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기법 영국문학의 DNA 바꿔
트위터 등 SNS에도 '일상의 서사화' 깃들어
대영제국의 문학지도를 바꿔 놓은 '반항아'
현대 모든 디아스포라 문학에 조이스 영향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아일랜드를 사랑하면서도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고, 영국을 비판하면서도 영어로 글을 썼다. 그가 영국 사회와 문학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마치 내가 한국과 영국 두 나라를 오가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조이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저항서사였다. 그는 가톨릭 교육을 받았지만 종교를 거부했고,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민족주의에도 완전히 동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예술을 통한 더 근본적인 혁명을 꿈꿨다. 펜 한 자루로 제국의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혁명 말이다.
디아스포라의 문학적 끝판왕
조이스는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그의 인생 대부분은 아일랜드 밖에서 보냈다. 로마, 취리히, 파리 등지에서 망명자 혹은 자발적 이방인으로 살며, 아일랜드를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는 고국을 떠나 있었지만, 문학 속에서는 단 한 발짝도 아일랜드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하룻동안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 전체를 탐색한다. 몸은 더블린 거리를 떠났지만, 마음은 결코 떠난 적 없었다.
조이스의 이러한 이중감정은 내가 냉면을 먹으며 BBC 뉴스를 보고, 한국 영화를 보다 갑자기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그리워지는 복잡한 감정 구조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는 "나는 아일랜드에서 망명한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를 가지고 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에 디아스포라의 존재론적 모순이 모두 담겨 있다.
현대의 디아스포라 문학이 모두 조이스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만 루슈디부터 자디 스미스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은 모두 조이스가 닦아놓은 길을 걷고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는 고향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역설적 진리를 문학으로 증명한 최초의 작가였다.
문학계의 '브렉시트', 조이스의 등장
1904년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영국문학계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에 젖어 있었다. 그런 시대에 한 아일랜드 청년이 나타나서는 "여러분, 이런 식으로 소설 쓰면 안 됩니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마치 유럽연합(EU)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한 영국처럼 말이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는 영국문학사에 일종의 '문학적 브렉시트'를 가져왔다. 기존의 소설형식에서 완전히 탈피해 버렸다. 영국의 전통적인 소설가들이 "이게 소설이야, 실험이야?"라며 당황해 하는 사이, 젊은 작가들은 "아,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하며 눈을 번뜩였다.
특히 조이스는 영국 문학의 가장 신성한 영역인 '사실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19세기 영국 소설의 전통은 명확한 플롯, 일관된 서술자, 논리적 인과관계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조이스는 "인간의 의식이 그렇게 정리되어 흘러가느냐?"고 반문하며, 의식의 실제 흐름을 그대로 소설에 옮겨놓았다. 이는 문학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
언어의 마술사, 영어를 재발명하다
조이스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가지고 놀았다. 〈피네간스 웨이크〉에서는 아예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버렸다. 이는 마치 세익스피어 이후 가장 혁명적인 언어실험이었다. 영국인들은 처음에는 "이게 뭔 소리야?"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점차 그의 언어 창조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조이스의 언어실험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영어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들을 깨워냈다. 하나의 단어에 여러 의미를 중첩시키고, 서로 다른 언어들을 뒤섞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했다. 예를 들어 "riverrun"(강달리기)이라는 조어는 강의 흐름과 시간의 순환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언어의 경계를 확장했다.
특히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영국문학의 DNA를 바꿔놓았다. 버지니아 울프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영국작가들이 이 기법을 받아들였다. 조이스 한 명이 영국문학의 유전자를 개조해 버린 셈이다. 이후 영국소설은 내적 독백, 자유연상, 시간의 해체 같은 기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검열과의 전쟁, "외설이냐, 예술이냐"
〈율리시스〉가 영국에서 출간되기까지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영국 당국은 이 책을 "외설적"이라며 금지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금지된 책일수록 더 읽고 싶어 하는 게 인간 심리 아닌가?
이 검열 논란은 단순한 문학사건을 넘어 영국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지식인들과 작가들은 조이스를 옹호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T.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같은 영향력 있는 문인들이 조이스 편에 섰다. 이들의 노력으로 영국사회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1936년 영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율리시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 '자유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영국의 표현의 자유 확장에 조이스가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일랜드 작가가 영국의 언론·출판 자유를 넓혀준 격이다.
