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채무위기 사태 15일 단식 투쟁으로 해결
학생 때부터 이민자 교류하며 비주류 삶 이해
고비용 유세 대신 "정치헌금 이제 그만" 호소
유세 현장엔 성 '맘다니'보다 이름 '조란' 연호
시민들과 격의 없이 '이름 부르는 사이' 입증
뉴욕 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란 맘다니 후보(이하 존칭 생략)에 대한 'I' 단어를 통한 분석을 이어간다. ①편에서 맘다니의 힘은 뉴욕시 시민과 유권자에게 그의 메시지와 정책 비전이 Inspiration, 즉 감동을 주는 데서 나온다고 진단했다. 그 감동의 원천은 무엇일까?
맘다니의 트레이드마크는 열띤 토론 중에도 그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 큰 미소다. 하지만, 그의 성품과 정치 이념을 관통하는 단어는 치열함, 강렬함, 열정적임 등으로 번역되는 'Intensity'이다.
따지고 보면 지방선거인데도 거의 10만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조란'을 지지해 달라며 거리와 가가호호를 누비고 있다. 맘다니를 뒤쫓는 쿠오모가 큰 돈을 쏟아 부으며 네거티브전을 펴고 있는 상황인데도, 맘다니는 정치헌금은 '이제 그만'을 호소하고 있다.
맘다니 캠페인 현장에서는 이름인 '조란(Zohran)'이 성인 '맘다니'보다 더 많이 외쳐진다. 사실 '조란'은 부르기도 쉬운 측면이 있지만, 후보와 교감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사이를 'first name basis'라 하는데 격의 없음을 말한다.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시는 가장 통치하기 어려운 도시란 별명이 붙어 다닌다. 뉴욕의 시장에 당선이 점쳐지는 후보와 유권자들이 언제 어떻게 서로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나? 맘다니가 뿜어대는 열기와 열정이다.
시작부터 그랬다. 그는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우수 학생들이 몰리는 특수고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Bronx High School of Science)를 졸업했다. 졸업하면 적지 않은 수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학교다.
그의 고교 생활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치열하게 경쟁해서 들어간 학교에서 흔한 말로 '딴짓'을 했다. 특수 고등학교에서 우수 대학으로 진학하는 기본 코스를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발견하는 활동, 경험, 체험의 장으로 삼았다. 요약하면 '공부(study)'보다 '자아(self)'를 찾는 일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특수고들이 통상 그렇듯 엘리트 계층의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학교에서, 맘다니는 이 학교 처음으로 영연방에 속해 있는 국가들에서 인기가 높은 '크리켓(Cricket)' 팀을 창설했다. 크리켓은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크리켓 팀 창설을 하면서 그는 비주류의 현실을 접했다. 풋볼, 야구, 농구, 축구가 스포츠의 주류인 현실에서 크리켓은 듣고 보기는 했어도, 뭘 어떻게 하는 경기인지 잘 모르는 학교 당국과 학생을 설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남아시아계 학생들과 연대감을 형성했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계통 학생들 중 크리켓광은 많았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운동 경기를 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갖게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지배 도구인 크리켓을 통해 맘다니는 브롱크스 과학고의 비주류들을 모았다. 남아시아 이민자 출신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뿌리에 더 가깝게 가고, 자신과 배경이 다른 다른 학생들의 삶을 만났다.
브롱크스 과학고의 남아시아 계통 학생들은 많은 수가 하위 중간계층(Lower Middle Class)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단순화하면 뉴욕시의 남아시아 이민들은 택시 운전, 식당, 델리(신문 잡지, 음료수들을 취급하는 소규모 상점)에 집중돼 있다. 주유소도 남아시아계가 많이 운영한다. 이렇듯 노동 집약적인 직업군에서 장시간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부모의 원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공부에 매달린 비주류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맘다니의 출신 배경은 이들과 다르다.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 출신이다. 아프리카의 남아시아계 이민들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산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맘다니의 아버지(Mahmood Mamdani)는 저명한 콜롬비아 대학 교수이고, 어머니(Mira Nair)는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작자이다. 맘다니는 저소득층과는 거리가 먼 맨해튼의 서북부(Upper West Side)에 거주하며 사립 초·중학교인 'Bank Street School for Children'을 다녔다. 그는 12시간씩 주유소에서 휘발유 냄새 맡으며, 공기 탁한 지하철 안의 신문 판매대에서 노동하는 남아시아계 부모를 둔 경우가 아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관심과 경험은 맘다니의 열정으로 승화됐다. 제한된 현재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 제시하면서 주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맘다니의 성품은 고교 때부터 형성됐다고 보인다. 고교 졸업 후 맘다니는 메인 주에 있는 작지만 강한,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를 다녔다. 이 학교는 우수한 인문계 대학으로 인정받는다.
대학 시절에도 맘다니는 남이 쉽게 가지 않는 길을 갔다. 2014년 졸업을 앞두고 그는 이스라엘 통치 아래 억압받고 피폐된 삶을 사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조직 '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 (SJP)'를 결성했다. 팔레스타인 지지(Palestinian Support)는 곧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강하게 비난받는 현실에서 용기와 열정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행동이다. 더욱이 그는 이슬람교도이다. 13년 전 3000명이 목숨을 잃은 9.11 테러가 있었다. 이 민감한 시점에 그는 할 말을 했다.
