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태평양 세력의 대치, 지정학의 귀환
한쪽에 휩쓸릴 것인가, 대륙-해양 세력 아우를 것인가
분단 논리 앞에 대한민국의 지정학 전략 논의는 부재
지금 우리는 지난 백년의 시간을 통과해 엄청난 세계적 패권구도의 격동을 경험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자체가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대한 역사적 시기의 문턱을 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국의 지정학’을 넘어 ‘우리 자신의 지정학적 구도’를 짜는 일이다. 여기에 실패하면 패권체제 주도세력들의 격돌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희생당하고 만다.
20세기를 기점으로 근대의 역사에서 펼쳐진 제국의 지정학은 바다로부터 출발했다. 그건 미국이 태평양을 자신의 해상기지로 만들면서 제국의 문을 열게 된 1898년 즈음이었다.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이 <해양국가 권력의 역사(1660∼1783년까지의 역사에 미친 해군력의 영향/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를 1890년에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논의는 보다 공식적 규모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출현하는 중대한 과정이었다.
세계 지정학의 아버지로 등극한 영국의 핼포드 맥킨더(Halford Mackinder)가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대륙을 하나로 묶어 ‘세계의 섬(World Island)’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이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적 패권의 주도자가 된다고 주장한 것은 마한의 논지가 발표된 10여 년 뒤인 1904년이었다. 이른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지정학이 이렇게 등장하면서 제국의 지정학적 패권을 누가 쥐게 될 것인가가 주목되는 역사가 전개된 셈이다. 당시 우리는 청일전쟁으로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체제가 무너져가고 그 뒤로 이어진 러일전쟁으로 태평양 세력의 귀퉁이에 있던 일본이 대륙과 해양을 온통 집어삼키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시기였다.
그건 훗날 이 지역을 지배한 일본이 만들어나간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기본적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장악해 들어간 체제는 중국 대륙에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 충돌했고 태평양에서는 미국과 격돌하게 되면서 협공을 받고 해체의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은 1945년 제국의 패권구도에서 퇴각당하게 되었으나 그것이 우리의 온전한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한반도는 남과 북이 각기 해양과 대륙 패권에 의해 갈라졌고 특히 남쪽의 경우에는 미국의 지배적 관리 아래 들어가, 일본이 거기에 다시 끼어들어 중간관리자 역할을 복구한 체제로 편입되고 말았다. 한국은 이 패권구도의 종속변수에 머물렀다.
이런 상태의 결과로 우리는 대륙으로도 이어지지 못하고 태평양 체제에서 독자성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적 위상도 확보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써 ‘세계의 섬’에도 속하지 못하고 홀로 분절된 상태가 되어 그냥 군도(群島)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분단은 이 나라가 대륙과 바다 어느 쪽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봉쇄된 “고립된 섬”이 된 것을 의미하는데 그걸 우리는 일상에서 그다지 절실하게 깨닫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굳이 섬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산으로 둘러싸인 막다른 골짜기에 있는 마을, ‘동막골’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냉전체제 아래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정치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그걸 강화하는 시기가 이어져 왔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격돌의 현실에서도 대륙과 해양의 교량적 위치를 복원하는 우리 자신의 지정학적 전략도 포기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우리 삶의 반경은 대폭 줄어들고 세계정세에 대한 상상력도 거의 소멸한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는 소인국의 협소하고 자잘한 정쟁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유라시아 전체의 지정학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국제전략이나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체제의 핵심적 접점으로서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담론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분단의 극복이 이런 세계 지정학적 관점에서 다가서야 할 중대사안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미래가치를 애초부터 발상하지도 않는 옹색한 처지가 되고 있어도 이걸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망각되어 버린 탓이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그대로 일치하려는 행보를 더욱 적극화하고 중국에 대해 거의 적대적일 정도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그런 사고의 결과에 다름이 아니다. 제국의 지정학은 제국에게는 지배의 논리이고, 우리에게는 분열과 단절의 논리가 되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런 전망을 윤석열 정권이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야당 또한 이 수준을 제대로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세계체제적 변화와 관련된 논의와 주장과 담론은 이들에게서조차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분단논리 앞에서 꿈쩍도 못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1968년, 한국 정치를 직접 관찰하고 경험했던 미대사관 문정관 출신의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를 출간한 바 있다. 한국의 정치는 중앙집권적 틀로 압축되는 권력의 소용돌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정리한 것이다. 이와 함께 중앙권력의 움직임에 모든 것들이 빨려가는 상태를 저지할 힘을 갖게 된다면 한국정치의 변모가 기대된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의 논지를 동북아정세와 결합해 재구성해보자면 우리를 둘러싼 패권구도 자체가 지금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이걸 제어하면서 우리 자신의 지정학적 구도를 짜나가는 웅대하고 절박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면 우리는 그 해일과도 같은 파고에 휩쓸려 분해될 수 있다. 오늘날 이는 전쟁의 위기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위중하다.
결국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남과 북이 평화적 교류와 통합체제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근거지를 마련하는 작업이 된다. 그걸로 우선 고립된 섬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이다. 유라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체제의 결합으로 두 날개를 펼치는 우리의 지정학을 달성하는 비전과 의지를 중심에 놓을 때 거기에서 참다운 평화와 번영, 그리고 자주의 세계적 차원이 열린다.
우리의 국기 중심에 박힌 태극(太極)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정적(靜的)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건 음과 양, 대륙과 해양의 격돌과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거대한 동적 현실을 상징해주고 있다. 문제는 그 파고에 그래도 휩쓸려갈 것인가, 아니면 그걸 도리어 스스로 거세게 일으키면서 소용돌이의 새로운 중심과 방향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격돌의 조짐은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어지기 어려운 “긴장된 평형상태”가 생겨날 때, 이에 대한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자율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을 해체하자는 목소리, 그래서 한반도 전체의 통합이 우리의 지정학을 창출해 우리 모두의 삶의 영역을 바꾸고 확장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정치의 주발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미일 전쟁동맹 체제를 돌파하고 후쿠시마 핵폐기물 투기(投棄) 등을 저지하는 동시에 ‘민족해방’이라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고전적 임무까지 포괄해서 해결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담대한 의지와 용기, 그것이 관건이다. 그것이 당대(當代)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무다. 사실 모든 역사는 ‘당대의 역사(contemporary history)’가 아닌가? 그로부터 가장 절박한 문제의식과 무한책임이 생겨나니 말이다. 우리의 지정학적 실천과 투쟁, 우리가 내놓아야 할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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