교육계의 혁명, 대학가를 뒤흔들다
조이스의 작품들이 영국 대학의 문학 커리큘럼에 들어가면서, 문학교육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를 묻던 것이, 조이스 이후에는 '이 작품은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묻게 되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의 교수들은 조이스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문학이론을 개발해야 했다. 한 작가가 전체 교육 제도를 업데이트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아이폰이 나온 후 모든 스마트폰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특히 '신비평'(New Criticism)의 등장에 조이스가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작품을 작가의 의도나 시대적 배경과 분리해서 텍스트 자체로 분석하는 방법론이 조이스의 복잡한 작품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발달했다. 이는 20세기 후반 영미 문학교육의 표준이 되었다.
대중문화의 새로운 원형
조이스는 '하루 24시간'을 소설로 그려낸 최초의 작가였다. 이는 훗날 영국의 TV 드라마, 영화, 심지어 리얼리티 쇼의 원형이 되었다. '빅 브라더'부터 '24시간' 시리즈까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국 대중문화를 찾기 어렵다.
특히 영국 코미디의 '부조리한 유머' 전통도 조이스의 언어실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몬티 파이튼의 말장난부터 현대 영국 코미디언들의 위트까지, 그의 언어적 유희가 스며들어 있다. BBC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에서 볼 수 있는 언어 해체와 재조립의 유머는 모두 조이스의 후예들이다.
심지어 현대의 소셜미디어 문화도 조이스의 영향 아래 있다. 트위터의 짧은 '의식의 흐름', 인스타그램의 순간 포착, 유튜브의 일상 스트리밍까지. 모든 것이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시도한 '일상의 서사화'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관광산업의 보물, '조이스 투어리즘'
아이러니하게도, 아일랜드를 떠난 조이스가 영국 관광산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런던의 조이스 관련 투어, 그가 머물렀던 장소들을 찾는 문학관광객들이 매년 수만 명씩 영국을 찾는다. 한 작가가 21세기에도 외화를 벌어다 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매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에는 런던 곳곳에서 조이스를 기리는 행사들이 열린다.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이 날에는 영국 전역의 서점과 대학에서 조이스 읽기 모임이 열리고, 아이리시 펍들은 조이스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한 아일랜드 작가가 영국의 연례 문화행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조이스의 영향은 여성주의 문학에서도 두드러진다. 〈율리시스〉의 마지막 장인 몰리 블룸의 독백은 여성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최초의 시도 중 하나였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나 도리스 레싱의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영국의 여성 작가들은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받아들여 여성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조이스가 보여준 내적 독백의 기법은 가부장적 서사에 갇혀있던 여성 인물들을 해방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이는 20세기 후반 영국 페미니즘 문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천재의 유산
조이스는 국경도, 언어의 경계도, 장르의 경계도 모두 무너뜨린 작가였다. 그의 영향은 영국 문학뿐만 아니라 영국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그는 아일랜드와 영국,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
진정한 창조는 경계에서 일어난다. 조이스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런 '경계인'의 힘이었다. 그는 영국을 떠나지 않고도 영국을 바꿔놓았고, 아일랜드를 그리워하면서도 세계문학사를 새로 썼다.
현대적 의미, 디지털 시대의 조이스
오늘날에도 우리는 조이스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의식의 흐름'을 트위터에 올리고, 넷플릭스에서 24시간짜리 시리즈를 보며,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밈을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그가 100년 전에 시작한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경험한 '격리된 일상'은 조이스가 그려낸 도시인의 고립감과 묘하게 겹친다. 집 안에서 세상을 관찰하며 내적 독백을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
결국 조이스는 증명했다. 진정한 혁명가는 무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펜 한 자루로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바꿔놓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는 100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조이스는 '이중감정자'였다
조이스는 이방인으로 살면서, 자기 조국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는 영국이라는 제국과 문화권을 혀끝의 위트로 비틀고,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럽 전역을 무대로 삼았다. 그의 유머는 냉소적이었고, 그의 풍자는 분노 대신 지적인 기지로 무장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나도 이중감정자다. 한국도 그립고, 영국도 그립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디선가 진짜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안다. 아마 조이스도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도 결국 더블린의 오후를 살고 있는 거야. 장소만 좀 다를 뿐이지."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날짜인 6월 16일은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에서 따온 '블룸스데이'로 불린다. 그래서 매년 6월 16일은 더블린과 세계 각지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기리는 날로 기념되고 있다. 그의 문학적 혁명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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