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김건희 특검은 기회? '죽은 자식 불ⅹ 만지기'

윤석열-김건희 미화하고 이재명은 악마화하더니…

영화 '내부자들' 말장난하던 주필은 손목 잘리던데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 인터넷 영화 장면 갈무리.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 인터넷 영화 장면 갈무리.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의 대사입니다. 조국일보는 자본과 유착하여 여론을 조종하고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신문사이고, 이강희 논설주간은 사실을 비틀어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는 곡필의 재주로 기자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이강희 주간의 장난으로 조국일보는 자기편에겐 잘못이 있어도 ‘어떠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물타기 보도와 ‘연관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방패막이 보도로 면죄부를 발부하고, 남의 편에게는 ‘어떠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거나 심지어 ‘매우 보여진다’는 말장난으로 멀쩡한 사람을 악마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게재되는 조선일보 내부자들의 칼럼을 볼 때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이 연상될 때가 많습니다. 공교롭게도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 논설주간의 단짝은 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한 경력이 있는 검사 출신의 유력한 대선후보입니다. 현실에서도 그런 대선후보가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비리가 폭로되어 파멸로 끝나지만 현실의 대선후보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제멋대로 행동하다 결국 탄핵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물론 영화 속의 ‘조국일보’와 현실의 조선일보는 이름의 앞글자만 같을 뿐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영화 말미에는 ‘이 영화에서 묘사된 인물, 회사 등 일체의 명칭과 에피소드는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 ‘어떠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하거나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칼럼을 보면, ‘어떠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거나 심지어 ‘매우 그렇게 보여질’ 때도 많습니다. 지난 19일에 게재된, <'김건희 특검'은 그때 尹에게 기회였다>는 제목의 양상훈 주필의 칼럼도 그러합니다. 신문사에서 주필이란 자리는 기자로는 제일 높은 자리이고 신문의 논조를 좌지우지하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이강희 논설주간은 이름만 논설주간일 뿐 영화에서는 ‘주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양상훈 주필은 그 칼럼에서 2024년의 총선에 앞서 대통령 윤석열이 ‘김건희 특검’을 수용했다면, 부부싸움을 했을지 몰라도 자신과 정부와 국힘당을 구하고 총선에서 참패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내인 김건희도 구했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대통령은 윤석열일 거라고 합니다. 김건희 특검은 윤석열-김건희 부부에겐 괴롭고 아프지만 진짜 살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겁니다.

 

우리 속담에 ‘죽은 자식 불x 만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자에게 불x은 아주 민감한 부위입니다. 죽은 척하다가도 거기를 만지면 벌떡 일어납니다. 그래서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죽은 자식의 거기를 만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들이 죽어 대를 이을 수 없음을 한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식 불x 만진다’는 속담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처럼 아무 소용이 없는 뒤늦은 후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드는 것처럼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의미로도 통합니다.

양상훈 주필도 그때 쓴 칼럼에서 대통령 윤석열에게 특검을 받으라는 고언을 했다는데, 내 눈에 그건 고언이 아니라 김건희 특검을 거부하는 고집을 부리다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게 되니 제발 내 말 좀 들으라는 동업자의 읍소로 보였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그 고언을 받아들여 김건희 특검을 수용했다면, 김건희는 기소될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탄핵되고, 정권을 잃고, ‘내란 수괴’가 되고, 자신과 부인은 패가망신하고, 어쩌면 부부가 모두 감옥에 가고, 국민의힘은 폐족이 되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랍니다. 그러니까 양상훈 주필의 예상에 따르면, 김건희-윤석열 부부는 감옥에 가고 국민의힘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12.3 계엄이 단지 김건희 특검법을 막으려고 한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방아쇠가 된 것은 사실일 거랍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김건희 특검을 막으려 했는데 이제 거꾸로 몇 배의 강도로 특검이 시작되게 됐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 아닌 포클레인으로도 못 막게 생겼답니다. 윤석열의 병적인 ‘부인 구하기’가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 거랍니다. 죽은 자식 불x 만지는 것 같은 양상훈 주필의 탄식이 내 귀에는 ‘내 말 안 듣더니 꼴 좋다. 쌤통이다’라는 분풀이 원망으로도 들리고, ‘고집불통 너 때문에 나까지 망하게 생겼다’는 동업자의 악담으로도 들립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런 원망도 악담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뒤에 김건희의 주가조작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탈탈 털었어도 나온 게 없어서 기소를 못한 것이라고 김건희를 두둔했습니다. 디올백 선물이 폭로되었을 때는 함정 취재가 문제의 본질이라거나 종북 목사가 대통령 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건 경호에 문제가 있다는 거라는 등 사안의 본질을 가리고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보도로 일관했었습니다. 

 

그렇게 김건희의 방패 노릇을 하던 조선일보가 김건희 특검을 받으라고 재촉했던 건, 국힘당 비대위원장이 된 한동훈을 띄우고 총선에서 국힘당의 참패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보도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선거운동을 한 겁니다. 조선일보가 대통령 윤석열에게 김건희 특검을 받으라고 고언을 했다는 건, 상황에 따라 유불리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논조를 바꿨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습니다. 8월 14일까지 일제를 찬양하다가 8월 15일부터 독립운동을 했다는 건 자랑이 아닙니다.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겁니다.

12.3 계엄이 실패로 끝난 직후에 조선일보에 실린,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양상훈 주필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많은 폭탄을 던져 왔다. 그 폭탄은 거의 모두 자신과 정부·여당 안에서 터져 자해만 입혔다. 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란 얘기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비정상적일 줄은 몰랐다”고 핏발을 세웠습니다.

