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윤석열 정부의 노동 퇴행은 국제노동기구(ILO)까지 비난할 만큼 호가 났다. 개혁 의제는 일찌감치 실종됐고 개혁의 동력도 잃었다. 실패가 예정된 드라이브였다. ‘법치’를 내세웠지만 개혁의 변죽만 울릴 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는 모양새였다.

윤석열 정부의 앞날은 길어봤자 3년 남짓, 노동조합은 맷집으로 버틸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민주주의를 위협할지언정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투쟁 속에서 자랐고 아직은 젊어 역동적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존재감 잃은 야당, 실종된 개혁의제

문제는 딴 데 있다. 여의도에서 노동‘정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야가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가운데 민생은 실종됐고 덩달아 노동개혁도 사라졌다.

야당은, 민주당은, 무력했다. 노동자가 야만적인 폭력에 희생되고 정부의 불의와 맞설 때도 야당은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을 꾸리고 한국노총과는 정기적으로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열고 있지만 공감 없는 연결이었다. 민주노총과는 담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정도였다. 지난 5월, 민주노총이 ‘산별교섭의 법제화’를 규정하는 입법청원을 달성했지만 당과 노조 사이에 공명은 없었다.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지만 민주당이 사회적 대화전략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경사노위가 제 역할을 팽개쳤다고 사회적 대화의 의미나 대안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국회가 주도하는 의제별 사회적 대화나 민주당이 집권한 지자체에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달리 바쁜 듯했다.

노동개혁에 대한 비전이나 전략도 없었다. 대선 당시 내걸었던 의제조차 깡그리 모르쇠했다.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 한국형 노동회의소 설립, 초기업 단위 단체교섭 활성화와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정의로운 전환 컨트롤타워 설치 등이 그런 것들이다. 정부와 경사노위가 제각기 전문가위원회를 꾸리고 여당은 노동개혁특위를 띄워 모양을 잡고 있지만 민주당에선 위기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노동탄압 대응은 물론 노동개혁이라는 점에서도 민주당은 낮달처럼 무용했다.

국힘이 노동개혁 의제를 들고 나섰다

뒤통수를 얻어 맞았달까, 민주당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국힘이 노동개혁을 선점하고 나섰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동노동임) 원칙의 법제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확대적용, 그리고 근로자 대표제의 개선 등이 그것이다. 동노동임법은 지난 5월 31일, 김형동 의원이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반전이었다.

노동탄압을 일삼는 정부에서 여당이 어떻게 ‘진성 개혁’을 들고 나왔을까, 윤 정부가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꾸면서 임금을 아래로 평준화하려 든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민주노총) 노동조합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야당이 동조하면 둘을 싸잡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 총선에서 심판하려는 술수라고도 했다. 하나같이 여당의 진정성을 문제 삼았지만 이는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야당과 노조의 대응이 여당의 진정성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강병원 의원(2020.6.19.)과 박광온 의원(2021.2.2.)이 동노동임의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형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를 명토 박은데다 파견노동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법률의 적용범위를 사업장 내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용형태나 성별에 따른 기업 내의 임금격차를 넘어 기업 간의 임금격차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한계에 속한다. 처벌조항이 없다거나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들어’ 사용자가 정한다는 점도 개선 지점이다.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를 적용대상에서 뺀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개혁 의제가 개악의 수단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거대한 위협이다. 동노동임의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포함한다는 것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는 기초적인 지렛대다. 김형동 의원의 제안이 사업장 안에 갇혀 있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라는 긴 여정을 법으로 시작하는 것은 의미가 가볍지 않다.

동노동임의 원칙은 직무급을 중심으로 삼는 임금체계의 개편을 지향한다. 직무를 분류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나 거기에 따른 임금보상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기업 차원에서 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산업별 노사교섭이 담당할 영역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도 단체협약이 적용되어야 한다면 이 역시 산별 협약을 기초로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은 산업별 교섭체계에서 비로소 연대임금정책이 된다.

동노동임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임금 통계의 정비는 물론 임금 직무정보 시스템의 구축과 공시가 필수적이다. 중소 영세기업이나 하청기업의 임금 지불능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의 개선은 물론 장기적으로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는 근로자 대표제가 작동해야 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노동임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가령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관련 특위를 꾸리되 민간 자문위원으로 노사정 및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도 방안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너머 바라보며 노동개혁 이끌어야

동노동임의 원칙을 입법화한다는 것은 그간 당위로 언급되던 원칙을 실천의 차원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적용하려면 임금체계의 개편은 물론 산별교섭체계의 형성이나 임금 공시시스템의 개선, 나아가 경제민주화를 필요로 한다. 만만한 작업이 아닐뿐더러 한 세대 이상이 걸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라는 절박한 과제를 국힘이 맡기엔 힘이 부칠 것이다. 국힘이 총선용 애드벌룬으로 동노동임법을 띄웠다고 하더라도 국힘이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고 국힘의 제안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은 민주당의 몫이다. 긴 여정의 굽이굽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힘의 법률안이 갖는 한계는 보완과 발전의 대상이지 폐기나 외면의 대상은 아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입법화는 민주당의 개혁 마인드와 실력을 가늠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다. 엄혹한 노동탄압의 시절. 민주당은 노동정의의 실현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 윤석열 정부 너머의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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