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첫 설치 때부터 사용신청 거부
유가족과 16차례 대화에도 "불법" 고수
"72㎡ 무단점유" 2899만 2760원 부과 통지서
유가족 "누구나 쓸 수 있는 곳인데…철거 명분쌓기"
서울시가 서울광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행정대집행(철거)을 시사한 가운데, 유가족에게 2900만원에 달하는 변상금을 부과한 것으로 11일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위법한 행정에 근거한 변상금 부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향소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서울시 이동률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더 이상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고 추가적인 대화 일정을 잡지 않았다"며 이태원 유가족과 대화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자진 철거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기에 무한정 기다리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이제는 서울광장을 서울시민 모두에게 돌려드려야 할 때"라고 강제 철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앞으로 변상금을 부과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시민대책회의에 따르면 서울시는 합동 분향소를 세운 지난 2월 4일부터 4월 6일까지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72㎡에 대한 변상금 2899만 2760원 부과 통지서를 보냈다.
"이유 없이 불허해놓고 변상금 내라?"
서울시가 변상금을 부과한 근거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공유재산법)과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다.
공유재산법은 변상금과 관련, 사용허가나 대부계약 없이 공유재산 또는 물품을 사용·수익하거나 점유한 자(무단 점유자)에게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유가족을 무단 점유자로 판단하고 변상금을 부과했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다.
유가족 측에 따르면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 직후 접수한 서울광장 사용신청을 단 하루 만에 거부 처리했다.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절차를 일방적으로 막으면서 무단이라고 주장하고 변상금을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광장 사용신고자의 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시장은 사용신고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사용신고를 수리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신고를 수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울시 열린광장 운영 시민위원회 의견을 들어 수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서울시가 공개한 위원회 개최 결과에 따르면 2월 10일 의결이 마지막이다. 위원회는 당시 2월 11일~2월 28일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문화제 신고를 불허하고 그 뒤로 회의를 열지 않고 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서울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광장임에도 애도와 기억을 위한 분향소 설치와 운영을 불허할 합리적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용신청을 거부했다"며 "이는 절차적·내용적으로도 위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법한 행정에 근거한 서울시의 변상금 부과 역시 부당하다"고 했다.
대화 의지 없는 듯…강제 철거 명분쌓기?
서울시가 변상금을 부과하는 것은 분향소 철거를 압박하고 행정대집행을 위한 명분쌓기 차원으로 보인다. 하지만 참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가 철거를 압박하며 거액의 변상금까지 부과한 것은 정치적으로, 도의적으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참사 당시 해외출장 중이었던 오 시장은 참사 이후에야 용산서가 작성한 핼러윈 관련 보고 문건을 확인했다고 시 의회에서 밝힌 바 있다. 서울시가 2020년과 2021년 연도별 '서울특별시 안전관리계획'에서 공연·행사장 안전사고에 압사를 포함시켰던 만큼 행정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재난안전법 시행령 53조는 시·도지사가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와 관련해 '인명 또는 재산 피해정도가 매우 크고 그 영향이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될 때'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도 참사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응급조치 1차적 책임을 자의적으로 용산구로 국한해 오 시장에 대한 수사조차 진행하지 않았지만, 역대 가장 큰 압사 사고인 이태원 참사의 1차 책임을 기초자치단체인 용산구에만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수사 당시에도 나왔다.
서울시의 조치로 유가족들은 또다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서울시가 고액 변상금으로 겁박하는 것"이라며 "행정대집행도 한다는 말이 있어 가족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철거 관련 규정인 행정대집행법(제2조)은 행정청의 명령과 관련, 불이행을 방치함이 심히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될 때 대집행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향소 설치는 공익 목적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그동안 분향소 설치로 인해 시민 통행에 불편을 끼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지만, 분향소는 서울도서관 건물 외벽에 조그맣게 붙어 있어 통행을 방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분향소가 있는 기간에도 서울시는 아이스링크를 개장하는 등 광장을 이상없이 운영했다.
오히려 분향소가 광장을 점거한 것도 아닌데 "광장을 서울시민 모두에게 돌려드려야 할 때"라는 서울시 대변인의 발언은 유가족은 서울시민이 아니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 안 된다는 서울광장 조례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난다.
서울시는 "2월 16일부터 4월 6일까지 16차례에 걸쳐 면담했으나 끝내 유가족 측에서는 시의 제안을 수용하지도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책임을 유가족 측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시가 일방적인 입장을 강요했다는 게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입장이다.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민들레> 기자와 만나 16차례의 대화에 대해 "서울시는 유가족과 시민이 세운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애초에 인정하지 않았다"며 "대화가 이뤄질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양측의 전제가 다르니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서 서울시가 지난달 7일 내놓은 '분향소 공동 운영' 역시 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게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입장이다. 서울시는 당시 4월 1일부터 4월 5일까지 닷새 동안 희생자 영정과 위패를 모신 분향소를 공동 운영하자고 제안했었다. 공동 분향소를 5일만 운영한 뒤 철거하고 정식 추모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 임시 추모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가족 측이 추모를 마치는 시기를 직접 정해야 한다고 했고, 서울시는 분향소 종료 날짜를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발표하면서 협의는 무산됐다.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사항임에도 일방적으로 조건을 거는 것은 분향소 철거를 위한 명분쌓기용 협상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기 어렵게 만든다.
"오세훈 일방적 강요 거부…분향소 지킬 것 "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입장문에서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조차 잊은 듯한 서울시의 일방적 행정에 참담한 심정으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4월 5일 분향소 운영 종료만을 지속적으로 강요한 서울시가 진정한 대화에 임했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또한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 역시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대책회의는 불필요한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분향소 운영을 위한 집회신고서를 남대문경찰서에 제출했고 이는 적법하게 수리됐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행정대집행을 강행한다면, 이는 기본권을 침하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했다.
이들은 "일방적 강요로, 부당한 고액의 변상금 부과로, 행정대집행 강제철거 위협으로, 몰아붙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 행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부당한 행정에 굴하지 않고, 시민들과 분향소를 지켜낼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변상금과 관련, "유가족 측에 변상금 산정 내역을 보냈다"며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면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광장 사용과 관련해 열린광장 운영 시민위원회가 2월 이후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해선 "위원회는 안건이 있으면 열어서 의결한다"며 "그 뒤로 열리지 않은 것은 논의할 안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가족에게 분향소 불허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선 "(다른 단체들도) 모두 똑같이 통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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