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더 치밀하고 꼼꼼한 대책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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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으니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이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회사가 주는 추석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 봤다.
“직영(정규직)들은 번쩍이는 선물꾸러미 들고 가지만 우리 같은 협력(사내하청)은 그런 거 없어요. 지난 설날 때도 무슨 비누세트를 주더라구요. 3개 포장된 거. 목욕탕 가면 있는 싸구려 비누 있잖아요. 알뜨랑인가 그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얘기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 사내하청 노동자는 통근버스를 탈 수 없었다. 점심시간도 정규직은 12시, 사내하청 노동자는 12시 30분에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가 편하게 마음껏 식사를 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연간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재해자 수 영국 독일의 4배
일하다가 다치고 죽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때도 차별적이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더 많이 다치고 죽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죽고 있다. 위험한 일을 사내하청 노동자가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면 조선, 철강업종의 최근 10년간 산재 사망사고의 99%는 ‘협력사’라는 이름의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드러진 노동정책이 바로 산업안전 문제이다. 취임한 지 100일이 조금 지났지만 그동안에 대통령의 산재 관련 발언은 이례적일 정도로 많았고 현실을 잘 아는 발언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깊다. 국무회의,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산재 예방을 강조하는 발언에 더해 산재 사망사고는 대통령실에 직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산재 감소에 장관직을 걸라는 얘기까지 했다. 필자가 보기에 역대 대통령 중 이렇게 산재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은 처음이다. 그만큼 한국 노동사회에서 산재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노동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재해자 수(fatal occupational injuries)는 2022년 4.3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많았다. 2013년 7.1명에서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재해자 수는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3∼5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영국의 경우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재해자 수가 1명 미만이었고, 독일은 1명 내외, 일본은 1∼2명 수준이었다. 한국의 사망재해자 수가 영국이나 독일과 비교하면 4배가량 높은 셈이다. 산재에 관심이 많은 이재명 정부는 지난 8월에 발표한 국정과제에서도 2030년까지 산재 사고 사망 비율을 10만 명당 2.9명(OECD 평균)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구체 방안이 ‘노동안전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9월 15일 발표됐다.
이주노동자의 특별한 위험에는 특별한 대책 필요하지 않나
필자도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정부 대책의 주요 골자는 △사전 예방 강화로 산재예방에 2조 723억 지원, 2028년까지 감독관 3000명 증원으로 감독 물량을 현재 연간 2만 4000개소에서 OECD 평균 수준인 7만 개소(30인 미만 3만 개소)로 확대 △사고사망이 집중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공동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특수고용 노동자 산안법 적용 확대, 적정공기 보장, 공공기관 안전관리 강화 △원하청 산보위, 위험성 평가 노조 참여, 작업중지 불이익 시 사업주 처벌 등 노동자 권리 강화 △법 위반 사업장 사법조치 확대·영업정지 등 경제적 제재강화 및 사고 조사 수사 강화 등이다.
이재명 정부의 산재 대책이 발표되자 양대 노총은 몇 가지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다. 소규모 사업체에 대한 지원이 기존 재정 지원 사업의 연장이라는 점,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대책으로 제시됐지만 전속성 삭제, 원청 책임 부여 등은 명시되지 않았다는 지적 등이다.
양대 노총의 비판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대책이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담고 있는 내용 모두 결과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 노동사회에서 가장 최주변부 노동자가 바로 이주노동자이고, 그만큼 더 위험한 일을 하고 있고 크고 작은 산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 산재 통계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에 국내 노동현장에서 이주노동자 453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전체 산재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10% 이상으로 사고사망 만인률은 한국인 노동자 대비 7배나 더 높다. 더 특별한 위험에 처해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지만 이번 대책안에는 빠져 있다. 올해 2월 나주시 벽돌공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학대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관련 종합대책을 정부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어서 해당 정책에 포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재 사고는 정부 정책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주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고 죽고 있다. 지난 9월 12일에도 반월공단의 폐기물 소각시설 제조공장에서 40대 재중동포 노동자가 일하다가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녀간 SPC 공장에서 직선 거리로 2.2㎞ 정도 떨어져 있는 공장이다.
