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 운명 스스로 선택해야

김종대 국방전문가·전 국회의원
김종대 국방전문가·전 국회의원

미국의 새로운 국가국방전략서(NDS)가 발간되고, 주한미군 철수 및 역할 변화까지 예견되는 2025년의 한반도는 그야말로 안보와 지정학에서 격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 동맹의 구조적 변화가 한국에 실질적인 자주국방 역량과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시기, 9월 중순 미국의 국가국방전략서 초안이 동맹국에 회람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놀라운 메시지를 남겼다. 그 핵심은 “강력한 자율적 자주국방”이었고, “외국 군대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 발언이 던진 파장은 상당하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주한미군 감축 및 전략적 유연성 논란, 그리고 ‘자주국방론’이 재소환되는 것도 바로 미국 국방정책이 동맹에 대한 부담 전가, 지역 주도권 확대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기조를 소환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유사점: 미국의 일방적 동맹구조 변화 요구

노무현 정부와 이재명 정부, 두 시기 모두 미국의 전략 변환이 직접적 촉매가 됐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부시 행정부가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미군의 타 지역 활용)을 요구하며, 한국 정부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자주국방 강화'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2025년 이재명 정부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NDS 하에서 동맹국의 방위비 부담 확대, 주한미군 본토 집중, 한국군의 역할 확대를 요구받으면서 자주국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국내 정치와 언론 지형도 비슷하다. ‘동맹 훼손’, ‘안보 불안’에 대한 보수진영의 우려, 진보진영의 자율적 역량 강화 요구가 충돌하는 양상이 반복된다. 한국 정부는 주체적 안보와 동맹조정 사이에서 전략적 경로를 모색한다. 이 대통령은 “동맹 현대화에는 긍정적 요소도 있다”며 기술변화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지만, 막상 8월에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 기자간담회에서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이런 발언이 국내 정치에 논란이 되는 양상도 노무현 당시와 비슷하다. 당시 조지 부시가 동맹국과 한 마디 사전 협의도 없이 미군 감축을 결정한 것이나,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동맹을 변화시키려는 행태도 비슷하다. 미국이 신생 한국 정부를 곤란에 빠뜨리는 일방주의를 선호한다는 점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

 

지난 6월 18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순환배치 여단 임무교대식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미 4사단 1스트라이커여단(레이더 여단)은 한반도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미 7사단 1스트라이커여단(고스트 여단)과 교대해 9개월 동안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운용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18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순환배치 여단 임무교대식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미 4사단 1스트라이커여단(레이더 여단)은 한반도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미 7사단 1스트라이커여단(고스트 여단)과 교대해 9개월 동안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운용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차이점: 한국의 기술·경제력·정책역량의 비약적 발전

그러나 두 정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시대적 조건과 한국의 현실적 역량이다. 2003년 무렵, 한국의 GDP는 7000억 달러, 국방비는 17조 5000억 원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GDP 1조 7900억 달러와 국방비 61조 6000억 원까지 확대되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 해도 엄청난 차이다. 기술력도 근본적으로 변했고, AI·드론 등 첨단 국방기술이 실전운용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 시절이 정보화 시대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인터넷 혁신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지능화 시대로 진입하는 추론의 시대다. 예비군, 전문병사 중심의 유무인 복합체계, 방위산업 첨단화 등 자율적 국방 기능의 현실적 토대가 확보된 것이다.

또 다른 차이는 미국의 전략적 기조다. 과거엔 미군의 감축과 재배치 정도였지만, 2025년은 미군의 역할 축소, 동맹국 자주국방 요구, 안보 부담 확대라는 직접적인 압박 속에 있다.

‘동맹 현대화 적응론’은 우리 선택 될 수 없어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의 국방개혁은 단순한 ‘작전권 환수’나 상징적 주체성 강조를 넘어, 경제력과 기술력을 토대로 첨단 스마트강군, 전문 정예군, 방위산업의 독립적 성장, 그리고 다자외교에 기반한 복합적 전략으로 옮겨가야 한다. 인구절벽과 저출산은 더 이상 핑계가 아니라, 첨단 기술과 조직 혁신으로 극복해야 할 시대 과제가 되었다. 공격·방어의 자동화와 예비전력의 실전화, 국방비 증액과 군 구조의 유연화, 국제협력과 외교의 전략적 확대 등 국방 개혁의 모든 측면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동맹을 현대화하는 추세에 우리가 적응해야 한다며,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고,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하며, 한국군의 지역 역할을 확대하자는 소위 ‘동맹 현대화 적응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해서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며,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력 역시 높은 가격의 비용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

자주국방 비전은 실현가능한 정책 목표

이제 한국은 과거와 달리 스스로 운명을 주도할 수 있는 경제력, 군사력, 외교적 전략역량을 보유한 국가로 변모했다. 자주국방이라는 비전이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정책 목표가 된 셈이다. 미국의 새로운 NDS와 동맹구조 조정 압박 속에서 ‘주변 정세를 주도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중견 국가다운 품격과 대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먼저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분과 원칙을 세울 때이다. 불가역적인 기술변화라면 얼마든지 수용하여 군을 현대적으로 개선할 수 있겠지만, 한미동맹이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우고 해외 분쟁 개입으로 나아가는 데는 엄격한 통제 장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방 예산 증액에 있어서도 단지 미국 무기 구매를 늘리기 위한 선심 예산으로 낭비되는 일이 없이 “오직 국익”의 기준 위에서 합리적으로 군사력 소요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 요구된다.

외교·안보는 분석을 넘어 상상의 영역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면 유력한 생존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복원한다는 입장을 상수로 한다. 그 다음에 단기적으로는 동맹 현대화의 범위와 틀을 정하고, 중기적으로는 한·중·일 지역협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삼국 FTA나 RCEP과 같은 지역 경제공동체와 전략대화를 추진한다. 장기적으로는 남미와 유럽, 중동 국가들 중 비슷한 처지의 동지 국가들(like-minded country)와 연합하는 열린 중견국 연합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동맹 일변도의 생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