로 ESG란 계급적 속성을 감춘 노동배제의 기획이 아닐까?

ESG 경영에서 노동이 주체적인 위상을 확보해 개입하지 못하면 L-ESG는 자칫 자본투자의 리스크 관리에 봉사하는 들러리에 머물 수 있다. 노동이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제도적인 수단으로는 크게 두 가지, 단체교섭과 경영참여가 있다. 단체교섭은 노동조합이 파업권을 바탕으로 사용자와 임금 및 근로조건을 교섭하는 것이라면 경영참여는 노동이사나 노사협의회를 통해 기업의 경영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단체교섭은 여전히 기업의 담벼락 안에서 경제적 이해 다툼을 다룰 뿐이고 노사협의회는 ‘경영권’이라는 방어막에 막혀 경영의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 일부에만 도입되어 있다. 기업지배구조에 노동의 참여가 제한적일 때 기업은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서 “그 자체로 권력을 휘두르는 일종의 사적 정부가 된 사적 사업체”(마조리 켈리, 2013)로 머문다. ESG가 지향하는 일터 민주주의는 깃발로만 남는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공시 제도 도입 촉구 헌법소원 제출에 앞서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9.20. 연합뉴스
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공시 제도 도입 촉구 헌법소원 제출에 앞서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9.20. 연합뉴스

노동이사제에 집중해 노동참여의 거버넌스 구축해야

여기서 관심사의 하나는 노동이사제의 도입이다. 해당 기업의 노동자가 사외이사로서 이사회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지배구조에서 핵심이 이사회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물론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최고의 의사결정기구가 이사회다. 노동이 기업의 ESG 경영을 감시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도 이사회 참가는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ESG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사회의 구성과 역할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사외이사의 독립성 보장,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이사회 내에 ESG 관련 내부위원회의 설치 등이 제안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사회의 구성에서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의 참여를 말할 뿐 노동자의 이사회 참가를 제시하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사외이사의 선임은 여전히 지배주주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이사제가 낯선 용어는 아니다. OECD 33개 회원국 가운데 21개 나라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2000명 이상 기업의 경우 감사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이사가 차지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이사회의 1/3을 노동이사가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8월부터 공공기관(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에 한해 한 명의 노동이사를 선출한다.

노동이사제의 민간 확산은 ESG 경영에서 유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제껴 놓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지 못하면서 ESG 경영을 주장하는 건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는 노력만큼이나 무용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뒷배로 삼아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가해 ESG 경영을 다룰 때 노사는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로 바뀐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하여 노동연구원의 이정희·이상준박사(2022)는 ‘황금삼각형 노사관계’를 제안한다. 노동이사제를 통한 전략적 의사결정 참여의 확대와 노사협의회의 강화를 통한 일상적 의사결정 참여의 확대, 그리고 초기업별·산업별 층위에서 진행되는 단체교섭이 결합한 구조가 그것이다. 실제로 노동이사제는 노사협의회는 물론 산별교섭체제에 상응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노동이사제는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

노동이 어떻게 ESG 기준 강화에 개입할 것인가라는 과제

노동운동이 ESG에 침묵하기에는 ESG가 기업이나 사회는 물론 노동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ESG 경영에 개입하면서 노동조합운동의 영역은 기후 및 사회문제로 확장되고 노동조합은 사회적 주체(social actors)로 자리매김된다. 노동조합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탄소중립을 통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는 기초가 된다. ESG를 가교로 삼아 노동과 기후가 만나는 것이다.

그간 ESG, 특히 L-ESG에 관한 논의가 ‘무엇을’ 실현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글에서는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바로 이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 거버넌스(G)다. 물론 노동참여가 기업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그리고 ESG 경영이 개별기업의 선택만으로 가동되는 시스템은 아닌 탓이다. 더욱이 기후위기의 해결은 글로벌 의제에 속한다. 노동이 국가나 글로벌 기관투자자 차원에서 진행되는 ESG 기준의 강화 내지 법제화 과정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다. L-ESG에 대한 논의는 노동참여의 거버넌스(G)를 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장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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