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조사, 공문서 토대로 시간대별 재구성
"대통령 집무실 가는 길에 4700명 경찰 배치"
"시내 시위 현장에 과잉 배치된 경찰들" 지적
"참사 일어나 인력 재배치 요청에도 '불가' 통보"
"시민들 분노, 점차 고위 지도자들 향하고 있어"
이태원 참사를 알린 첫 보도 때부터 안전요원과 대책 부재 탓에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미국의 대표적 정론지 뉴욕타임스. 이 신문은 17일에도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문의 분석기사를 싣고 당국자들, 특히 고위 공직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신문은 이날 '경찰은 핼러윈에 군중이 밀려들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왜 참사를 막을 수 없었나? - 공문서와 국회 증언을 토대로, 한국 당국자들이 158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군중 참사를 막을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음을 보여 주는 분석' 기사를 통해 시간대별로 사건의 추이와 거기에 대한 당국자들의 대응을 체크하면서 결정적인 구조 기회들이 제대로 된 대응의 부재로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당시의 현장사진들과 함께 면밀히 살폈다.
그 기사 전문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 관리들은 서울의 유명한 유흥가인 이태원의 핼러윈 주말이 많은 인파를 끌어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짓눌려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최근 며칠 동안에도 그들은 회의를 열고 무질서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보고서들을 제출했으며, 현지의 경찰서장은 상급자들에게 군중통제 요원들을 추가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몇 시간에 걸쳐 그들은 좁은 골목에 갇힌 파티객들에 대한 필사적인 구조 요청들을 접수하고, 당국자들에게 사람들이 “병목 지대”에 갇혀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며 대책을 세워 달라고 호소했다.
그럴 때마다 당국자들은 그런 경고들을 무시하거나, 158명이 죽고 196명이 다친 10월 29일 이태원 군중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들을 놓쳤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은 증언자들의 말, 조사관들이 알아낸 것, 의회 증언과 국회의원들에게 제출된 공문서들을 토대로, 안전에 대한 정부의 해이한 접근과 비상대응 실패를 둘러싸고 논란이 될 만한 새로운 세부사항들을 제시한다.
첫 번째 구조 요청이 있은 지 약 한 시간 반이 지난 뒤인 오후 8시까지도 그 지역에는 경찰관들이 10여명밖에 없었다. 파견된 비상요원들이 경찰관들에게 거리시위와 다른 사소한 사건들에 대처하도록 지시하는 동안 감시 카메라를 모니터링하던 관리들은 평소와 다른 점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구조 및 위기 관리 조치들은 조정 부재 또는 서툰 조정 탓으로 지연됐으며, 많은 감독관들과 고위 관리들은 밤 11시 또는 그 뒤까지도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국회의원들은 지금 무엇이 잘못됐는지, 특히 관리들이 문제의 초기 징후들을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구조대를 보내는데 왜 그렇게 오래 지체됐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것은 행정상의 무능이 빚어낸 참사”라고, 최근 밤에 혼자 이태원의 사고현장 골목을 찾은 민형배 의원(무소속)은 말했다. “우리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경찰과 소방서, 그리고 지역 구청을 비롯해서 비상대응 체제에 포함돼 있는 여러 관청들은 앞서 발표된 성명 외에 어떤 논평도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면서, 그 결과를 보고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백화점 붕괴, 여객선 침몰과 대형 화재 재난 등 인재로 인한 연이은 참사들에 시달려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 관저로 옮겨갈 때까지 붕괴된 (삼풍)백화점 자리에 지은 고층 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4월에 여객선(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그는 “희생자들에 대한 가장 진심어린 추모가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달에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난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겠다면 당신이 물러나라!”고 그들은 외쳤다.
