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썬더볼츠’ 세상을 구하려는 루저들의 모임
독자들도 'MCU 계통'의 히어로 영화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MCU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약자. 마블 코믹스 캐릭터로 만든 모든 영화, 곧 스파이더 맨, 아이언 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를 관통하는 세계관, 정치관을 말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가 ‘썬더볼츠’이다. 극중 주인공인 엘레나(플로렌스 퓨)가 미국의 한 이름없는 어린이 축구단, 곧 ‘웨스트 체서패크 밸리 썬더볼츠’에서 따서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자고 말하는 장면에서 언급되는 단어이다. 원래는 나라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인 만큼 팀 이름은 ‘어벤져스’가 되어야 하지만 이번 구성원들은 대체로 ‘루저들’이다. 대접받지 못하는 영웅들. 오히려 악명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들을 ‘디스’한다는 측면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어린이 축구단 이름을 갖다 쓴다.
‘슈퍼 히어로 등록제’로 갈리고 사라진 어벤져스 팀원들
어쩌면 이제 세상엔 더 이상의 히어로는 없다, 곧 나라와 세상을 구하거나, 특히 미국을 지켜 줄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회적 암시일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할리우드의 히어로 영화들도 서서히 끝물로 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자인하는 태도일 수 있다. 사실 시리즈 ‘어벤져스’의 캐릭터들은 2019년에 거의 다 죽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절대 악인 타노스는 인류를 살리기 위해 인류의 반을 죽여야 한다는 일종의 환경철학을 내세운다. 어벤져스 팀 대부분은 타노스에 의해 제거된다. 그 중에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의 죽음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줬다. 마치 미국 자체의 죽음처럼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혹은 미국으로 상징되는 견고한 영웅의 종말로 인식됐다.
이제 더 이상의 히어로는 없을 것이다. 그 이전에 이미 어벤져스 팀은 쪼개지고 있던 차였다. 슈퍼 파워를 내려놓고 세상의 평화를 평범한 대중들이 스스로 지키게 해야 한다는 쪽과 여전히 자신들의 슈퍼 파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져서 일종의 권력 다툼이 벌어졌었다. 이때의 핵심 쟁점이 ‘슈퍼 히어로 등록제’이다. 등록제 찬성파는 아이언맨이 이끌었다. 여기에 블랙 위도우, 스파이더 맨 등이 동조했다. 등록법 같은 정부의 개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대파는 캡틴 아메리카가 주도했다. 여기에 윈터 솔져, 호크 아이, 완다와 앤트맨 등이 같이 했다.
키에르케고르 어록 등장하는 코믹스 실사영화
그러니까 ‘썬더볼츠’는 이 모든 격렬한 갈등과 싸움의 폭풍이 지나간 후 슈퍼 히어로는 남지 않고 기껏해야 제도권화된 인물(윈터 솔져는 하원의원이 됐다) 아니면 미국 CIA 작전에 동원되는 소모품 등, 더 이상 대중이 찾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변질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엘레나는 러시아 비밀조직에 의해 살해된 일명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친동생이다. 영화는 엘레나의 “언니가 죽고 나서 세상사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식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더 이상의 영웅 행세에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는 이런 대사들도 나온다. 키에르케고르의 어록들이다. “세상은 종종 뒤집어 봐야 제대로 보인다.” “힘없는 정의는 그저 의견에 불과하다.” 영화 ‘썬더볼츠’는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를 단순한 코믹스(연재 만화)의 실사영화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장년층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정치적, 윤리적,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는 비트겐슈타인식 철학으로 자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은 단 하나의 진실과 진리에 접근할 수가 있는가.”
새 영화 ‘썬더볼츠’는 형식상으로는 2021년에 나온 ‘블랙 위도우’의 속편 격일 수 있다. ‘블랙 위도우’에서 언니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와 나왔던 엘레나(플로렌스 퓨)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타샤와 엘레나는 러시아 최대 첩보조직 레드룸 멤버들이었다. 레드룸에서는 대뇌학 연구를 통해 개발한 일종의 세뇌작업으로 첩보원 킬러를 키우는 곳이다. 이 대뇌학 세뇌 시스템은 나타샤와 엘레나의 의붓엄마인 멜리나 보스토코프 박사(레이첼 와이즈)가 만든 것이다. 멜리나 박사는 딸들을 위해 몰래 해독제를 숨겨 놨으며 두 딸 모두 이 해독제를 맞고 ‘자유의지’라는 의식을 되찾게 된다. ‘블랙 위도우’는 러시아가 최첨단 세뇌시스템(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의사(擬似) 가족 관계를 이용해서라도(멜리나와 딸들의 관계는 친족 혈육이 아니다)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건 마치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느슨한 가족주의로 사회주의 이념 벨트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다 해체된 현실과 같은 것이다. 전편인 ‘블랙 위도우’는 그런 얘기를 하려 했던 작품이다.
미국식 영웅주의 사라지고 히어로 영화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썬더볼츠’는 미국식 영웅주의도 종말을 고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캐릭터가 나와야 함을 보여준다. 엘레나를 포함해 모든 캐릭터, 곧 고스트(에이바 스타)의 양자역학을 이용한 순간이동 능력은 불안정하고, 2류 캡틴 아메리카(존 워커)는 이혼 후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으며,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는 어벤져스 동료들을 잃은 후 방황중이고, 일명 레드 가디언이라 부르는 엘레나의 양부는 여전히 자기현시의 영웅놀이에 탐닉한다. 가장 중요한 남자 밥 레이놀즈(루이스 풀먼)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센트리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인데, 어둠을 퍼뜨리는 염력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그를 썬더볼트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엘레나 등은 그가 지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공포의 기억들을 억제하기 위해 애쓴다.
‘썬더볼츠’는 SF적 슈퍼 히어로 액션과 프로이드 심리학, 곧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일종의 ‘꿈의 해석’같은 서사를 오간다. 바로 이런 점들이야 말로 이 영화가 지닌 상업적 딜레마를 보여 준다. 관객 일부는 이런 스토리를 지루하고 뜬금없다고 볼 것이다. 어떤 관객은 이 영화야 말로 지금의 미국 대중관객이 지닌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고 볼 것이다. 미국 대중들은 자신들이 꿈꿔왔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웅적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앞으로도 그 영광스러운 자부심의 시대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멤버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이름을 '뉴 어벤져스'로 바꾼다. 투자배급사인 월트 디즈니는 영화의 성공 여부에 따라 뉴 어벤져스 시리즈를 새롭게 기획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은 앞으로 더 이상의 어벤져스 영화를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 영웅의 시대는 더 이상 없다. 영웅의 시대는 다 가짜였다. 히어로 영화들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건 관객과 대중 스스로 주체적인 영웅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대중 스스로가 나라와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고, 구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30일 개봉했다. 5월 3일 현재까지 관객 수는 30만 명을 밑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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