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비정규 노동 위한 새 정부와 노동계의 임무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지난달 24일은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고용노동부는 부랴부랴 참사 발생 사흘 뒤인 27일 주요 전지(배터리) 제조 사업장에 대한 긴급 현장 점검을 진행했고, 작년 7월 3일부터 2주간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진행하였다. 8월에는 ‘외국인 근로자·소규모 사업장 산업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업체 대상 맞춤형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유족은 여전히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한국 노동사회가 이를 교훈 삼지는 못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아리셀 참사를 계기로 발표한 대책 중 이주노동자 맞춤형 산업안전 대책은 몇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2020년 물류창고 화재 참사 때에도 발표했던 대책이었다.

도돌이표식 반복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 참사 실태

도돌이표식 반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2일에는 2018년 고 김용균이 산재로 사망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다시 김충현 씨가 혼자서 일하다 산재로 사망했다. 7년 전, 20대 청년이 산재로 사망하면서 한국 사회는 ‘특별조사위원회’까지 꾸려가면서 진상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산업안전법을 전면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 시행했지만 같은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매년 노동 참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대책도 반복되고 있고 한국 노동사회의 무관심도 반복되고 있다.

멀게는 2008년, 2020년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희생자, 2018년 김용균, 작년의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그리고 지난 6월 초에 유명을 달리한 김충현 씨.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이다. 고 김용균, 김충현 씨는 한국서부발전이라는 대규모 공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였고,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와 아리셀 참사 희생자들은 소규모 인력업체, 파견업체를 통해 소위 일용파견 형태로 취업한 노동자였다. 일하는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이들은 노동법상의 사용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르다는 간접고용이라는 특성 때문에 산업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의 산업안전은 대기업 원청이나 사용사업체가 관장하는 영역이기에 노동법상의 사용자가 작업장의 산업안전 전반을 책임질 수 없다. 노동법상의 사용자인 사내하청 업체나 인력·파견업체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안전을 위해 원청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고 김용균 씨 산재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법이 대폭 강화되어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 전반을 책임지도록 되었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안전은 여전히 원청과 사용사업체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시 아리셀 일차전지 제조공장 [공동취재] 연합뉴스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시 아리셀 일차전지 제조공장 [공동취재] 연합뉴스

월급 절반 이상 중간착취 당하는 불법 파견노동

비단 산업안전뿐만이 아니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와 같은 중소 제조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사회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압축하고 있다. 생산물량 변동이 큰 중소제조업 사업체의 비정규직이기에 고용은 불안하다.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지만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라는 사용사업체의 문자 하나로 해고될 수 있는 고용형태가 바로 중소 사업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고용불안을 상쇄할 만큼 임금이 높은 것도 아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고용불안을 보상하는 추가 임금을 지급하기는커녕 오히려 임금이 정규직 대비 낮다. 아리셀처럼 중소제조업 사업체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정확히 최저임금액이다. 대공장 사내하청이라고 다를까? 작년에 필자가 조사한 여수지역 석유화학사업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40% 수준이었다.

왜 그럴까? 원청이 지급하는 인건비 단가가 낮은 것이 원인이겠지만 부수적으로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의 경우 일명 ‘업체’가 중간에 존재하는 것도 주원인이다. 중간착취 문제인 것이다. 원청인 서부발전이 책정한 (사내)하청 노동자 월급은 522만 원이었지만 고 김용균 씨는 220만 원만 받았다. 고 김충현 씨에게 원청이 책정한 인건비 단가는 최소 1,0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서부발전의 2차 사내하청 업체 소속이자 현장 경력 30여 년에 이르는 김충현 씨가 받은 월급은 420만 원에 불과했다. 원청에서 사내하청 업체 두 곳을 거치면서 600여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이유이다. 그렇다고 사내하청 업체가 사용자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한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고 김충현 씨의 일상 업무 지시가 원청인 서부발전 직원과의 카톡으로 이루어졌을까? 사내하청 업체는 아무런 하는 일 없이 ‘통행료’, 즉 중간착취를 한 것이자 김충현 씨의 고용관계는 실질에서는 불법 파견노동이었다.

 

고 김충현 씨의 2025년 4월 월급명세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고 김충현 씨의 2025년 4월 월급명세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고용’과 ‘사용’ 따로 나누니 중간착취와 안전 문제 발생하는 것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고용형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필자가 예전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고용에 따른 편익을 얻는 자가 사용자이다’라는 근대 노동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고용형태이지만 한국 노동사회에서는 만연한 고용형태이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각종 통계자료를 재해석해 추산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규모는 최소 340만 명이 넘는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공식 고용·노동통계에서 제조 대기업에 만연해 있는 사내하청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雇傭)과 사용(使用)의 분리에 기반한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에 더해 중간착취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많은 고용형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전근대적 노동시장에서 숙련 조달을 목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하청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잔존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노동법상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한국 노동사회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전무하다.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상시·지속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을 노동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20년 넘게 주장하는 이유이다.

지난 글에서도 필자가 언급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공약에는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원칙과 정책은 없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약이라면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정도이다. 노동조합법이 개정되면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임금, 노동조건을 놓고서 교섭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시·간헐적 고용수요 위한 준(準)공적 고용서비스망 구축 필요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대공장 내 간접고용 비정규직일 때나 가능하다. 임금뿐만 아니라 집단적 이해대변에서도 기업 규모별 분단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리셀에서 목숨을 잃은 23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시흥시 정왕동 소재 인력업체를 통해 취업한 노동자였다. 에스코넥의 위장 자회사라는 비판을 받지만 아리셀이라는 회사 또한 직원 50명이 안되는 중소기업이었다. 아리셀을 대상으로 교섭하는 것이 가능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감독관 충원을 통한 사업체 관리·감독 강화, 그리고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하한선 규제로 직접고용 원칙을 반영한 노동법 개정에 더해 준(準)공적인 고용서비스망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공적 고용서비스를 담당하는 고용복지플러스 센터는 대부분 실업보험과 연계해 상용직 고용서비스 제공에만 치중하고 있다. 중소 제조사업체의 일시·간헐적인 고용수요는 거의 대부분 지역에 산재한 소위 ‘업체’들이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최소한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인력·파견업체의 중간착취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준공적 고용서비스 망 구축이 시급하다.

노동법 개정과 더불어 한국 사회 조직노동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산업·업종·지역 단위 단체교섭 활성화’ 정책에 기반해 다양한 초기업적 교섭 모델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직적·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사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의 하한선을 끌어 올리기 위한 노력이다. 현재의 중·대기업 중심의 기업별 단체교섭, 노사관계에 안주하는 한, 솥단지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정규직 채용은 줄고 있는데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부머 세대의 정년 퇴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인 김영훈 후보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 법·제도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해 온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다. 아리셀 참사 1주기를 맞아, 그리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후보자를 보면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관련 정책이 하루 속히 전면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도돌이표 식으로 반복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참사와 수박 겉핥기식 대책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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