외국인에게 한국말로 산업안전 교육한 처참한 결과
필자는 올해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안산시 이주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안산시는 전국의 226개 기초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이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당연히 이주노동자 또한 많다. 공식 통계자료상으로 10만 명, 비공식(미등록 이주노동자 등)까지 치면 최소 12만~15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거주한다.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인터뷰한 10명의 이주노동자 중 6명이 크고 작은 산재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가 20년 넘게 현장 노동자를 만나면서 본인이 직접 산재를 당했다고 밝힌 노동자가 10명 중 6명인 경우는 처음이다.
위 사진은 필자가 인터뷰한 두 명의 이주노동자 산재 사진이다. 두 명 모두 비전문 취업비자(E-9 비자)의 베트남 노동자로 왼쪽은 1년 6개월 전 200㎏가량의 강관이 발등에 떨어져 다친 사진이고, 오른쪽은 2년 전 컨베이어 벨트에 팔이 말려 들어가 뼈가 완전 골절돼 수술한 사진이다. 왼쪽 사진 노동자는 필자가 인터뷰할 당시에도 여전히 다리가 불편했다.
위 사진에 나오는 두 명의 이주노동자에게 물었다. 산업안전 교육은 받았는지, 그리고 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사전에 교육받은 적이 있는지. 받았다고 했다. 다만 한국인 관리자가 한국어로 얘기했다고 했다. 산업안전 관련 책자도 한국어였다. 지역에서 다양한 이주노동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전남노동권익센터 문길주 소장은 아래와 같이 일갈한 바 있다.
“지금 현장에서 진행하는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교육은 모두 거짓입니다. 산안 교육을 한답시고 한국어 교재로, 한국말로 된 비디오를 틀면서 이주노동자 산안교육을 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아니 1970년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인 한국인이 독일, 미국에 일하러 가서 독일어로, 영어로 산업안전 교육을 받았다면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구요.”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에도 아직은그대로인 이주노동자 산재
문길주 소장의 얘기는 사진에 나오는 두 베트남 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이주노동자는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몰라요.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를 않으니까요.” 작년에 만난 수원이주민센터 킨 메이타 소장의 얘기이다. 천정 크레인이 작동할 때 작업 반경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 컨베이어 벨트가 섰을 때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고서 점검해야 한다는 것, 기초적인 산업안전 사항을 두 베트남 노동자에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알려는 줬지만 한국어로 된 교재를 통해서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의 핵심 요체는 사업장 단위로 마련되는 산업안전보건 체계에 노동자가 참여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업장은 위험성평가를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으며, 위험성평가에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법 취지에 필자도 동의하지만 과연 이주노동자가 참여하는가? 아니 참여할 수는 있는가? 필자가 과거에도 언급했지만 이주노동자가 어떤 식으로라도 위험성평가에 참여했다면 단언컨대 아리셀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안전을 강조하지만 이주노동자 산업안전을 바라보는 이재명 정부의 문제의식이 대책안에 담기지 않아 아쉽다.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대책안 마련이 지연되면서 노동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시작(취임)하고 난 뒤에 병원에 오는 외국인이 줄었어요. 병원이 공단에 있으니까 외국인이 한국인 관리자랑 같이 병원에 오는 경우는 100% 산재에요. 그런데 병원에 오는 외국인이 줄었어요. 이게 산재사고가 줄은 게 아니라 웬만하면 병원에 오지를 않는 거예요. 산재, 산재 얘기를 많이 하니까 오히려 산재 처리를 안하려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웬만큼 다치지 않으면 아예 안 오는 거예요.”
시화공단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받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통역 일을 하는 담당자의 얘기이다. 벌써부터 노동현장에서는 산재를 감추려 하고 있다. 과연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산재 은폐 시도에 무엇을,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대책이 시급한 이유이다.
우리 노동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 중요한 이주노동자 안전
독자 중에서는 왜 이주노동자 산업안전을 필자가 유별나게 강조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산재는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의 산업안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인보다 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한다는 것은 곧 한국인 노동자도 그만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이 중요하다.
사진에 나오는 두 명의 베트남 노동자는 모두 산재 처리를 했고 발을 다친 베트남 노동자는 휴업급여를 받으면서 치료하고 있었다. ‘다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산재 처리를 해서 휴업급여를 받고 있으면 다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위 노동자는 베트남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일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회사가 계속 고용할 이유가 없었고 결국 근로계약을 해지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숙사를 떠나야 했다. 조만간 마련되겠지만 이재명 정부의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대책이 치밀하고 꼼꼼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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