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100년 대혁명 역사 알아야할 8년의 이야기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은 모든 테마를 영화가 시작하면서 곧장 드러낸다. 영화는 화면을 보여 주기 전 문장 하나를 띄운다. "불행한 민중이 혁명을 일으켰고 그 혁명이 민중을 불행하게 했다." 세기의 반란이었고, 세계를 뒤바꾼 시원(始原)이 됐던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 노(老)감독이 다소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는 그래서, 다소 듬성듬성할 만큼 바쁘게 가는 느낌을 준다. 과도한 비극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노감독의 의도된 축약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감독이 자신의 나이 87세를 고려해 과거의 역사를 빨리빨리 정리하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 영화는 현재 한국에서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100년 대혁명 역사 알아야 이해할 8년의 이야기

프랑스 혁명은 짧게는 1789년에서 1794년의 테르미도르 반동(공포정치에 반대하는 정치 제 세력의 연합 쿠데타)까지 5년을 말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훨씬 더 긴 기간이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정치범들(이라고 명명된 다수의 민생사범들)을 탈출시킨 민중 반란부터 1848년 2월 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를 얘기할 때도 있고, 여기서 좀 더 연장해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로 다시 제2 제정이 시작되고 1870년 보불전쟁의 패전으로 그가 몰락하면서 1877년 제3공화국이 수립되지만, 다시 파리코뮌의 결성과 내전까지를 기록하는, 전체적으로 약 100년의 핏빛 시대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나폴레옹'은 제목과 테마 그대로 나폴레옹의 이전 시점과 이후 시점을 담아내지는 않는다. 전(前) 시점이라면 그러니까 1789년 혁명이 왜 시작됐고 불과 5년여 만에 어떤 과정을 거쳐 변질했으며, 또 어떻게 나폴레옹이라는 일개 포병 대위가 장군으로 고속 승진한 후 1799년에 스스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것이다. 스콧은 이 부분을 건성건성 뛰어넘는다. 후(後) 시점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나폴레옹은 모든 군사 전투의 지략가이자 전쟁 영웅이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집권한 기간은 1804년부터 1812년까지 8년에 불과하다. 이 8년을 제외하고 앞선 5년이든 그 뒤의 약 60년이든 서사(敍事)로 일일이 짚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분량이어서 감독으로서는 '이야기를 듬성듬성 건너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 '나폴레옹'은 단순한 역사영화가 아니라 매우 '역사 지식인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100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지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사람이 보면 매우 흥미롭다. 감독이 얘기하는 바를 간파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 100년의 역사에 완전히 무지한 쪽이라면, 영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라는 작은 체구의, 콤플렉스 덩어리의 하층 계급 남자와 그를 성적으로, 가스 라이팅으로 끊임없이 쥐고 흔들려 했던 조세핀이라는 사교계 여성 간의 매혹적이고 뜨겁지만, 한편으로는 농염한 정사의 러브스토리쯤으로 받아들여지게 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리들리 스콧 감독은 나폴레옹의 정복욕, 권력욕에 군불을 땐 심리적 동인과 동력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궁극적으로는 그걸 통해 정치권력이라는 것 자체가 갖는 허망함과 무용함을 얘기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감독의 진정한 의도는 그 모든 것이 시대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려 했거나 아니면 전자와 후자가 씨줄과 날줄로 연결된 것임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을 터이다. 시대의 문제가 한 사람의 권력욕을 키워 냈고 그 같은 헛된 욕망은 또 다른 자아의 분열과 해체로 연결된다는 식이다. 모든 독재자, 모든 권력자가 늘 그렇게 됐듯이. 영화 '나폴레옹'은 그 시원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혁명과 오늘 잇는 고리 찾게 하는 역사영화

