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문가 입 빌어 '과거 얽매이지 말라' 훈계?

'대한매일신보 계승' 자랑하는 신문의 자기부정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한국 전문가도 아닌 일본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론까지 등장했다. 9일 서울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일본의 한일 및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인용해 “사과 충분치 않지만 미래 성과 내야”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하며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배려’했으니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해 협력에 나서야 할 때라는 논지를 폈다.

 

서울신문의 9일자 1면 머릿기사는 일본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한국인들에게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를 내보내고 있다.
서울신문의 9일자 1면 머릿기사는 일본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한국인들에게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인들 과거에 집착하는 국민들인 듯 '충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국내 유력언론들의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에 대한 반국민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서울신문은 일본의 시각에서 한국인들을 과거에 집착하는 국민들인 듯 훈계하는 식의 보도를 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이 신문의 이 같은 보도는 서울신문이 스스로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듯 구한말 항일 언론 구국운동을 펼쳤던 대한매일신보의 맥을 잇는 한국 언론의 역사의 한 상징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훼손하는 보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신문이 이 기사에서 인터뷰한 일본의 대학교수와 연구원들의 주장은 대체로 “일본 총리로서는 할 만큼 했으니 한국인들은 더 이상 과거사를 갖고 시비를 걸며 한일관계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윤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보답을 했다”

“역대 일본 정부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다’며 개인 차원에서의 진심을 밝힌 것은 3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보다 더 진전된 표현이었다”

“한국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전문가들은 7일 한일정상회담에서 나왔던, “많은 분이 힘든 경험을 한 것에 가슴이 아프다”는 자국 총리의 발언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해석하고는 “과거에 대한 반성만이 아닌 미래의 협력, 성과가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한일정상회담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양국 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해 일본 전문가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다고 쓰고 있다.

사설에서는 “윤 대통령 언급처럼 과거사가 정리 안 되면 한일 미래협력은 없다는 인식에서 이제 우리도 벗어날 때가 왔다”고 해 한국인들이 ‘과거사 굴레’에 갇혀 있는 듯 질타조로 말하고 있다.

다른 신문도 아닌 서울신문의 이 같은 논조는 대일본 관계에서, 특히 대일 굴종외교라는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사안에 대한 보도라는 점에서 이 신문의 뿌리와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비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신문은 스스로 119년의 역사의 한국 언론사 최고(最古) 신문사라는 것을 자랑한다. 이 신문은 자사의 연혁을 소개하면서 “구한말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항일구국운동을 펼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계승한 서울신문은 우리 민족사와 영욕을 같이해 왔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신문이 입주해 있었던 한국프레스센터 1층에 설치돼 있는 이 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 베델(한국명 배설)과 양기탁 선생의 흉상. 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신문이 입주해 있었던 한국프레스센터 1층에 설치돼 있는 이 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 베델(한국명 배설)과 양기탁 선생의 흉상. 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독립언론 외치던 신문의 민망한 변신  

이 소개대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이 조선의 애국언론인 양기탁 선생과 함께 1904년 7월 18일 창간해, 조선인의 자주독립을 계몽하고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으며 민족의식을 드높인 신문이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헤이그 밀사 소식을 전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재판상황을 상세히 보도하는 등 언론구국투쟁의 중심이었다. 박은식·신채호 등 애국지사들의 논설이 실린 것도 주로 이 신문을 통해서였다. 1907년 결성된 당시 국내 최대 항일 민족단체인 ‘신민회’ 본부를 대한매일신보 안에 설치해 신민회 기관지를 자임하기도 했다. 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베델은 일제 식민당국, 일본과 동맹 관계였던 영국 정부로부터 억압을 받으면서 생긴 병으로 37세의 나이로 눈을 감으면서 “나는 죽지만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게 하시오”라는 통절한 유언을 남겼다.

서울신문이 2019년 7월 18일 사설에서 “서울신문 115주년, 독립언론의 길 꿋꿋이 걷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자신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긍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그 같은 독립언론 선언이나 창간정신은 지금 찾아보기 힘들다. 건설 대자본인 호반그룹이 2021년 하반기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뒤 서울신문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무엇보다도 호반그룹의 인수 시도를 저지하려던 시기에 작성됐던 ‘호반건설 대해부 시리즈’ 기사가 전격적으로 삭제되는 것을 시발로 한 지면의 사유화로 요약된다. 건설자본의 기관지와도 같은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하나의 권력에의 예속은 다른 권력에의 예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권 권력에 우호적인 보도 성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해방 이후 50여 년간의 정부 소유 구조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원조합 참여 등 민영화를 통해 공익정론지로 새출발하겠다는 다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이번의 한일정상회담 관련 보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친 정부, 대일 굴종 미화 보도는 베델과 양기탁 선생 등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을 스스로 자기부정하는 행태다. 대한매일신보가 한국 언론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어느 한 신문의 독점적 소유물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서울신문의 자기부정을 넘어 한국언론의 공공재에 대한 훼손이라는 질타를 피할 수 없다. 서울신문이 지금과 같은 보도 논지를 보이면서 앞으로도 베델과 양기탁의 구국언론 정신을 잇는 언론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독자와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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