초기 징후 무시
올해의 핼러윈 축제는 코로나 팬데믹 관련 규제가 풀린 뒤에 열리는 첫 행사여서, 규모가 커질 것이 뻔했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경찰과 소방서 그리고 용산구청의 공문서들에 따르면, 축제 며칠 전에 관리들은 밤거리의 안전과 무질서한 군중 관리 방안들을 논의했다. 그때 그들은 차로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과 “가짜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들, 그리고 “과잉” 노출이 될 수 있는 “비키니 걸”들에 대한 우려를 대체로 공유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인터넷을 통해 “핼러윈”과 “이태원”을 검색하는 사람들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휴일에 인기가 높아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당국자들은 오래전부터 걱정해 왔다. 야당 의원들이 입수한 경찰 내부 문서에서 경찰은 핼러윈 군중 규모가 더 작았던 2020년에 “압사(crush deaths)” 사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즐비한 술집과 식당들도 금속제 담벽과 같은 해밀턴 호텔의 무허가 건축물로 인한 혼잡을 가중시켰으며, 치명적인 군중 참사가 벌어진 골목 주변의 차선 제한 강화도 가세했다고 경찰과 서울시 관리들은 말했다. 용산구청은 불법 건축물들에 대해 벌금만 물리고 철거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호텔은 수사 중인 미결 사안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한국 정부는 군중통제에 대한 전문훈련을 받은 경찰대대를 운영하고 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의 리더십에 좌절한 수만명의 항의시위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4700명의 경찰들이 이태원에서 1마일(약 1.6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 도심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의 도로를 따라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그날 밤 13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모여든 이태원에 배치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참사 며칠 전에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서울경찰청에 핼러윈 현장에 배치할 경찰관들을 추가로 파견해 달라고 용산경찰서가 거듭 요청했다고 국회에서 밝혔다. 이 서장은 그러나 정치집회 때문에 그들을 다른 데로 빼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10월 25일 용산경찰서가 관할하는 더 작은 규모의 이태원 경찰서 서장도 상급자들에게 핼러윈 교통 통제를 위해 더 많은 경찰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경찰과 서울시 관리들은 그 다음날 핼러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태원 업주들을 만났을 때 군중통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우종수 경찰청 차장이 이달 말했다.
10월 29일 당일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관이 배치됐으며 그들 중에서 적어도 52명은 마약범죄 전담 형사였다.
지난 주 국회에서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때문에 군중안전 확보를 위해 배치돼야 할 경찰병력을 빼돌렸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마약에 상당히 집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최근 몇 주 동안 대통령이 지시한 새로운 반마약 캠페인과 이번 이태원 참사는 관련이 없다면서, 대신 군중사고를 예상하지 못했다며 경찰과 다른 기관들을 비난했다.
절박한 탄원 무시
경찰은 예년의 할로윈 교통량을 토대로 오후 8시 이후에 137명의 경찰 대부분을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경찰 기록을 검토한 이형석 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오후 8시 이전에는 이태원경찰서 소속 경찰관 11명만 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관리들이 군중을 모니터링하고자 했다면, 실시간 (군중)밀도를 추적하기 위한 서울시의 새로운 디지털 지도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이와 별도로 이태원 전역에 감시카메라를 가동하고 있는 용산구청은 별다른 특이사항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행안부 고위관리가 브리핑에서 밝혔다.
오후 6시 34분부터 이태원에서 절박한 구조요청 전화가 112 긴급 핫라인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에게 공개된 통화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통 혼란” 상태로 군중은 “통제 불능”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로 전화를 건 사람은 “사람들이 짓눌려 죽을 것 같다”면서, 골목 양쪽 끝에서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알렸다.
그때부터 오후 10시 11분까지 사람들이 쇄도해 오고 있다는 전화가 10통 이상 걸려 왔다. 첫 번째 전화는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기각됐다고 경찰청 고위관리인 황창선씨는말했다. 긴급 파견자들(dispatchers)도 후속 전화들을 면밀히 추적하지 않았다.
위층에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류미진 총경을 비롯한 상급자들도 위기 고조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류 총경은 국회 청문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것뿐"이라며, 감독관을 따로 두는 것이 관례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구조대가 이미 현장에 도착한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난 오후 11시 39분까지 위기상황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핫라인 긴급 파견자들은 오후 8시 37분과 오후 9시 1분 두 차례에 걸쳐 별도의 119 재난대응센터 파견자들에게 군중 밀집 가능성이 있다는 신고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소방서가 국회의원들에게 한 답변에 따르면, 그들 파견자들이 발신자들과 통화한 후 상황은 종결됐다.