감독이 내세우는 그 의미의 가치를 알아채느냐의 여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나폴레옹'이라는 영화가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 혁명의 시대를 더 알고 싶게 만들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의 시대를 그때와 연결하는 고리들을 찾아내고 싶게 만들고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영화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얘기하려 하는 법이고 바로 그 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영화 '나폴레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 당시의 정치 세력의 판도, 그 지형도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프랑스 혁명 100년은 크게는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왕당파는 처음에 부르봉 왕가의 유지와 복원을 목표로 했던 부르봉파와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던 오를레앙파로 나뉘지만, 이후에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황제파 혹은 그의 성을 딴 보나파르트파까지 세 파로 나뉘게 된다. 공화파는 흔히들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로 나뉘지만, 이것은 1870년대 이후로 가면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분열된다. 지롱드파는 왕당파의 입헌군주제주의자들, 곧 오를레앙파와 손을 잡을 만큼 영국식 왕정체제를 선호했던 인물들이고 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숙청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1789년 초기 혁명 당시 권력을 쥐었던 세력은 산악파라 불리던 자코뱅들이었다. 이들의 중심인물이 장 폴 마라와 당통,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였다. 이중 로베스피에르가 이른바 독재 정부인 공안위원회를 주도했고 그가 이용한 집단은 상 퀼로트라 불리는 극도로 분노한 빈민 하층 계급이었다. 상 퀼로트를 앞세운 로베스피에르의 극단적 공포주의는 수많은, 불필요한 살육을 초래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단두대로 처형한 일이었다. 이런 혁명 과정의 잔인성을 목격한 주변 국가들은 대프랑스 연합국 동맹을 결성하고 마침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합스부르크가(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주 출신이다. 이들과의 전쟁은 재정을 더욱 파탄으로 몰고 갔고 국가를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으며 결국 나폴레옹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영웅 아닌 욕정과 권력에 눈먼 장군

이런 전 과정의 얘기가 영화에서는 단 20분 정도로 축약된다. 나폴레옹(호아퀸 피닉스)의 등장은 마리 앙트와네트의 잘린 목이 군중의 환호와 야유 속에 단두대 위에서 들어 올려지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그가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후 자코뱅의 극단주의에 질린 여러 정치 세력이 연합해 세운 집정 정부가 군사권력인 나폴레옹을 앞세우지만, 그가 오히려 이 틈을 노려 쿠데타를 일으키는 장면이 초반 장면에 해당한다.

특이한 것은 리들리 스콧이 그의 쿠데타 장면을 위엄있고 웅장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은 오히려 집정 세력들에게 몰매를 맞고 의사당 밖으로 쫓겨나지만(그는 채신머리없이 헐떡이며 도망 나오다 계단 밖으로 굴러떨어진다) 의회 의장인 친동생의 지원과 무장 호위대들을 동원해 정치권력을 우격다짐으로 찬탈한다.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의 심리적 약점을 더욱 파고드는 노선을 택한다. 그가 조세핀(바네사 커비)을 만나 사랑과 욕정에 매달리고 또 그 욕정이 후계 구도에 집착하게 하면서 자신의 권력에 점점 더 눈이 멀어 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나폴레옹은 역사가 말하듯이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으며 높은 식견의 정치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그는 뛰어난 장군이었고 군사적 지략가였으며 탁월한 포병 전술을 구사한 지휘관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기대고 '과도하게' 권력을 부여해 '과도하게' 오염되는 경향을 반복한다. 나폴레옹 집권 약 10년의 기간과 나폴레옹 이후 모든 권력자의 시간이 그리 다르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폴레옹이 결국 실각하게 된 것 역시 그처럼 '과도한' 권력욕 때문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르 2세 치하의 러시아와 싸워 전설의 대패를 한다. 200만 명의 원정 군대가 순전히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고 그중 4만 명만이 살아남았다. 러시아의 젊고 교활했던 황제는 모스크바를 비우고 퇴각하며 나폴레옹 군대를 러시아 안으로 깊게 유도하면서 곳곳을 불태웠다. 보급로가 끊겼고, 러시아의 추위는 프랑스군의 전투력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진격 이전에 이미 퇴각했어야 옳았다.

 

리들리 스콧이 완벽 재생한 나폴레옹의 두 전투씬

그런데도 영화 '나폴레옹'은 대규모 전투씬에서 소소한 디테일을 살리면서까지 냉혹하리만큼 리얼한 장면을 제공한다. 특히 나폴레옹의 전쟁사에 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개의 전투 장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대적 실패로 끝난 러시아 원정과 그의 마지막 워털루 전투 장면이 그것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갖는 전설만큼 이 영화의 두 전투 장면은 향후 영화사에 길이, 그리고 영원히 전설로 남을 것이다.

영화 '나폴레옹'이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은 것은 방대한 역사를 너무 간단하게 짚고 간 감독의 서술 방식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아예 방대한 역사를 알려고 하지 않거나 그렇게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꼭 프랑스 혁명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을 알면 정치혁명이라는 것이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떻게 해야 변질하지 않으며, 또 어떻게 지켜 나아가야 할지를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노구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의 영화 '나폴레옹'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만들어 가게 하는 작은 오솔길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같은 소망은 감독 스스로 극단적으로 진영이 양분된 미국 사회를 보면서,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을 보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 소망의 요인에 동의하며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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