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예산처 분리만으로는 전횡 못 막아

정권 탐욕·관료 이기주의로 통합-분리 반복

대통령까지 우습게 여기는 ‘공룡 부처’의 힘

바람 통하게 하고 햇볕 쬐듯 지속 감시해야

이재명 정부의 첫 조직개편안이 발표됐다. 국민들은 그 내용을 선별적으로 이해한다. 어느 부분은 지나치리만큼 소상하게 알고 각자의 주장까지 펼친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잘 모르거나 알아도 건성으로 넘기고 특별한 의견도 없다. 검찰과 기획재정부의 개편이 크게 대비되는 그런 경우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해법을 갖고 있다. 검찰이 그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틀어쥐고 벌인 무도한 행태는 이미 국민적 상식이 됐다. 멀게는 박정희 정권 시절 인혁당부터 가까이는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한 짓을 국민들이 소상히 알게 됐다. 심지어 보완수사권, 전건송치 등도 더 이상 낯선 전문용어가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의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눈다는 개편안은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다. 기재부가 통으로 쥐고 있던 기획, 예산, 금융, 재정, 세제 등의 정책 권한을 분산한다는 정도로 이해한다. 정부 예산안을 기재부가 짜든 기획예산처가 짜든 관심 없다. 금융정책 수립을 재경부가 하든 그냥 지금처럼 기재부가 하든 무슨 상관이랴. 우리 지역에 예산 지원이 얼마나 배정되는지, 금리와 환율 변동으로 주가가 오르는지 떨어지는지가 더 관심이다.

나라 살림을 계획하고,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부처가 올바르게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일은 검찰에 대한 감시 이상으로 중요하다. 기재부는 경제 정책의 막강한 권력을 통째 거머쥐고 있으니 심지어는 대통령도 무섭지 않다. 문재인 정부 막판 홍남기 부총리의 기재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추가 투입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마저 꺾어버렸다.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은 35조 원 규모의 추경 증액을 요청했으나 기재부는 “돈이 없다”며 14조 원으로 줄였다. 그랬던 기재부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초과세수가 53조 원이 넘는다며 59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경제부총리와 기재부 관료들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대통령들을 갖고 논 셈이다.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기재부 사옥 전경-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기재부 사옥 전경-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의 뿌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설립된 재무부와 이후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한 경제기획원이다. 경제 정책을 이끈 재무부-기획원 체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까지 지속하다 이후 통합과 분리를 반복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두 부처를 합쳐 경제 정책과 재정을 총괄하는 ‘공룡 부처’ 재정경제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재경원이 엄청난 조직과 권한을 갖고도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김대중 정부는 이를 기획예산위원회(대통령 직속)와 재정경제부로 분할했다. 기획예산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무총리 산하의 기획예산처로 이관됐다. 이렇게 분리된 체제는 노무현 정부로 이어졌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다시 이들을 기획재정부로 통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옛 재경원에 대한 비판을 고려했는지 금융을 떼어 금융위원회를 설립했다. 그것도 국내 금융은 금융위에, 국제 금융은 기재부에 두는 기형적 형태를 만들었다,

왜 이처럼 기재부 조직은 붙였다 뗐다가 반복됐을까? 통합에는 효율성이나 리더십이 강조됐고, 분리에는 권한 집중과 남용에 대한 비판이 동원됐다. 시대 상황과 경제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충분하지 않다. 정부 조직을 개편해야만 변화된 상황과 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의 6조(이,호,예,병,형,공조) 체제는 1392년 건국부터 1894년 갑오개혁까지 500년 넘게 지속됐다. 태조가 고려의 6부제를 이어받아 마련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정부 조직체계가 600년 가까이 이어진 셈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국정을 둘러싼 환경과 형편이 얼마나 많이 변했겠나. 하지만 조선은 의정부와 6조 체제의 틀로 지탱해 왔다.

대통령의 리더십 유형에 따라 경제부처의 통합과 분리가 이뤄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다. 대체로 보수 정부는 통합을, 진보 정부는 분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 또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승만에서부터 전두환까지 재무부와 기획원 양립 체제가 지속됐고, 이후 오락가락하는 과정도 대통령의 성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다.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부 시절 기재부가 휘두른 권세는 이전 보수 정권 시절에 못지않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있다. 1997.3.6. 연합뉴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있다. 1997.3.6. 연합뉴스

결국 제도와 사람을 묶어 설명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IMF 외환위기가 몰려오던 때 재경원 장관을 맡았던 강경식 부총리는 ‘21세기 국가과제’에 올인했다. 국가에 부도 위기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는데, 막강한 경제 수장은 21세기를 대비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빠져 있었다. 그 시절 한 장면을 되돌아 본다. 한 지방도시에서 재경원이 ‘국가 아젠다 21’ 간담회를 열었다. 강 부총리와 출입기자단이 함께 탄 버스가 도착해 보니 회의장 앞에는 지역 기관장들이 도열해 있었다. 부총리가 입장하고 간담회를 시작하려는데 입구에 있던 기관장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예산실장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 기관장들로서는 경제부총리의 뜬구름 잡는 간담회보다 예산권을 쥔 예산실장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현재 기재부 공무원들이 어느 부처로 가기를 더 희망할까이다. 기획예산처로 갈까, 재경부에 남을까? 일반 국민은 별 관심이 없지만, 해당 공무원들은 머릿속이 대단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터이다. 재무부-기획원 틀로 보자면 재무부는 금융회사들을 꽉 쥐고 있어 퇴직 후 자리가 보장된다. 기획원은 예산 편성 권한으로 온 나라를 주물렀다. 이번에는 어떨까?

단순히 ‘기자스러운’ 호기심으로 궁금해 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쪽일수록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독을 깰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통풍을 잘하고, 햇볕을 자주 쬐게 해야 한다. 이미 된장이 상했다면 두 개, 세 개 장독에 나눠 담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한 독의 구더기가 여러 개 독으로 나누어질 뿐이다.

나라 살림에 써야 할 재정으로 사욕을 채우려는 관료 조직을 정화하지 않으면 경제부처를 통합하나 분리하나 매한가지다. 그래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만기친람형인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재경부와 예산처가 함부로 할 수 없겠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잘 감시하는지까지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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