양상훈 주필의 윤석열 저주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윤석열은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고, 공감능력이 없고, 남을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이고, 양상훈 주필은 그런 이야기를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답니다. 웃깁니다. 아니 화가 납니다.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은 후보자의 능력과 도덕성, 그러니까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하는 겁니다.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다면 그렇다고 보도하여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어야합니다. 그래야 언론다운 언론이고, 그것이 정론직필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떠했나요?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고, 공감능력이 없고 남을 존중하지도 않는 윤석열을 ‘역대급 리더’라고 미화하고 찬양하며 치켜세웠습니다.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라는 김대중 전 주필은 윤석열은 준비된 ‘대통령 지망생’이 아니고, 대중적 리더십에 익숙하지도 않고,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도 없었고, 그래서 그의 ‘그릇’에 대해 불안감이 없지 않고, 검찰 만능주의 사고방식과 말을 함부로 하는 것과 부인과 장모 등 가족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20대 대선은 문재인 정부 5년을 청소할 청소부를 뽑는 선거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윤석열을 찍으라고 지면에 드러내 놓고 선거운동을 했었습니다. 

말장난의 곡필로 국민을 홀리는 조선일보의 행태는 이번 21대 대선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양상훈 주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계엄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12.3 계엄은 실제 상황이며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와 계엄을 막아달라는 유튜브 방송으로 윤석열의 계엄을 막은 최선봉에 이재명 대표가 있었는데도 다짜고짜 윤석열과 함께 이재명도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하고, 이재명 후보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 정책 공약도 내놓자 보수진영을 흡수하는 빈집털이를 한다고 악담을 하고, 국힘당 후보에게 이번 대선은 적은 차이로 간신히 이기거나 큰 차이로 참패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이판사판으로 ‘이재명 비호감’ 선거 전략에 올인하라고 훈수를 두고, 이재명 후보의 말에서 몇 단어만 거두절미로 떼어내고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견강부회의 억지를 가미하여 ‘호텔 경제학’이니 ‘커피 원가 12원’ 운운하는 ‘이재명 악마화’로 지면을 채웠습니다.

더 놀라운 건, 대선 후에 나온 칼럼입니다. <'미래가 있는 보수' 희망 보여준 대선>이라는 제목으로 대선 다음 날에 나온 칼럼에서 양상훈 주필은 출구조사의 결과를 보면 절반의 2030 세대 유권자들은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를 찍었다면서 보수 정치에 미래가 없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확실하게 미래가 있고 한국 청년들에겐 이준석 후보가 ‘미래 보수’의 등대 역할을 할 거라고 주장합니다. 12.3 계엄을 계엄령이라 하고,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난입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젊은 대선후보는 TV 토론에서 입에 담지 못할 저질 발언을 했는데도, 양상훈 주필의 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나 봅니다. 청년 세대가 극우화 경향을 보이는 원인과 배경은 살피지 않고 청년들이 극우화되니 보수진영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반깁니다. 이쯤 되면 언론인이 아니라 극우 선동꾼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양상훈 주필은 <'김건희 특검'은 그때 尹에게 기회였다>는 칼럼에서 ‘이 불행한 과정을 보면서 인간사, 세상사의 섭리를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서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호미로 막아야 한다’고 칼럼에 썼습니다. 틀렸습니다. 양상훈 주필이나 조선일보에는 그 모든 것이 불행일 수 있으나 국민 다수에겐 다행입니다. 지금도 윤석열이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정도로 암울할 겁니다. 

 

지난해 겨울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 본사 앞 거리에 걸려있는 '조선일보 폐간하라' 내용의 현수막.  송요훈 사진. 
지난해 겨울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 본사 앞 거리에 걸려있는 '조선일보 폐간하라' 내용의 현수막.  송요훈 사진. 

거창하게 인간사, 세상사의 섭리까지 들먹이는 양상훈 주필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양상훈 주필이 간파했듯이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윤석열이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고 윤석열이 기필코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던 정적이며 조선일보가 그토록 악마화하던 이재명이 대통령 된 것이 인간사, 세상사의 섭리입니다. 양상훈 주필이 칼럼에 썼듯이 그 섭리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하늘의 굴레를 담고 있고, 조선일보도 예외는 아닙니다. 언론답지 않은 언론은 언론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도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섭리이고 이치여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고 보름이 지났는데도 ‘이재명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보면 아직도 어색하여 비현실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이재명은 악마라는 혐오 프레임을 씌우고 또 씌워 기필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저주의 주술을 반복하고,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돌출하여 희대의 파기환송이라 불리는 대법원의 판결도 사실상 이재명의 대선 출마를 봉쇄하려는 수구세력의 도발로 보였으니 지금 대통령이 이재명이라는 게 비현실처럼 느껴질 만도 합니다. 반면에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에겐 기필코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걸 막으려 한 조선일보의 악마화 주술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윤석열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이 비현실로 느껴지나 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은 ‘말은 권력이고 힘’이라고 했습니다. 언론이 언론의 구실을 하고 언론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때, 언론이 전하는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집니다. 그러나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고 부풀리고 과장하는 언론의 말장난은 부메랑이 되어 언론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고 기자를 ‘기레기’라 불리게 합니다. ‘말은 권력이고 힘’이라며 말장난의 곡필을 하던 영화 속의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은 펜을 잡던 손목이 잘리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 영화가 나온 게 2015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됐는데도, 한국의 언론환경에서 손목 잘린 그 장면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때로는 영화가 더 현실 같고, 언론보다 더 신랄하고 통렬하게 현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지요. 양상훈 주필은 이재명 대통령과 측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며 윤석열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충고를 합니다. 그런 양상훈 주필에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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