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먹기’가 극단주의로 흐르는 과정의 이야기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영국의 사회주의자 영화감독 켄 로치의 광부들은 1984년 마가렛 대처 시절의 파업 때 먹으면서 싸웠다. 그들은 ‘함께 먹는 것이 연대하는 길(Eat together, stick together)’이라고 생각했다. 켄 로치는 늘 빵과 장미 모두를 생각하는 실천적 지식인 감독이다. 1981년 아일랜드의 국회의원이자 정치범이었던 보비 샌즈는 66일 간 옥중 단식을 감행해 결국 죽었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에서 ‘먹거나 먹지 않거나’ 그 정치 투쟁의 대상은 뚜렷했다. 철의 부르주아 정부를 상대하거나 제국주의 독재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대체로 과거에는 먹으면서 싸웠다.

 

칸 영화제 공식 경쟁작이었던,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영화 ‘클럽 제로’ 역시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의 ‘먹기’에는 명상과 참선이 동반되고 생각하기가 이어진다. 이른바 생각하며 먹기, 의식하며 먹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궁극적으로 적게 먹기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아예 먹지 않는 것으로 연결돼 간다. 제목 ‘클럽 제로’는 급진적으로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종의 금식 모임이다. 

‘클럽 제로’는 세상 밖으로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이 올바른 의지를 구현하기에 가장 어려운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부모 형제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을 먹이려 한다. 사람들이 사상이나 종교로 똘똘 뭉칠 때는 자신들이 탄압받는 소수로 규정될 때이다. 탄압받는 다수는 대체로 상식적이다. 하지만 탄압받는 소수는 대체로 극단적이다. 이단 종교나 급진 과격주의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탄압받는 소수라 생각하고 그룹 내 회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시킨다. 그래야 비밀 유지도 잘 될 수 있다. ‘클럽 제로’도 점점 소수화가 되어 간다.

지역을 알 수 없는 최고급 사립 고등학교에 어느 날 영양학 전공의 노백 선생(미아 와시코우스카)이 부임해 오고 아이들은 그녀로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녀는 ‘생각하며 먹기’ 운동의 선구자로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조금 덜 먹으면 보다 더 건강해질 뿐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애들을 가르친다. 그래서 처음엔 애들이 식사를 할 때 음식을 가능한 작게 썰게 한다. 입에 넣기 전에 심호흡을 하게 하며, 씹을 때는 최대한 천천히 씹게 한다. 노백은 그렇게 아이들을 점점 더 적게 먹게 한다.

그러나 모두 청소년들이고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노백의 전략은 한 명 한 명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벤이란 아이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이슈가 있고, 프레드라는 아이는 가나에 봉사를 하러 간 부모에게서 오히려 버림받았다는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있으며 여학생 라그나는 트램펄린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체중조절의 이유가 있고 엘사는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는 참이다.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노백 선생에게 의존하기 시작하며 노백은 노백대로 자신에게로의 의존증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의식화된 아이들 앞에 무력한 학부모회의 집단지성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제자 프레드의 경우이다. 노백이 제자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긴 것이다. 노백은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프레드와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하고 자신의 공간에서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한다. 물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노백은 엉뚱하게도 먹는 문제, 굶는 이슈 때문이 아니라 사제지간의 부적절한 사적 만남이라는 ‘별건’ 케이스로 궁지에 몰린다.

 

노백의 열정적인 ‘의식화 교육’은 아이들을 정치(精緻)하게 만든다. 한 아이는 반복되는 라운드 토론회에서 이렇게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먹기를 거부하게 되면 공장식 농업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줄어들게 되고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적게 사면 적게 살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된다. 적어도 가난해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부모 때문에 마지못해 먹은 음식을 보란 듯이 다시 자신의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다 게워 낸 후 그것을 다시 먹어 대며 시위를 하는 엘사라는 여학생은 부모에게 이렇게 일장 연설을 한다.

“오늘날 음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인간이란 종에게 해롭다. 식량 생산은 환경을 파괴하고 수많은 첨가물은 우리 몸을 파괴한다. 영양학은 상술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음식을 먹어야 식품업계가 더 많은 돈을 번다. 사람들은 음식 때문에 병이 들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의존하게 된다. (자신의 계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음식없이 사는 사람은 자유로우며 사회적이고 상업적인 모든 압박에서 해방된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정치적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바더 마인호프’이자 ‘붉은 여단’이고 ‘적군파’이다. 이념이 지나치면 도그마가 되고 종교가 되며 끝내 정신이상이 된다. 문제는 이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번 세뇌된 정신을 복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속 학부모회가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흔히들 집단지성이 작동하고 있거나 작동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건 다 하는 소리일 뿐이다. 집단지성은 중산층의 이기주의와 편견이 갖는 벽을 뚫지 못한다. 세상이 극단주의에 의해 종종 휘둘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노백 선생이 금식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완벽하게 단식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어쩌면 선의의 발로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육식은 많은 환경생태 문제를 유발하고 있고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이 비건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 속의 여학생 라그나는 비건의 유행은 지난 지 오래됐다며 완벽하게 굶는 쪽을 택하기로 한다. 문제는 인간이 전혀 먹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일 텐데 노백은 아이들에게 인간이란 종은 스스로 독소를 제거하고 내부의 자식(自食)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정화(淨化)라고 말한다. 노백은 노백 스스로 그걸 믿고 있으며 그건 순전히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어서 가능하면 아이들을 동참시켜야 한다고 확신한다. 노백의 커리큘럼은 점점 더 옴진리교 같은 이단종교의 교리처럼 되어 가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사회경제학,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쁜 선의는 없다. 잘못된 선의의 대부분이 악행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어서 문제이다. 이념의 이식(移植)도 문제이다. 사상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보기가 다양해야 한다. 한 가지 이념에 맹목적으로 치중하게 되는 것은,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자연스런 일일 수 있다. 공교육은 그것의 균형을 잡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교육은 그 밸런스를 잃은 지 오래이다. 영화 ‘클럽 제로’는 교육과 환경, 진리와 믿음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올바른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걸 과연 정의할 수 있는가. 진실의 상대성은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가. 영화 ‘클럽 제로’는 실로 복잡한 문제와 그에 따른 사유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 청소년 역 배우들이 영화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말라간다.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배우들에게 혹독한 다이어트를 요구했을 것이다. 영화의 미장센은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구성돼 있다. 교장실 복도, 라운드 토크 룸, 아이들의 카페테리아 등등 학교 안의 모습은 단순함을 넘어 너무나 드라이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어 여기가 ‘올바른 인간’을 키우기보다는, ‘현대 중산층형 인간’을 키우려는 공간임을 드러내게 한다. 이제 사느냐 죽느냐보다, 먹느냐 굶느냐의 문제다. 먹는 것에 담겨져 있는 자본주의 사회경제학과 먹는 행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시대이다. 너무 복잡하다. 대상이 누구인가. 세상의 수많은 정치투쟁이 대체로 갈 길을 잃은 건 상대 파트너, 대상, 싸움의 본질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칸이 주저없이 공식 경쟁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 그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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