그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의 경험은 그의 정치적 메시지와 비전에 녹아있다. 많은 뉴요커들이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하지만, 아파트 월세를 내지 못하고, 버스, 지하철 요금에 부담을 느낀다. 아이들의 '데이케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아이들을 끌고 이리저리 자리가 있는 공공 시설 또는 친척집을 오간다. 이뿐이 아니다. 치솟는 건강 보험료,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백화점에서처럼 '이걸 꼭 사야 하나' 망설이는 구매 억제를 경험한다. 돈 쓸 데가 많은데, 꼭 먹어야 하나를 저울질한다. 이제까지 미국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맘다니가 말하는 '고비용 위기(affordability crisis)'이다.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 시민들의 호흡을 막고, 견딜 수 없는 생활비의 무게로 어깨가 처지는 상황이 바로 세계 최고라는 뉴욕의 도시 파괴라고 그는 외친다. 부모 세대는 생활고 위기를 공동체 도움 없이 개인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에 처했다. 자녀 세대는 이를 조바심 갖고 바라보며 자신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좌절한다. 뉴욕 유권자들이 '조란'을 연호하는 이유다.
맘다니의 언어 또한 그의 열정과 치열함을 말해준다. 그는 영어 외에 다섯 개 언어를 구사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의 말은 늘 정리되어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말이 글이 되고, 글은 정리된 생각을 전한다.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는 증표다.
맘다니의 이런 면모는 토론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상대가 끼어들어 발언을 방해하지 않으면 완전한 문장으로 소통한다.
그의 경쟁자 쿠오모와 슬리와는 짧은 구호 같은 거리의 언어(street language)로 말한다. 야구에서 배팅이 그렇듯 단타는 톡 쏘는 맛과 기대감을 제공한다. 단타는 분명 경기에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관중은 장타에 열광하고, 홈런은 환호성으로 경기장을 들었다 놓는다.
선거전에서는 입장 표명과 전달이 말싸움이나 말꼬리 잡기로 전락하기 십상이지만, 슬로건 싸움의 포화가 지나가면 유권자들은 정책 내용물을 찾는다. 그의 경쟁 대상들은 네거티브 발언 뒤에 와야 하는 정책 대안에서 약하다.
특히 무소속 쿠오모는 맘다니가 행정 경험이 전무한 급진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경험이 없으니 환상에 가까운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쏟아낸다고 공격전을 펼쳤다. 뉴요커에게 맘다니의 사회주의 사탕발림에 속지 말라고 외친다.
맘다니의 반격 언어는 침착하고 예리하다. 촌철살인의 언어도 만나는데, 대통령선거 수준이다. 다음은 맘다니의 대표적인 방어/공격이 합쳐진 발언이다. 경험이 없다는 되풀이되는 쿠오모의 발언에 대해, 맘다니는 "경험하지 못한 것은 정직함으로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정직함은 경험으로 절대 메울 수 없다. (What I don't have in experience, I make up for in integrity. And what you don't have in integrity, you could never make up for in experience.)" 쿠오모의 많은 경험 중에는 여러 여성들에 대한 성적 괴롭힘도 있다. 맘다니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이 다 안다.
맘다니는 위선자라는 공격도 잘 막아냈다. 그는 뉴욕시 퀸즈 아스토리아의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시 정부 통제 대상인 아파트에 산다. 맘다니는 매달 2300달러를 월세로 지불한다. 그의 경쟁자들이 이를 정치 이슈화했다. 뉴욕 주 하원의원이 이런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탈법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참고로 쿠오모는 월세로 8000달러를 지불한다. 럭셔리 아파트이다.
맘다니는 "뉴욕시의 문제가 '내 집세가 너무 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쿠오모에게 투표하시고, 진짜 문제가 '당신의 집세가 너무 높은 것'임을 안다면 나에게 투표해 달라"("If you think that the problem in this city is that my rent is too low, vote for him. If you know, the problem in this city is that your rent is too high, vote for me.")고 호소했다.
감당할 수 없게 치솟는 아파트 월세 문제를 오래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발언이다.
맘다니의 치열함과 강함의 절정은 2021년에 있었던 15일 간의 단식투쟁이다. 뉴욕시 택시 운행권인 메달리온 채무 위기 사태 때였다. 뉴욕시의 랜드마크인 노란색 택시를 운행하려면 메달리온(medallion, 택시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택시 운행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메달리온은 수십만 달러에 거래됐다.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택시 운전자들, 그 대다수가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이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높은 이자의 융자를 받아 메달리온을 구입했고 가격은 백만 달러까지 급상승했다.
문제가 생겼다. 우버 같은 승차 공유 차량들이 뉴욕 거리 곳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비싼 메달리온을 살 필요가 없었다. 결국 메달리온 거품이 꺼졌다.
아파트 월세를 내느니 힘들더라도 융자를 받아 집을 산 사람들처럼, 메달리온을 구입한 택시 운전자들은 평균 50만~60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중 일부는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의 부채 탕감 없이는 해결책이 없었다.
이때 뉴욕 주 하원의원 맘다니가 투쟁에 나섰다. 그는 15일간 단식을 하며 시·주·연방 정부를 설득했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약 3000명의 메달리온 소유자들의 부채를 거품 이전 수준인 20만 달러로 낮췄고, 그 결과 운전자들은 다시 택시 운전을 하며 현실적으로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 맘다니의 열정은 말 그대로 하루 12시간씩 운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의 삶을 구해낸 셈이다.
"일은 끝나기 전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It always seems impossible until it's done)." 맘다니가 민주당 지명전에서 승리한 뒤 인용한 고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말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맘다니 돌풍'의 중심에는 그의 강렬함, 치열함, 그리고 뜨거운 열정 — 즉, intensit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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