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과 저항으로서의 인생에 대해 경의를!
어웨이 어웨이(Away Away): 당신이 떠나고 싶은, 한 장의 사진엽서 속 어느 곳에 관하여
(아오드랑 부아흐트, Aodren Buart, 28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 정현에게는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대한 깊은 향수가 있다. 어느 날 그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 끼어 있던 사진엽서에 매료된다. 주황색 지붕과 성당 종탑, 나무들과 산이 있는 마을은 정현에게 매실나무가 있던 어린 시절의 할머니댁을 떠올리게 한다. 엽서 속 마을을 찾아 떠나기 전 카페에서 정현이 친구에게 엽서를 내밀자 그는 남프랑스를 확신하며 프로방스로 갈 것을 권한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테이블 위에 놓인 엽서를 들여다보던 여인은 사진 속 마을을 기억해낸다. 그곳은 그녀가 어린시절 가족들과 함께 여름을 보냈던 휴양지. 바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해안마을 ‘모벡'(Mauvec)이다. 정현이 그토록 가고 싶어한 미지의 마을이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지루한 시골이었다는 것, 이것이 영화 <어웨이 어웨이(Away away)>에 담긴 '압도적 반전'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은 우리의 추억이 과거를 향해 있더라도 삶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정현의 일상들. 세느 강변에서 친구들과 바캉스와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논문을 준비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슈퍼에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모습은 마치 파리의 일상을 보는 듯한 유쾌한 느낌을 선사한다. 어쩌면 영화가 우리들 마음속에 다양하게 기억되는 (확신과 착각, 그리고 희망) 한 장의 사진엽서로 남기를 바라는 감독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임미성(재즈 가수)
세월(Sewol: Sealed Eternally With Our Love): 영국인은 세월호의 기억을 어떻게 그렸을까
(제이슨 버니, Jason Verney, 1시간 10분, 영국)
대형 참사가 남긴 슬픔은 너무 크고 깊어서 종종 사람들을 그 슬픔 속에 가두어 버린다. 슬픔에 갇히면 사람들은 슬픔 속에 고립되고 만다. 그 고립을 풀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은 세상의 사랑이다.
영국 출신 감독 제이슨 버니의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은 그 사랑이 참사에 대한 관심과 기억임을 환기시킨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난 많은 참사의 현장을 찾아 그 기억들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런던으로 가져가 그곳의 사람들과 나눈다.
그 기록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이지만 그의 걸음은 4.3과 5.18로 거슬러 오르고 이태원 참사에 이르고 있다. 그의 기록을 보며 우리는 추모자로서 그의 슬픔을 마주하게 되지만,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면 슬픔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슬픔은 나누어 가지면 슬픔이 희석되어 우리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 나누어 가진 슬픔이 멀리 이국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큰 힘이 된다. 관심과 기억을 사랑의 이름으로 실천한 한 이국의 영화감독의 여정은 영화가 끝나면 마무리되지만 영화는 참사에 대한 기억이 인류애의 이름 아래 영원할 것이라고 알린다./김동원(문학평론가, 사진작가)
더 모스트 오스트레일리안 밴드 에버!(The Most Australian Band Ever!): 호주 이주민들이 락밴드를 결성해 주류 기득권의 차별에 저항한 40년
(조나단 제이 세키에이라, Jonathan J. Sequeira, 1시간 46분, 호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항이다. 더하여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서 새로운 실천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존 장벽을 고발하는 일이며, 저항을 넘어서는 창조이다.
청소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큰 고발과 저항은 인생 전체의 실천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본 영화제에 적합한 작품이다. <더 모스트 오스트레일리안 밴드 에버!(The Most Australian Band Ever!)>는 다양한 민족, 인종, 국가, 문화의 차이를 가진 이주민 소년들이 구성하여 40년간 호주에서 활동해 온 락밴드 ‘하드-온즈(Hard-Ons)’의 일대기를 다룬 기록이다. 이민자가 주류 문화에 속하지 않으면서 수행해 온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실천에는 수많은 차별과 위협에 대한 끊임없는 고발과 저항이 담겨 있다. 기존의 것, 주류인 문화, 공고한 기득권에 대한 고발과 저항은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긴 시간의 저항과 고발은 그 자체로 인생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첨예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보다 인생 전반이 담긴 고발과 저항에 대한 감사와 경의가 필요하다. 이 영화와 영화가 다룬 락밴드 ‘하드 온즈’가 그것을 받을 만하다./ 이종훈(영화학 교수)
게임 오버(Game Over): 아프간 난민 실상을 경쾌하게 고발하는 영화
(사이드 마야히-Saeed Mayahy, 미리암 칼슨-Miriam Carlsen, 28분, 이란)
<게임 오버>는 아프간 난민의 실상을 전하며, 그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로, 휘슬러영화제의 취지에 걸맞는 작품이다. 영화 속 ‘게임’이란 중간 기착지인 터키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위험한 여정을 의미한다. 추위와 배고픔, 불결한 환경과 밀수꾼의 농간에 노출된 이들의 처참한 모습과 그들의 언어인 다리(Dari)어로 시전되는 경쾌한 랩이 극도로 대비된다.
유럽 국가들로 이동을 희망했던 난민 청년들이 결국 경찰에 체포돼 추방되고마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조국에 살고 싶다는 한 청년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여운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종족이다. 우리의 뇌에 깊게 드리워진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은 역설적으로 타자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칼로 작용하기 일쑤다. 2018년 제주도에 입국한 484명의 예멘 난민 중, 단 4명만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던 만큼 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한 시각이나 지원이 극도로 취약한 국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선진국이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국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시사하는 면이 크다. /구일영(북 칼럼니스트)
뚜벅이: 일본 자본의 불법 해고에 맞선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분투
(김수목 감독, 1시간 7분, 한국)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멋진 수사 뒤에는 이윤의 최대치를 거두어가면서도 일말의 사회적 책임조차 거부하는 자본의 맨얼굴이 숨겨 있다. 말 그대로 오로지 돈만을 좇아 움직이는 초국적 자본이 지나간 자리에는 당연하다는 듯 황폐해져 버린 터전 위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세계 2위의 부품사인 일본의 덴소 자본이 운영하던 한국와이퍼가 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대량 해고하면서 일방적인 회사 청산과정을 밟는 과정을 꼼꼼하고도 세밀한 시선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바로 그 자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자본가들은 어째서 그토록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일 수 있을까. 이에 맞선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분투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고통받는 노동자 계급 모두의 희망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남승원(문학평론가)
[휘슬러영화제 소개④]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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