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모피아가 지배하는 ‘사서맹구의 세상’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한 코미디 프로에서 나온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우리를 웃프게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똑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이야 국민은 항상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이지요. 국가는 국민을 위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충성과 희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줘야 할 일. 그 첫째는 안전이요, 둘째는 먹고 살게 해주는 일입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지배자들이 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왕조시대나 독재시대에 어울리는 소리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지금의 민주주의 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살림살이를 알뜰히 챙기지 않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즉각 갈아치우든지 쫓아내야 합니다.

국가는 지혜와 용기, 절제가 어우러지는 공동생활의 터전

플라톤이 꿈꾼 국가도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완전한 존재인 신은 공동생활이 필요하지 않으며, 동물은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질이 없기 때문에 인간만이 국가를 이룰 수 있는데, 따라서 그가 생각했던 가장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이성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머리의 ‘지혜’와, 기질이 이성의 지시를 받는 가슴의 ‘용기’, 그리고 지혜와 용기에 의해 욕망이 조절되는 손발의 ‘절제’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인 것처럼, 국가 역시 머리의 지혜에 상응하는 통치(지배자)계급, 가슴의 용기에 상응하는 군인(수호자)계급, 손발의 절제에 상응하는 민중(생산자)계급이 각자 자신의 직분대로 충실히 살아가는 사회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처럼 인간의 이상이 국가의 이상으로 실현된 상태가 바로 철인왕 정치라고 했습니다. 군인(수호자)계급은 국가를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선발에 있어서 강한 힘과 용감하고 기개있는 정신의 소유자여야 하고, 통치(지배자)계급의 경우는 수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 또한 올바른 이성과 지혜를 지닌 철인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들 3계급의 절제, 용기, 지혜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정의(正義)의 덕이 실현되고, 어느 한 계급이라도 자기 것이 아닌 직능을 침범할 때 부정(不正)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플라톤 동상. 나무위키.
플라톤 동상. 나무위키.

가장 지혜롭고 이성적이고 덕망이 높아야 할 통치계급

지금은 계급을 3개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한 사회도 아니요, 계급이 세습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나라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통치계급을 투표로 뽑는 민주주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계급에 속할 수 있습니다.(혹은 그래야만 하는 사회입니다) 통치계급 중에서도 투표로 뽑힌 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만 통치자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통치 계급이 사회 구성원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성적이고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플라톤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즉 철인왕의 자리에 있어야 할 자가 무지하고 포악하고 자신의 욕망만 추구할 때 그 국가공동체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장차관과 고위 관료들의 해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인계급이 기개를 잃어버리고 오직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용기만 있을 때 그 나라는 재앙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재앙이 부른 환난을 헤쳐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500~2600년 전 플라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시대에 중국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국가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통치자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창고가 풍족해져야 비로소 백성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넉넉해져야 명예와 부끄러움을 안다’고 믿었던 그는 다양한 민본 경제정책을 실시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개혁의 첫 작업을 사서(社鼠·창고의 쥐새끼)와 맹구(猛狗·사나운 개)를 퇴치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들, 즉 통치계급에 속한 자들이 때로는 교활한 술수로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을 방해하고, 어떤 놈은 공권력의 사나운 협박으로 백성들을 갈취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면 사나운 개는 검찰이요, 교활한 쥐새끼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모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전을 앞세우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자들, 숫자와 장부를 움켜쥐고 배타적인 재정 및 금융정책권과 예산배정권을 무소불위의 무기로 휘두르는 자들입니다.

 

2023년 1월3일 윤석열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부총리·장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월3일 윤석열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부총리·장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사나운 개가 끌어주고 교활한 쥐새끼가 밀어주고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사나운 개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나운 놈이 통치계급의 맨 꼭대기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궁지에 몰리니, 그동안 창고를 지키는 척하면서 야금야금 파먹던 쥐새끼 중 제일 교활한 놈이 그 뒷감당을 하겠다고 나선 형국입니다. 관중의 제나라 때가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이 바로 사서맹구의 세상입니다.

이것이 플라톤이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았던 중우정치의 실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톤은 중우정치로 타락하는 민주정치, 통치가 아닌 착취를 하는 과두정치, 탄압과 폭력을 수반하는 참주정치 등도 경계했으니, 사실 우리 국가가 중우정치를 넘어 (검찰 모피아 국힘당 등의) 과두정치, 심지어 (김건희와 무당들의) 참주정치의 문턱에 서있었던 건 아닌가, 몸서리까지 쳐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힘이 세다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신념입니다. 현명한 이를 뽑지 않거나 심지어 쫓아내고, 마치 황새를 왕으로 옹립하는 개구리 떼처럼 탐욕스럽고 잔혹한 이를 우두머리로 뽑아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 가끔 벌어지더라도, 결국 중우정치나 과두정치나 참주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다만 ‘국가가 나를 위해 해 준 것이 뭐가 있냐~’ 외치기 전에,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나를 위한 국가가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시민들이 더 많아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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