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이장-귀촌 활동가 투톱 시스템 바람직

기초지자체-중앙정부가 각각 지원하도록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고통, 접촉, 압력, 온도 등을 느끼는 우리 신체의 감각점은 감각기관의 말단 부분에 많이 분포돼 있다. 그리고 각 감각점들은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감각점은 그 위치가 말단일 뿐 기능은 첨단이다. 말단 기관이자 첨단 기관이다. 리(里)는 농·산·어촌 행정체계의 말단 조직이다. 그러나 첨단 조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장 수당을 올려도 마을이 살아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를 그냥 단순한 말단 조직으로 놔두고 소멸위기의 마을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경험 속에서 얻은 생각이다. 

뇌에 고통 전달 못하는 말단 행정조직 리(里)

재난 현장의 현장 지휘자가 첨단 지휘능력을 발휘해야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인구가 소멸하고 있는 리(里)는 재난지역과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리의 이장은 첨단 지휘자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물론 이장 수당 10만 원 올리면서 말단 조직을 첨단 조직으로, 이장을 첨단 지휘자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으로 치면 병원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가능한 모든 치료를 복합적으로 받아야 할 환자와 같은 소멸위기 마을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안일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없다. 신체 말단 기관이 느낀 고통이 신경세포를 통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뇌는 말단 기관의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손가락이 절단나 피가 철철 흘러도 그냥 무감각하게 쳐다보게 된다. 대한민국 중앙권력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고장 난 말단 조직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행정체계로 마을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뇌처럼 된 것은 아닌가? 그동안 마을만들기를 하고, 여러 마을을 지원한 경험 속에서 행정 말단 조직을 어떻게 첨단 조직으로 만들지, 말단 조직인 리에 대한 중앙권력의 감수성을 어떻게 높이고 제대로 전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나의 문제 제기적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선주민과 귀촌인의 협력적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난 기본적으로 선주민과 귀촌인(귀향인 포함)의 협력적 리더십이 리 조직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선주민은 마을에서 같이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암묵지와 같은 정보를 갖고 있으나 이를 세상의 흐름에 연결해 발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고, 귀촌인은 마을 일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는 있으나 그 마을만의 고유한 저력을 끌어내기에는 역시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지금 대다수의 리는 선주민의 리더십과 네트워크에 기대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거시기가 거시기 하니까 거시기 하지”라는 말을 알아듣는 선주민과 공무원끼리 마을 일을 하는 기존의 방식대로는 기존의 방식대로 소멸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때로는 역량 있는 귀향인이 선주민과 귀촌인의 장점을 겸비한 지도력을 보이며 모범적인 마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이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라는 점에서 풀뿌리 주민자치의 현장인 리에서도 견제와 균형의 리더십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본다. 

이런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와 관련한 기존의 논의들은 마을의 상황에 따라 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이장과 마을 사업을 주관하는 위원장의 체계를 제안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또한 기존의 이장과 별도로 귀촌인 중심의 ‘청년 이장’ ‘문화 이장’과 같은 직을 둬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협력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농촌체험마을의 위원장과 마을 이장과의 불화, 마을기업 대표와 이장의 불화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소통과 협력이 잘 안 되는 것은 비단 촌의 문제만은 아니다. 매일매일의 뉴스에서 불통과 상쟁을 목도하며 ‘사회고위층이라는 사람도, 배웠다는 사람도 저러는데…’라는 국민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촌민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더구나 ‘부정편향’의 알고리즘을 활성화시켜 돈을 버는 SNS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증오, 배제, 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와 평화로운 숙의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마을과 사람을 선발하고 연결하고 지원하는 시스템

내가 제안하는 모델은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 이장과 마을활동가(로컬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는 귀촌인의 협력 그리고 두 리더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기본 구상은 다음과 같다. 

 

1. 귀촌인을 활용해 마을 발전을 희망하는 마을과 귀촌 희망 도시민을 선발해 연결하고 지원하는 중앙정부 사업 추진. 마을과 해당 지자체는 사업추진 주도 및 귀촌인의 정착 지원, 중앙정부는 귀촌인의 교육과 활동비 및 사업비 지원

2. 마을 이장과 귀촌인 활동가가 같이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조직(법인) 설립 및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중간지원

3. 이 사업을 추진하고 중간 지원하는 지자체의 읍·면에 중앙정부 5급 사무관을 파견 근무케 하고, 근무한 사무관에게 서기관 승진 인센티브 제공

지역 아닌 ‘잘할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 선결과제

위 세 가지 구상은 기존의 마을만들기 사업들과 유사한 점들도 있고 전혀 새로운 제안도 있다. 핵심적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유사 사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지역’이 아닌 ‘사람’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 사업을 하려 한다면 그 일을 잘할 사람을 뽑아 파견을 한다. 실력도 검증받지 않은 현지인에게 큰 예산을 주고 일을 덜컥 맡기지는 않는다. 어느 마을을 부흥시킬려면 역시 그 일을 잘할 사람을 그 마을에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이와 유사한 사업들은 마을에서 실제 일할 전문가에 대한 고민은 없이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격이었다. 그것이 ‘주민주도’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주민주도’ 뜻은 좋다. 그러나 그 마을에 전문성을 갖춘 주민이 없는 상황에서 추진되는 ‘주민주도’는 위장된 ‘행정주도’ 사업이거나 지역 토호들의 새로운 수익 사업처럼 된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사업의 결과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형태가 되면 주민은 행정의 지원을 계속 요구할 명분을 갖게 되고, 지방행정은 주민이 주도하는 형태를 띠었으니 부실한 사업 성과에 대한 책임을 면하면서 계속 예산을 요구할 명분을 갖게 되고, 중앙행정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 예산을 사용했다는 명분을 챙기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출발점은 어쩔 수 없이 의지와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선주민과 귀촌인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수적인 선결과제다. 

