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영언론'도 '기자들의 신문'도 아닌 「민들레」인 이유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
유시민 작가

칼럼 연재 반년을 맞았다. 오늘이 열다섯 번째다. "하필이면 왜 「시민언론 민들레」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민들레」의 기사는 포탈에 없다. 내 칼럼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민들레」가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 그런 신문에 칼럼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묻는 것일 게다.

맞다. 옳은 지적이다. 내 칼럼은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쓴다. 왜? 나를 지키고 싶어서다. 세상은 못 바꾸어도 내 자신은 지키고 싶어서 쓴다. 비슷한 욕망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아서 칼럼을 쓴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해도 더 나빠지는 걸 막는 데는 도움이 될 거라 믿기에 쓴다. 다른 신문에는 내 글을 맡기고 싶지 않아서 「시민언론 민들레」에 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하겠다. 반년 맞은 걸 명분 삼아.

'갑질 유튜버'와 「조선일보」

5월 25일 경주경찰서는 40대 남자 A를 영업방해‧폭행‧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A는 경주시의 동네식당을 돌면서 '먹방' 영상을 찍어 올리는 유튜버다. 그런데 여러 식당에서 '저격왕'을 자처하면서 '망하게 하겠다'고 위협했고 때로는 폭력도 휘둘렀다. A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7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정보는 「조선일보」에서 가져왔다. '경주 갑질 유튜버'를 키워드로 관련 뉴스를 시간 순으로 검색하면 「조선일보」 기사가 맨 먼저 뜬다. 「조선일보」가 첫 보도를 했다는 뜻이다.

유튜브는 '새로운 미디어'다. 그런데 A가 한 행동은 전혀 새롭지 않다. 20세기 내내 싫도록 보았고 지금도 보는 '올드 미디어' 종사자들의 '완장질'과 근본적으로 같다. A는 힘과 기술과 요령이 부족했을 뿐이다. A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가 700명이 아니라 700만 명이라고 하자. 욕을 하고 협박하지 않고 식당의 위생 상태나 사소한 법 위반 사항을 촬영하고 식당 사장과 점잖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자. 식당 사장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얼마라도 돈을 주어 무마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면 A는? 광고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방송 내용을 좋은 쪽으로 바꾸면 된다. 만약 그랬다면 A를 비난해야 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가 특별히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를 한 건 아니다. 그런 거래는 스스로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한국의 '사영(私營)언론'이 오랜 세월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다. 어찌 A를 특별히 비난하겠는가.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있었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회동 씨가 5월 1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다. 다음날 숨을 거둔 그의 유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분신의 동기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하게 밝힌 문장이다.

그런데 5월 16일 「조선일보」는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최훈민 기자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5월 18일 「월간조선」은 유서 대필 의혹을 제기하는 김광주 기자의 단독보도 기사를 인터넷판에 올렸다. 고인이 남긴 유서 세 장 가운데 하나가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다르다"며 누군가 유서를 위조했거나 대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기사였다. MBC가 의뢰한 전문가의 필적 감정 결과와 수사 과정에서 나온 목격자들의 진술 등 모든 증거가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기사야말로 허황한 의혹 제기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그 기사들을 그대로 걸어놓고 있다. 익히 보아온 '완장질'이다. "민주노총, 너네 망하게 하고 말거야!" 「조선일보」의 행패가 경주의 '갑질 유튜버'의 행패와 무엇이 다른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9년 1월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2019.1.29 연합뉴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9년 1월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2019.1.29 연합뉴스​​

'사영언론'과 '기자들의 신문'

