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앞에선 연대했지만 인도 독립에는 맞서

복잡한 감정의 두 얼굴…둘 다 옳았지만 불완전

 

간디와 처칠
간디와 처칠

영국 역사에서 서로 '이중감정'을 가졌던 두 인물을 상고하면 윈스턴 처칠(1874~1965)과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퍼뜩 떠오른다. 이들은 20세기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부딪혔다. 히틀러(1889~1945) 앞에선 잠정적 동지였지만, 인도 독립을 두고는 완강한 적수였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역사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영역임을 깨닫는다. 

히틀러 앞에서는 '같은 편'?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과 간디는 명백히 공동의 적인 아돌프 히틀러를 상대했다. 하지만 싸움의 방식은 극명히 달랐다. 처칠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자유세계를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온 힘을 다해 독일에 맞섰고, 때론 비인간적 결정을 내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반면 간디는 평화주의자였다. 히틀러에게조차 비폭력을 권유하며 '전쟁 대신 평화로운 대화'를 시도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처칠이 그 편지를 읽었다면 분명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순진한 사람이!”

이 지점에서 역사의 첫 번째 아이러니가 고개를 든다. 간디의 비폭력은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에는 놀라운 효과를 냈지만, 히틀러의 광기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반대로 처칠의 무력저항은 히틀러를 저지했지만, 인도의 독립 요구에는 억압의 얼굴을 드러냈다.

'먼저 전쟁을 도우라' vs '먼저 독립을 달라'

전쟁 중 영국은 인도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폭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간디는 이를 거부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찔렀다.

“왜 우리가 대영제국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가?”

처칠은 반발했다. “히틀러가 이기면 인도가 더 나아질 것 같소?” 간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히틀러의 파시즘과 영국의 제국주의, 어느 쪽이 더 악한지 따지기보다, 인도는 그 둘 중 누구에게도 종속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마치 내 마음과 닮아 있다.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감정. 간디와 처칠의 엇갈린 주장 속에서도 그런 ‘경계인의 서러움’이 느껴진다.

 

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

“간디, 저 성자 좀 어떻게 안 되나…”

이쯤에서 잠깐 처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상 속 일기장을 펼쳐보자.

“오늘 또 간디가 단식을 선언했다. 정말 이 사람이 굶어 죽기라도 하면 전 세계 여론이 나에게 쏠릴 것이다. 히틀러는 탱크로 밀어붙이는 적이라 명확하지만, 간디는 도덕이라는 갑옷을 입은 적이다.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간디는 무장을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더 위험했다. 그가 굶는 순간, 대영제국은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 처칠에게 간디는 ‘현실을 무시하는 성자’이자, ‘무섭도록 논리적인 윤리적 전사’였다.

 

간디
마하트마 간디

간디의 눈에 비친 처칠, 또 하나의 제국주의자

반대로 간디는 처칠을 어떻게 보았을까? 아마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처칠이 정작 인도의 독립은 부정했다. 백인을 위한 자유는 자유이고, 식민지는 예외란 말인가? 문명이라는 가면을 쓴 대영제국주의자들, 당신들도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아이러니다. 처칠은 독재와 싸우며 자유를 지키려 했지만, 식민지에는 그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간디는 자유를 갈망했지만, 그 자유를 위해 전쟁에 나서는 건 거부했다.

둘 다 옳았고, 동시에 불완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인도는 독립했다. 그리고 역사적 평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처칠이 히틀러를 막지 못했다면 인도의 독립도 미뤄졌을 것이다. 간디가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지 않았다면, 영국은 인도를 더 오래 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고, 그 신념은 서로 모순됐지만 결과적으론 모두 중요했다. 서로 모순돼 보이지만 둘 다 진실이다.

간디와 처칠의 관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다.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고,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 처칠은 히틀러에 맞선 영웅이었지만, 식민 지배를 고수한 제국주의자였다. 간디는 도덕적 성인이었지만, 세계적 위협 앞에서는 불편한 침묵을 지켰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영국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방인처럼, 처칠과 간디도 시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역시 그런 이중적 존재들이다.

간디와 처칠은 완벽하지 않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시대를 살아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진짜 얼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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