“우리 근무자들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119 핫라인을 관리하는 경찰청의 남화영 과장대리는 국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태원 경찰서의 김백겸 경사는 자신과 동료들은 저녁 내내 일상적인 업무로 바쁘다고 말했다. 밤 10시 무렵 그는 동료 2명과 함께 문제의 그 골목길 근처에서 거리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말했다. 거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군중 참사 현장을 목도했다. “우리는 비명과 소란을 들었다. 계속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밀려오는 인파에 짓눌려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보였다”고 김 경사는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너무 늦게 울린 경보
밤 10시 15분에 들어 온 119신고 전화가 마침내 당국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통화 기록을 보면 전화를 건 사람은 “경찰, 소방차 등 당신들이 가진 것을 모두 보내라. 사람들이 눌려 죽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거리에 쓰러진 부상자들이 보인다.” 이후 몇 시간 동안 86통의 전화가 핫라인으로 더 걸려 왔다. 파견자들은 비명, 울부짖음, 신음, 그리고 "제발 살려주세요!", “밀지 마! 밀지 마!’”라는 소리들을 들었다.
인파 급증에 대한 최초 보고가 있은 지 4시간이 넘게 지난 오후 10시 42분에야 소방관들은 피해자들과의 첫 공식적인 접촉을 보고하며 긴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소방관들의 통신 녹취록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우리는 15명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구조대원 추가 파견을 거듭 요청했다. 그는 또한 구급차와 응급 구조원들을 가로막고 있는 군중과 차량을 치우고 길을 여는 것을 도와 줄 경찰관을 더 많이 파견해 달라는 간청도 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경찰에 따르면 그날 밤 단 한 명의 마약 사용자도 잡지 못한 마약수사관들은 밤 10시 48분이 되어서야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 정치적 시위가 끝난 지 3시간이 지난 밤 11시 40분에야 군중통제 요원들이 이태원에 배치됐다.
조직 간 조정 부재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국립응급의료원 파견요원은 경찰이 일부 구조대원들의 현장 접근을 막고 있다고 소방당국과 서울시 관계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어느 국회의원이 입수한 ‘기관 간 교신’에 따르면, 그 파견자는 한때 “우리 팀 파견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 파견자는 119명의 동료들에게 "이제 사망자들의 수송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먼저 위독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아직 살아있는 40명부터 옮겨야 한다.”
정부는 처음에는 자발적인 파티 참석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는 '법'과 '제도'의 부재를 이유로 내세웠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0월 31일, “내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변명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점차 커지자 정부의 어조도 바뀌었다. “시스템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윤 대통령은 지난 주에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오히려 현장의 경찰들을 탓했다. 그는 “137명의 경찰관들이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면서 “그들은 왜 4시간 동안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고 질타했다.
경찰과 소방관들 중 다수가 직무정지 처분을 받거나 형사상 과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 중에 조사를 받고 있던 한 경찰관이 지난주 자살했다.
고위 지도자들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 시민들은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용산소방서 홈페이지에 이들이 보낸 감사의 글이 쇄도했고 이태원 경찰서에는 프라이드 치킨과 귤을 보냈다. 시민들의 분노는 점차 고위 지도자들을 향해 가고 있다. 시청 인근에 정부가 마련한 추모 공간에서, 아들을 잃었다는 한 여성은 윤 대통령이 보낸 근조 화환을 부수었다. 한 시민은 “쪽팔리는(embarassing)”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46피트(약 14미터) 길이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고위 지도자들의 부재는 위계적 관료제의 국가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윤용균 세명대 공공안전학과 교수는 “한국 공무원들은 상사가 지시하지 않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밤 11시 1분에 참사를 알게 됐고, 경찰과 소방관을 총괄 지휘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밤 11시 20분에야 알았다.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이태원에 가지 말라는 휴대전화 경보를 발령한 것은 자정이 다 돼 갈 무렵이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이 밤 11시 36분에 전화로 알려 줄 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초저녁까지 정치적 시위 현장을 지키고 있던 용산 경찰서장 이씨는 그날 밤 핼러윈 축제를 챙길 계획이었다. 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경찰 무전통신을 들으며 1.5마일(약 2.4킬로미터) 떨어진 이태원으로 향했다. 감시카메라에 담긴 화면을 보면, 교통체증이 심해 차에서 한 시간을 헛되게 보낸 뒤, 그는 차를 버리고 뒷짐을 진 채 가벼운 걸음걸이로 걷기로 했다. 그는 나중에 국히 청문회에서 밤 11시에 이태원에 도착할 때까지 참사가 벌어지고 있는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이 서장은 “너무 참담하다”면서 “평생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