선주민-귀촌활동가-지자체 공무원-중앙정부 간 견제와 균형

둘째, 사업 전반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집중된 권력은 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공화정의 기본적인 전제이기도 하다. 지난번 칼럼에서 이장의 이중적 지위 - 선출직이면서 동시에 임명직 - 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설명한 바 있다. 이장은 전적으로 주민 선출 방식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마을활동가적 성격을 띠는 귀촌인은 행정에 의해 월급을 받고 선발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장은 마을의 대의기관인 마을회를 대표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귀촌 활동가는 마을 공복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입법부, 행정부의 기능을 각각 마을 이장과 귀촌인 활동가가 역할 분담하며 마을에서도 민주공화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을 내부, 마을과 지자체, 지자체와 중앙정부 모두 견제와 균형을 하며 협조를 할 수 있는 설계를 하는 것이다. 선주민과 지자체 공무원이 이심전심 짬짜미를 하려 한다면 중앙정부의 공무원인 귀촌 활동가가 견제를 하고, 선주민과 귀촌활동가가 불법과 해태의 유혹에 빠질 위험성은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견제를 하고, 귀촌활동가와 중앙정부가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면 마을의 대의기관과 지자체가 함께 대응을 하는 등 최대한 견제와 균형의 공화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 선출된 이장이 설령 기존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뒤집으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선주민, 귀촌인, 지자체 공무원, 중앙정부 공무원이 서로 견제와 균형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가지며 공동의 비전을 갖고 협력적 실천을 해나갈 수 있도록 공동의 경험, 기억을 만들어 내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지속적인 중간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공화정이 마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참여하는 귀촌인 활동가 로컬 크리에이터의 모습은 내가 주장하는 공정귀촌의 모습이기도 하다. 

말단을 첨단화 하고 중앙 간 막힌 전달체계를 뚫어야

셋째, 마을에서 중앙까지 실질적으로 작동가능한 행정전달체계에 대한 설계다. 위 구상 1번과 2번이 말단 조직을 첨단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제안이라면 3번은 우리 몸의 중추신경과 같은 전달체계를 만들기 위한 제안이다. 흔히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 경험상 중앙은 촌을 너무 모른다. 중앙에서 만든 사업 계획들은 그 취지는 좋으나 이상적인 업무추진 여건에서 평균 이상의 사무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사업 설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로 인해 현장에서 문제점이 생겨도 제대로 피드백이 안 된다. 

뭔가 전달체계에 벽이 느껴지지만 그 벽을 뚫는 것은 촌민도, 지방공무원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촌민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대변할 지위와 역량이 부족하다. 지방공무원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상부기관과 불편한 소통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중앙에서 기안해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사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떤 오류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피드백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오류나 허수가 생겨도 교정되지 않고 각종 성과 지표는 그대로 보고된다. 어떤 기초지자체는 그 성과 지표에 힘입어 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 지자체의 소멸위기가 개선됐다거나 지역균형발전이 됐다는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수백 조의 예산을 썼는데 백약이 무효다, 라는 식의 보도를 접할 뿐이다. 

흔히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추었다고 얘기되는 요즘 청년들, 그 가운데서도 고시 패스한 5급 공무원 청년들이 대부분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에게 촌에서의 근무 경험은 국가공무원으로서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한편 기초지자체의 공무원은 중앙정부 공무원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목말라한다. 그런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지역, 학연, 혈연을 통해 끈을 찾으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3번의 제안은 말단과 중앙의 연결을 구조적으로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제안이다. 말단을 첨단으로 만들고 말단의 수요를 중앙이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제안이기도 하다. 

‘공무원답게’로 안 되면 ‘전혀 공무원답지 않은’ 방식은 어떤가

읍·면장은 5급이다. 같은 5급의 승진을 앞둔 국가공무원이 읍·면에 와서 현장의 상황도 파악하고 해당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각종 국가사업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소통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기초지자체와 중앙정부 사이의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한다면 내실 있는 성과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공무원이 다시 중앙으로 돌아가 지방공무원과 소통을 한다면 훨씬 현장 밀착형 사업 추진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시도를 일단 89개 인구감소 지역에서라도 먼저 시행을 해보면 어떨까? 인구감소 지역에는 매년 60억에서 120억의 예산이 지원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예산이 그저 또 예전처럼 허투루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사업의 작동 방식은 예전 그대로다. 해당 지역의 허울 좋은 ‘주민주도’에 기대고, 지역에 사용될 사업비는 많은데 인건비는 없어서 전념할 사람에 대한 투자는 없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혁신의 한 사례로 충주시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충TV’을 운영하는 김선태 주무관을 소개했다. 이후 김 주무관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충TV’를 만들 때 ‘전혀 공무원답지 않게’ 홍보물을 만든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소멸위기의 마을, 이것은 지금까지 ‘공무원답게’ 일을 추진하면서 만들어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소멸위기의 마을을 살리는 방법도 ‘전혀 공무원답지 않은’ 방식으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의 제안이 그런 전환에 작은 단초라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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