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에 배 아픈 '놀부 심보 퍼레이드'
김대중·박정훈 씨, '선출된 독재자…' 악담 퍼부어
배성규 씨 '내란 동조한 과거 묻지 말라' 회유·협박
양상훈 씨는 '저질발언 이준석에 희망' 정신승리
김창균 씨, 윤석열 두둔…오히려 내란특검 비난
흥부 뺨 때리고 제비다리 부러뜨리기 딱 그런 식
놀부는 요즘 배가 몹시 아픕니다. 안 그래도 사촌이 땅을 사면 자동으로 배앓이가 심했는데 요즘은 그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놀부가 배가 아픈 건 흥부가 결국 땅을 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자기처럼 불법과 탈법과 편법을 총동원한 야비한 방식이 아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악선전을 하는 놀부 일당의 핍박을 이겨내고 정직하게 일하여 번 돈으로 말입니다. 흥부 지지자들의 박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놀부의 정신세계에는 폭풍이 밀려옵니다.
속이 배배 꼬인 놀부는 확성기를 들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흥부가 땅을 사면 동네가 망할 거라고 악담도 하고 험담도 하고 공갈 협박도 했지만 그럴수록 동네 사람들은 흥부가 땅을 사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놀부는 배가 더 아픕니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아픈 배를 부여안고 먼지가 나도록 마당에서 떼굴떼굴 굴러도 아픈 배가 낫지를 않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습니다. 그러니 배가 더 격렬하게 아픕니다.
어차피 내가 먹을 밥이 아니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잘 자란 남의 호박에 말뚝을 박고,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저주의 악담을 퍼붓는 놀부 심보는 조선일보 지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부가 땅을 사기 직전과 직후, 그러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21대 대선 선거일 전후의 조선일보 지면을 장식한 놀부파의 심보를 추적해봤습니다.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라 불리는 김대중 전 주필은 21대 대선 선거일을 불과 사흘 앞둔 5월 31일의 조선일보에 실린 기명 칼럼에서 ‘이번만큼 불안하고 두렵고 암울하기까지 한 적은 없었다’고 놀부 일당의 심리상태를 전합니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인용하여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을 법칙을 바꾼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주필은 이재명 후보는 ‘선출된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이재명에게 표를 주지 말라고 독자들을 꼬드깁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무력화하고 게임을 규칙을 바꾼 ‘선출된 독재자’는 윤석열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로 김대중 전 주필은 윤석열이 대선후보이던 시절에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선출된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선후보 윤석열은 지도자로서 검증도 되지 않았고 준비도 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의심도 있지만, 20대 대선은 문재인 정부의 5년을 청소할 청소부를 뽑는 선거이므로 유권자들은 발상을 바꿔 닥치고 윤석열을 지지하라고 독자들을 다그쳤습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인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민주주의가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자는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며, 그런 인물이 당내의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그 정당이 자체적으로 차단하고, 그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자를 지지하거나 연대함으로써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저자들의 권고에 따르자면, 국힘당은 ‘극단주의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막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라는 김대중 전 주필은 책의 내용을 곡해하여 ‘민주주의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막으라고 합니다. 저자들이 알면 무어라 할지 궁금해집니다. ‘극단주의자’ 윤석열을 ‘선출된 독재자’로 만든 건, 김대중 전 주필의 주장처럼 우매한 유권자들이 아니라 괴벨스가 울고 갈 선전 선동의 대국민 심리전으로 유권자들을 오도한 조선일보입니다.
김대중 전 주필의 칼럼보다 하루 앞서 나온 박정훈 논설실장의 ‘대선 후보 허위 발언, 이렇게 무모해도 되나’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은 이재명 후보를 악마화하며 배배 꼬인 조선일보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선거 때 거짓말을 엄중히 다뤄야 하는 것은 당락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후보자 자질과 직결되는 도덕성, 정직성의 문제이기 때문이고, 이번 대선에서 최악의 거짓말은 이재명 후보의 ‘부정부패 없다’는 발언이며, 이재명 후보는 역대 어느 대권 주자보다 광범위한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됐다고 단정합니다.
윤석열 검찰의 이재명 수사는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적 수사이고, 이재명과 주변 사람들을 탈탈 털고도 이재명 주머니로 십 원 한 장이라도 부정한 돈이 들어간 걸 밝혀내지 못했으며, 재판 중인 이재명 후보도 감옥에 갇힌 측근들도 검찰의 조작 수사를 규탄하며 검찰은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해 왔습니다. 이재명 재판은 정적을 제거하려는 윤석열 검찰의 정치적 기소에 따른 것이고, 확정판결이 나온 것도 아닌데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조선일보 칼럼에는 ‘100% 유죄’라고 굵은 글씨로 박혀 있습니다. 최종 판결이 있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하는 것이 법의 원칙인데, 조선일보는 대법원 위에 군림하는 최고법원인가 봅니다.
