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나들이에서 되씹은 12.3내란 내각

어제(4월 26일)는 대학 동창 몇몇과 어울려 행주산성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이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꼽힐 정도의 격전지였다는 사실을 애써 의식할 필요도 없이, 데이트하는 연인들, 아기 데리고 온 젊은 부부, 단체로 온 학생들, 한눈 팔지 않고 씩씩하게 언덕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등 많은 시민들과 함께 화창한 날씨를 즐겼습니다.

행주산성은 그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누구보다도 집에서 밥 짓고 빨래하던 아낙네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화살이 떨어질 때쯤 행주치마에 돌덩이들을 실어 날라 석전으로 왜적을 물리치게 했으니까요. 그 돌을 들어 왜적에게 던지고 내려치며 악전고투한 병사들과 승병들, 이름없는 행주 촌사람들의 공도 잊을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이들을 이끌고 10배 이상의 왜군(3만여)을 물리친 도원수 권율 장군이야말로 행주산성에서 가장 우뚝 선 이름일 것입니다.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 동상. 시민언론민들레  사진.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 동상. 시민언론민들레  사진.

일행 중에 마침 조선사와 족보학에 지식이 많은 분(그가 이번 행주산성 나들이를 제안했지요)이 있어 일행에게 권율 장군을 소개했습니다. “권율 장군은 정승판서가 무수하게 나온 명문대가 출신으로 그의 부친 역시 영의정을 지낸 분이지요. 권 장군은 젊었을 때 출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크게 발분해 46세에야 과거에 급제하고 뒤늦게 벼슬길에 나섰습니다.” 이를 요즘 말로 옮기자면 부자집 출신의 놀기 좋아하는 한량,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셈입니다. 권 장군은 무과 출신이 아니고 문과 출신이었는데 나중에 난이 터지자 군 사령관으로서 큰 공을 세우고 나라를 구하게 됩니다.

권율 장군의 사위가 역시 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대신 이항복이었다든가, 그의 집이 종로 필운동 일대였다든가, 예순 셋에 돌아가신 후 경기도 장흥에 큰 묘소를 짓고 묻혔다든가 등등의 자질구레한 설명이 이어지다가 일행들이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을사오적의 하나인 권중현이 권율 장군의 직계 10대손이라는 것입니다. 400여 년 전 할아버지가 7년 전쟁 내내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물리친 왜적에게 그 직계 후손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지요.

 

을사오적 중 하나인 권중현. 나무위키 사진 
을사오적 중 하나인 권중현. 나무위키 사진 

뿐 아닙니다. 권중현의 어머니도 이순신 장군 9대 종손녀 덕수 이 씨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정도가 아니라 참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지와 해상에서 임진왜란을 극복한 대표적인 두 위인의 후손들이 만나 생산한 인물이 그 왜적들에게 나라를 바친 매국노 일당의 일원이었다니요.

어디 권중현뿐이겠습니까.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등도 모두 명문대가 출신 양반, 즉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권율가와 이순신가가 만나 권재형을 만들어냈듯 이러저러한 귀족 집안들의 혈연이 얽히면서 만들어진 당대 최고의 파워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 엘리트들이 모여앉아 이토 히로부미의 위협에 끽소리도 못한 채 나라 팔아먹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던 것입니다.

 

지난 4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모습. 연합뉴스

저는 이 대목에서 윤석열 김건희의 12.3 쿠데타에 동조한 한덕수 내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방장관 김용현이야 내란 주모자의 하나이니 그렇다치고 한덕수-최상목-이상민-조태열-박성재 등 나머지 총리 부총리 장관들 중 누구 하나 내란 기도에 ‘아니요’ 소리 내지 않았다는 사실, 내란이 실패한 후 총사퇴는커녕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표를 던지지도 않고 사과 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제는 오히려 한덕수를 중심으로 정권연장까지 꾀하고 있는 모습에서, 나라를 팔아먹으면서도 제 한 몸의 이익과 안위부터 챙기겠다는 구한말 파워 엘리트들의 비열하고도 추잡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고귀한 자들의 의무)라는 말은 별 고상한 뜻을 품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등 어려운 일이 터지면 귀족들이 먼저 나서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귀족(좌식)계급이 자신들의 계급 이익과 지배력을 지키기 위해 그중 일부가 최소한의 희생을 하는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내란 사태’에서 ‘한덕수 내각’은 어떤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보여주었습니까. 이들의 비열한 행태야말로 혈연과 학벌 등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 즉 대한민국 귀족들의 명분과 생명이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과 다름 없다고 할 것입니다.

 

행주산성의 행주대첩 승전비. 시민언론민들레 사진. 

참, 어제 이런 저런 설명 중에 을사오적 중 한 놈인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라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는 조부로부터 일본 작위(자작)를 세습한 부친의 강요로 일본 육군에 자진 입대했으나, 중국에 주둔 중 탈출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해방 후 교수로 있으면서 받은 월급의 상당 부분을 광복회에 성금으로 냈다고 합니다. 광복군으로 활동할 때 그는 입버릇처럼 "할아버지는 대체 왜 자결하지 않으셨는가. 왜 후손들을 이다지도 욕되게 하는가"라고 자책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