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회한의 카레이서

오동진 영화평론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조셉 코신스키의 영화 ‘F1 더 무비’는 스러져가는 한 인생에 대한 송가 혹은 레퀴엠 같은 영화다. 이 영화를, 지금 당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카레이싱 영화로 보고 싶은가? 물론 그렇게 즐길 수는 있겠다. 단, 그러려면 카레이싱 경기의 복잡한 룰, 경기 전략 전술, 수많은 전문 용어, 차의 엔지니어링 지식 등등 알아야 할 것이 ‘수두룩 빽빽’할 것이다. 이 영화는 카레이서의 얘기로 보면 오히려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실제로 2시간 35분짜리 이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시간쯤은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동차 ‘덕후’가 아닌 한,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비인기 종목일 경우) 카레이싱이라 하면 그저 ‘냅다 속도를 내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 경기로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경기 도중 레드 플래그가 펄럭이면 세이프티 카가 발동되고 모든 레이서는 일정 속도 이상으로 주행하면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것이 있다는 것조차 너무나 생소한 얘기일 것이다.

 

신파가 살짝 묻어나는 퇴락한 카레이서 이야기

카레이싱, 그것도 ‘F(포뮬라)1 그랑프리’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자동차 경주의 원조다.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만큼 운영의 디테일이 엄청난 수준으로 진화한 경기다. 따라서 영화 ‘F1 더 무비’를 자동차 경기의 관점에서 보려면 꽤 예습이 필요한 작품이다. 복잡하다. 재미가 없다. 차라리 실제 경기를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탑건: 매버릭’ ‘오블리비언’)이 영화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F1 그랑프리’를 점차 뒤로 보내고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를 앞으로 밀어내기 시작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영리한 감독답게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나중엔 그것을 극 중 인물들이 대화 속에서 서로 설명하게 할 정도다.

모든 영화는 항상 그렇지만,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며 그 스토리가 어떻게 구조화 되어 있는가 하는, 스토리 텔링이 우선돼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의 주인공, 곧 캐릭터가 중요하다.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앞뒤의 에피소드들이 맞아야 한다. 중구난방이어서는 관객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토리, 스토리 텔링, 캐릭터는 영화의 삼단 구조이다. 영화 ‘F1 더 무비’는 그 세 개의 요소가 전형적인 방식으로 착착 진행되는 영화다. 안정적이되 혁신적이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면서도 다분히 뻔한 내용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거기서 발산되는 신파의 감상주의가 살짝 눈물을 훔치게 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의 평점을 낮게 매기게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다. 그는 ‘노친네’ 소리를 듣는다. 퇴락한 레이서다. 미 전역을 떠돌며(마지막 장면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로 보인다) 도박 레이스로 먹고산다. 아니 그에겐 이제 돈이 중요하지 않다. 루키 시절 그는 촉망받는 레이서였고 챔피언십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었지만 한순간의 실수, 찰나의 욕망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한 후 퇴출당했다. 그는 돈과 명예, 챔피언의 위치 모두를 잃었다. 그런 그가 자신과 하룻밤을 지낸 레이싱카 설계자(한때 NASA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나온다) 케이트(케리 콘던. 맞다. 마틴 맥도나가 만들었던 ‘이니셰린의 밴시’에 나왔던 그 배우이다. 이 영화의 ‘FI 그랑프리’는 런던에서 시작된다. 아일랜드 출신 여배우가 캐스팅된 이유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술과 싸움과 온갖 짓을 다 하며 살았지. 너무나 한심한 존재여서 나 스스로가 너무 싫을 정도로…. 돈과 이름, 인생을 다 잃었어. 근데 어느 날 생각이 들더라구. 내가 잃은 것은 그게 아니고 레이싱 자체라는 걸.”

모든 걸 잃은 레전드와 최고가 되고 싶은 루키의 갈등 구도

그래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돈이나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달릴 수만 있다면’ 무슨 경기든 상관없다는 모토로 살아간다. 케이트를 만난 것은 그가 친구의 강권으로 F1에 참가하게 됐기 때문인데, 이 친구는 젊었을 때 그와 레이싱을 함께 한 파트너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이다. 루벤은 현재 F1 최하위 팀인 에이팩스(APXGP)의 대표이다. 야구로 얘기하면 구단주다. 루벤은 에이팩스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사회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에이팩스 팀에는 주목받는 신예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가 있어 루벤은 소니 헤이스를 끌어들여 팀 승리의 반전을 노리는 중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최고가 되지 못한 레전드 인물과 최고가 되고 싶은 루키의 갈등 대립을 기본 축으로 전개된다. 이 부분은 코신스키의 전작인 ‘탑건: 매버릭’의 스토리 구조를 스스로 복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당초 이 영화에 대해 ‘땅건’이라는 비아냥이 나온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격렬하게,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된다. 강렬한 자동차 경주의 굉음이 관객들을 질주하게 만든다. 돌비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이 갖춰진 극장에서라면 마치 F1 경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브래드 피트가 몰고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상업적으로는 소위 갖출 것을 다 갖춘 작품이다. 애플이 제작비를 대고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 비용을 댔다. 3억 달러를 썼다. 쓴 만큼 보여주는 영화다.

 

배우가 늙는 걸까? 아니면 카레이서가? 영화평론가가? 영화 자체가?

톰 크루즈가 됐든 브래드 피트가 됐든, 전설의 스타들이 인생을 뒤돌아보는, 이상하게도 회한이 담긴 캐릭터를 요즘 자주 선보인다. 톰 크루즈는 ‘탑건: 매버릭’과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파트2’에서 사라져 가는 인물을 연기한다. 브래드 피트 역시 ‘F1 더 무비’에서 후회와 성찰의 인생 연기를 펼친다. 브래드 피트는 비슷한 캐릭터를 데이미언 셔젤의 2023년 작 ‘바빌론’에서 퇴락한 스타 배우 잭 콘래드 역으로 선보인 바 있다. 카레이싱을 원하면 ‘냅다’ 달리면 된다. 카레이서가 인생에서 길을 잃었다면 다시 카레이싱에서 찾아야 한다. 영화평론가가 인생에서 길을 잃었다면 영화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 줄기차게 영화를 봐야 하는 것, 그 초심의 원칙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그 성찰의 진수를 느끼는 것이 너무 늦은 나이라는 점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이들은 안타깝고 슬픈 상련(相憐)을 느낄 것이다. 상실의 시대가 있었음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 ‘F1 더 무비’는 결국 상실의 보편성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요즘 들어 초로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빈번히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는 할리우드 영화, 더 나아가 영화 자체의 쇠락을 얘기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영화는 한때 너무나 잘 나갔고, 너무나 많은 돈과 이름과 권력을 누릴 만큼 누렸으나 정작 중요한 것, 그 스피릿을 잃었다. 그런 주제의 얘기를 브래드 피트 등은 노화한 자기 얼굴에 중첩 시켜서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그 미끈한 지골로로 나왔던 브래드 피트도 늙었다. 많이 늙었다. 이 영화 출연을 위해 했다는 안면거상술에도 티가 날 정도로 늙었다. 한 시대가 간다. 영화의 시대가 간다. ‘F1 더 무비’는 카레이싱의 성공이 갖는 이면, 그 허망함에 대한 영화이다. 그게 좋은지, 아니면 그래서 싫은지는, 늘 그렇지만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 영화 ‘F1 더 무비’는, 지난 6월 25일 전국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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