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한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임했다. 그는 민주당 혁신에 매우 적절한 인물로 보였다. 과연 여당은 물론, 조선일보 등 정권과 야합한 언론이 각종 비난을 퍼부으며 공격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민주당의 이번 결정이 얼마나 그들로서는 불편한, 민주당으로서는 잘 된 선택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니었겠는가.
민주당은 이번 혁신위원회의 성공 여부가 당의 운명을 가른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했다. 과감한 당 내부 혁신 없이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상황도 인식해야 했다. 그동안 ‘자신들의 검찰총장’에게 정권까지 넘겨주며 국민을 실망시켜 온 민주당이 혁신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기존 틀을 과감히 깨는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간절함과 실행이 필요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개선이 아닌, 혁신이나 개혁은 기존 절차에 따라 진행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래경 이사장은 9시간 만에 사퇴했다. 예상했던 국민의힘과 적폐 언론 등 외부 공격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 못한 민주당 내 일부 정치인들의 격한 저항이 작동했다. 그들은 위원장의 불법, 편법 이력이 아니라 ‘편중되고 과격하다’는 등 개인 생각이나 사상, 이념까지 검열했고 당내 계파 운운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심지어 혁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도 않는 당내 절차까지 들이대며 공격했다.
이번 혁신위원회를 통해 당의 존립 여부를 걸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할 민주당이었건만, 당내 절차를 들먹이며 개인 생각과 사상 검열까지 요구하는 민주당 내 기득권화된 다선 의원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과연 민주당에 희망이 있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개혁을 요구하며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당 정부를 출범시킨 광화문 촛불 국민들이 그동안 느꼈던 실망과 분노의 원인을 새삼 재확인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조만간 있을 총선과 공천을 염두에 둔 당내 권력 싸움이자, 당 기득세력의 준동이라는, 혁신 의지는 찾기 힘든 민주당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국회 정문 앞에서 50여 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에 동조 단식을 위해 방문했었다. 바로 그 옆에는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농성 천막도 보였다.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은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고, 공영방송법이나 노란봉투법도 그리 될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권리입법 재·개정과 같은 장애인 단체들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더욱이 시민들의 시위조차 점차 불법화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을 보는 야당 지지자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생각과 심정이 있다.
그것은 ‘국회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민주당은 사회 개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연 민주당은 국민의 마음을 대변할 의지 내지 능력이 있는가?’ ‘민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나 하고 있는가?’ 등등의 생각과 함께 느끼게 되는 참담한 심정이다. ‘과연 민주당은 이런 지지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라는 최종 의문으로 귀결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일요일 하루를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보내면서 많이 들은 탄식은 ‘이런 법 제정을 왜 지난 촛불 정부에서 처리하지 못했을까’다. 지난 정부는 국민들이 요구했던 국가보안법 개정 내지 폐지 건도 전혀 진행시키지 못했다. 현 정권이 칼날을 세워 노동자들과 전교조 교사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정부 때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여러 법안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삼권 중에 촛불정부라는 행정권력과 180석 가까운 절대 다수 의석의 입법권력을 지니고도 국민들의 숙원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한 것이 민주당의 모습이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안면 있는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도 그와 비슷한 말을 듣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다.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은 야당 법안마저 반대하는 이유를 묻는 내게, 본인 지지자들의 입장이 있어서 반대하는 것임을 밝히면서, 동시에 하는 말은 “아니 이런 법안은 문재인 정부에서 처리했으면 좋았잖아요. 왜 넘겨 가지고…”다. 국민들뿐 아니라 심지어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도 듣는 이런 지적에 대하여 현 민주당 의원들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자신들의 책무에 대하여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검찰 독재 정부를 탄생시킨 가장 직접적인 기여는 지난 정부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검찰 개혁에 나선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의 저항과 난동은 군사독재 시절의 군부 행태보다 더욱 심각했다. 대학 본부까지 압수수색을 했고, 인권 말살 행보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상황의 중심에 윤석열 현 대통령이 있음은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해 당시 청와대나 민주당은 잘 알고 있었지 않았겠나.
그나마 당시 국민들은 추미애 장관의 등장으로 검찰 난동에 대한 임명권자의 제재나 징계를 기대했다. 과연 추미애 장관의 당당했던 윤석열 징계 조치도 있었다. 이때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의외로 관대했음은 훗날 사법부가 지적할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우리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보호하고, 오히려 추미애 장관을 사퇴시킨 이들이 누구인가? 분명히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었고, 진위는 확실치 않으나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에게 직접 사퇴를 언급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 등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앞에 절차 운운했던 모습도 기억한다. 개혁해야 할 기존 절차에 따르면서 개혁하겠다는 것은 국민 기만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참혹 그 자체다. 한반도 전쟁 위험은 높아지고, 사회 발전을 위한 법안 처리는 대통령의 거듭되는 거부권 행사로 차단되고 있으며, 노동계나 교사들조차 국가보안법으로 처리되고 있다. 전례가 없는 검찰의 야당 당사나 국회의원실, 언론사 압수수색마저 자행된다. 자연스레 거리에서는 촛불행동으로 대표되는 촛불시민들의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요구가 치열하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의 주요 종교계도 나섰다. 이 상황에서 국민들은 민주당을 더욱 지켜보고 있다. 지난 정부와 민주당의 무기력함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래도 오랜 전통의 민주당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쉽게도 고참 일부 다선 의원들과 그에 동조하는 내부 의원들이 초선 당대표를 흔드는 현실이다. 지난 총선 이후 그 유리한 여건에도 정권을 무기력하게 검찰총장에게 넘겨주어 지금의 검찰독재 정권을 탄생시킨 민주당이 여전히 반성과 내부 혁신은커녕 국민 기대와는 별개로 공천에 작동할 자신들의 당내 권력 확보에 혈안이고 당의 가치나 개혁에는 관심도 없다.
더욱이 이번 혁신위원장 사태를 보며 민주당에 걸었던 기대에 찬 시선은 흔들리고, 이제 국민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는다. 적폐 청산과 바람직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뜨거운 갈망이 차갑게 식어간다. 민주당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라는 심정이 시민사회에 팽배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함께 요즘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신당 창당 선언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개인 생각이나 이념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서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외쳐 온 민주당의 전통과 기본 가치마저 잃은 모습이다. 이번마저 민주당의 혁신이나 개혁이 무기력하게 찻잔 속의 몸짓으로 끝나면 더 이상 민주당의 존재 이유는 사라질 것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며 헛된 기대를 접을 것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기대를 짊어져 온 정당으로서, 당의 존립이냐 폭망이냐 기로에 섰다. 혁신만이 살길이건만, 민주당, 너마저도 혁신은커녕 기득권만 지키려는 적폐 정당으로 전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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