박정훈 논설실장은 이재명 후보를 향해 배설한 그 악담을 국힘당의 대선후보이고, ‘내 아내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녀 구약을 모두 외운다’, 주가조작에 관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손해를 봤다‘, ‘내 장모는 누구에게도 십 원 한 장의 피해를 주지 않았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던 윤석열에게 했어야 합니다. 그때는 입을 꾹 닫고 있더니 엉뚱하게 이재명에게 악담을 퍼부어댑니다. 양머리 걸고 개고기 파는 언론인들이 사라지게 하려면 하루빨리 징벌적 배상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감별하는 ‘언론 독해법’을 장착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론 윤리는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쓰고, 기사나 칼럼, 논설을 작성할 때는 객관적 사실과 기자의 주관적 의견을 구분하여 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이재명 후보는 역대 어느 대권 주자보다 광범위한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됐다’고 단정하는 칼럼은 징벌적 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징벌적 배상제 도입에 극렬하게 반대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언론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하면 표적이 된 사람의 명예를 허위의 사실로 고의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훼손하는 보도를 반복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대선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조선일보 지면에는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이성을 상실한 듯한 칼럼이 연일 게재됐습니다. 김문수 지지를 선언한 이낙연을 배신자 취급하면서 무슨 통합 타령이냐고 악담을 하고, 대법관 증원은 대법관을 ‘김어준 대법관’들로 채워 이재명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거라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이재명 후보에게선 총통의 징후가 보이고 괴물 독재 정권이 탄생할 거라며 보수 유권자들에게 겁을 주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칼럼들은 하나같이 내가 못 먹을 죽에 코나 빠뜨리자거나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놀부 심보’로 가득 찬 칼럼들이었습니다. 전현직 주필에서 말단 논설위원까지 총출동한 그 칼럼들을 보자면,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조선일보 내부 필진은 모두 놀부 심보인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놀부가 심술을 부린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놀부처럼 행동하다간 마을에서 쫓겨납니다. 사필귀정과 권선징악의 결말이 절실한 건 언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량품을 제조하여 판매하면 그 기업은 ‘제조물 책임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습니다. 거짓된 말과 글로 국민을 속이고 홀리는 언론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한데, 한국의 언론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거도 끝나고 그토록 저주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그만둘 법도 한데, 조선일보의 ‘놀부 심보’ 악담은 오히려 더 극성을 부립니다.
대선 다음 날인 6월 4일, ‘역대 최강 정권의 칼’이란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게재된 배성규 논설위원의 칼럼은 전형적인 회유와 협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적폐 청산’에 올인했고, 그것은 사실상 정치 보복이었으며, 1년 넘게 적폐 몰이를 하다 국민의 피로감을 키웠고, 결국 경제를 망친 내로남불 정권으로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에 유능함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니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합니다. 충고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윤석열과 조선일보의 과거를 묻지 말라는 회유입니다.
권력은 칼과 같아서 쓰기에 따라 사람을 해칠 수도 있고 구할 수도 있답니다. 정적 제거에 쓰면 피가 묻고 자칫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답니다. 은근한 협박입니다. 조선일보는 그런 협박성 충고를 대통령이던 윤석열에게도 했을까요? 저는 그런 비판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강하답니다. 칼을 쓰지 말라는 것인데, 그런 식의 속 보이는 꼬드김에는 초딩들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다음 날에 나온 양상훈 주필의 칼럼은 말 그대로 ‘조선일보의 정신 승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변 없이 이재명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미래가 있는 보수’라는 희망을 보여준 선거이기도 했답니다.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20-30대 유권자들이 절반을 넘은 걸로 나왔는데 그것이 희망을 보여준 거랍니다. 이준석은 한국 청년들에게 ‘미래 보수’의 등대 역할을 계속하게 될 거랍니다. 물론,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질 발언을 했고 국회의원 제명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는 건 말하지 않습니다. ‘할 말은 하는 조선일보’이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아흐레가 지난 6월 12일에 실린 김창균 논설주간의 기명 칼럼은 놀부 심보가 확증편향을 넘어 악다구니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보여줍니다. 같은 생각이면 자기 의견을 말하면 되는데, 굳이 고 장기표씨 부인의 말을 빌려 12·3 계엄은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었고,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는 불능 범죄였고, 쉬운 계엄이라 쉽게 해제되었으니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데, 나라를 결딴낼 기세로 공격하고 갈등을 증폭시킨 게 더 문제라는 겁니다.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반바지 입고 아파트 상가를 활보하는 내란 수괴 윤석열이 조선일보를 점령한 것 같습니다. 12월 3일, 난데없는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 밤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시민들에게 계엄 선포는 실제 상황이니 국회 앞으로 와 달라는 유튜브 방송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계엄을 실패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란 특검의 목적은 내란 동조 세력에 낙인찍기이며, 윤석열 정권의 치부를 탈탈 털어 쟁여 놓고 있다가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곶감처럼 빼먹자는 계산이랍니다. 박근혜 탄핵으로 정권을 거저 주운 문재인 정부도 써먹은 수법이랍니다. 그건 정권이 국민에게 내놓을 자기 상품이 없다는 고백처럼 들렸고, 문재인 정권의 내리막길은 그렇게 시작됐답니다. 김창균 논설주간의 그 칼럼이 제겐 고양이 앞의 쥐가 ‘나는 쥐약 먹은 쥐이니 날 잡아먹으면 너도 죽는다’며 공갈 협박을 하는 것 같아 가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조선일보를 보면 선전 선동의 귀재라는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연상되었는데, 요즘은 갈수록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놀부 심보가 보입니다. 가만히 있는 흥부의 뺨을 때리고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동네에 불을 지르겠다고 공갈 협박을 일삼는 건달이 되어가는 느낌마저 받게 됩니다. 불량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도태됩니다. 그것이 시장의 법칙입니다. 언론에도 그러한 법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 세상이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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