족벌언론‧재벌언론‧건설사언론을 모두 합쳐 '사영언론'이라고 하자. 나는 사영언론과는 거래하지 않으려고 한다. 1998년 기고 요청을 거절한 이후 지금까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인터뷰나 취재 협조에 일절 응하지 않고 살았다. 정치를 하던 때도 그랬다. 칼럼을 연재했던 「동아일보」와는 2002년 거래를 끊었다. 「중앙일보」 기자의 전화도 이제는 받지 않는다. 그 회사들이 만든 종편방송에도 더는 나가지 않는다. 「문화일보」와 「매일신문」 같은 「조선일보」 아류신문과 대기업과 건설회사 기관지 같은 경제신문들은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이런 신문방송은 공적 미디어가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지분을 소유한 '오너'들이 '언론인'과 '기자'라는 이름표를 단 종업원을 부리면서 자신의 이익과 신념을 실현하려고 운영하는 사기업일 뿐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은 요즘 내가 하는 거의 유일한 언론 활동이다. 내게 이 신문은 35년 전 「한겨레」와 같다. 왜 오늘의 「한겨레」가 아닌가? 오늘의 「한겨레」는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과 비슷한 '기자들의 신문'이다. 기자들이 자기네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다는 뜻이다. '사영언론'은 아니지만 '시민언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기자들의 신문'에는 기고하고 싶지 않다. 텍스트 미디어여서 내 말을 토막 내어 기사를 쓰기 때문에 인터뷰도 되도록 사양한다. 그러다보니 공영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이나 토론 말고는 갈 데가 없다.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싫어서 그런 곳도 가끔 간다. 사는 데 불편한 건 없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모두 나처럼 하라는 건 아니다. 나처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겠다. 나는 그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래도 되지 않겠는가. 누구든 좋아서 사영언론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굳이 말릴 필요도 없고 말릴 방법도 없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과 감정까지 굳이 감추어야 하는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문장을 감칠맛 나게 쓰는 정치철학자가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하는 걸 보면 딱하다. '명품 요리를 악취 나는 그릇에 담아내다니!' 「조선일보」 행사에 가서 축사를 한 진보정당의 젊은 국회의원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하는 걸 보면 화가 난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누군가를 '씹는' 일로 출연료를 받아 먹고사는 '생계형 모두까기 비평가'께서, 환갑을 기념해 「조선일보」가 베풀어준 인터뷰에 나와, 자신은 '생계형 찬양'을 하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래, 니 똥 굵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내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이다.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뭐라고 글 잘 쓰는 정치철학자와 용감한 국회의원과 자기성찰을 잊은 '모두까기 비평가'의 행위에 대해 옳으니 그르니 입을 대겠는가.

자신을 지키는 나름의 방법

통계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생명표」를 보니 내게는 23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다. 건강수명은 평균수명보다 짧으니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차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명표」는 말한다. 나는 마무리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내 인생은 내가 계획해서 꾸려나가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까? 내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못하겠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것이 사영언론이다. 사영언론은 한국 사회의 모든 정당한 기득권과 부당한 특권을 지키는 사냥개가 되어 있다. 그런 사실을 감추지도 않는다. 기득권을 건드리는 개인과 집단을 누구든 사정없이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다. 단순한 사냥개는 아니다. 그 자신도 정당한 기득권과 부당한 특권을 모두 누리고 있다.

사영언론은 유료부수를 속여 정부와 기업한테서 부당한 광고료를 뜯어낸다. 포장비닐도 뜯지 않고 폐지로 팔아넘긴 사영언론의 신문지는 계란판이 되기도 하고 동남아의 거리 음식 포장지로 쓰이기도 한다. 사영언론 오너와 종사자들은 사기행각을 벌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서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5년이 되면 물러나야 하는 대통령과 달리 사영언론 오너의 권력은 누구도 교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변화는 무엇이든 거부한다. 변화를 도모하는 세력을 공격하고 비난해 분열시키고 무너뜨리려 한다. 사영언론은 재벌 대기업과 한 몸이고 국힘당의 전위이며 권위주의 문화의 수호자이다.

사영언론이 우리 사회를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한다. 변화와 진보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잠시 되돌리거나 변화를 더디게 만들 수는 있다. 지난 1년이 증거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몇 년 더 이어질 것이다. 만약 사영언론이 국민 의식을 항구적으로 지배한다면 한국 사회에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공영과 사영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이 독재정권의 나팔수였던 시대를 거쳐 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하고 쟁취했다. 많은 시민들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사영언론'이 경주의 '갑질 유튜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알게 될 것이다.

남은 생애에서 내가 가장 젊은 때는 지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자아를 지키는 일뿐이라 생각한다. 나를 뭐 대단한 사람인 양 치켜세우며 인터뷰하는 「조선일보」 기자 앞에서 헤벌레 웃으며 포즈를 잡는 노인이 되기는 정말 싫다. 칼럼을 쓰는 주말마다 나는 날카롭게 깨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혼탁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를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으로 표현한다. 그게 칼럼을 쓰는 이유다. 독자 여러분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나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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