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위험이던 제2 쿠데타와 피바다 가능성

헌재 결정문에도 남아있는 기득권 반격의 흔적

'민중혁명'은 피하려 제도적 해법 수용한 결과

'정치혁명' 넘어 '사회혁명'으로 나가야 할 과제

정당, 정부 넘어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힘 중요

기적 만들어 온 '빛의 혁명' 기억하며 전진해야

마침내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12.3 쿠데타는 가까스로 진압되고 있다. 자신이 역사상 최초로 '비폭력 평화 계엄'을 했다는 '계몽주의'적 폭군 윤석열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는 말은 '성폭행의 형식을 빌린 사랑의 호소'라는 말처럼 도저히 성립할 수가 없었다.

거듭 지적해 왔지만 12.3 쿠데타는 이미 탄핵으로 몰리고 있던 윤석열의 선제공격용 계엄이었다. 지난 연말에 윤석열은 그동안 저지른 폭정과 비리들 때문에 이미 곧 국회에서 탄핵당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순순히 다가올 탄핵을 맞이하느냐 쿠데타로 판을 뒤집냐의 갈림길에서 윤석열은 도박을 걸었다.

탄핵 위기 앞에서 계엄을 검토만 하며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친 박근혜처럼 되기 싫었던 셈이다. 당시 기득권 카르텔은 권력의 핵심적 기반은 보존하면서 박근혜를 꼬리 자르고 다음에 올 수 있는 반격과 부활의 기회를 노렸다. 그런 설거지를 맡았던 것이 바로 윤석열이 수사팀장으로 참가한 '박영수 특검'이었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은 정치적 기반을 닦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까지 됐지만,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는 구실을 하면서 기득권 카르텔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다. 이들 모두는 8년 전처럼 쉽게 꼬리 자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기득권 카르텔은 대부분 똘똘 뭉쳐 윤석열을 지키려 했다.

 

11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6차 시민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2025.1.11. 연합뉴스
11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6차 시민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2025.1.11. 연합뉴스

이들이 진작부터 이런 순간을 예상하고 긴 시간 공들여 준비해 온 무기는 광화문을 장악한 태극기부대였고, 극단적인 이재명포비아였고, 중국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였고, 젠더 갈라치기였다. 8년 전에는 잘 볼 수 없거나 막판에나 등장했던 현상들이다. 그래서 쿠데타 진압은 더 힘들었고 계속 걸림돌에 직면하면서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귀연 판사와 심우정 검찰총장이 힘을 합쳐서 기상천외한 법 기술로 윤석열을 탈옥시켜준 것도, 헌재가 이 단순명쾌한 사건을 두고 끝없이 시간을 끌면서 우리의 피를 말리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기득권 카르텔은 실제로 윤석열 복귀와 제2의 쿠데타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였다. 그것은 끔찍한 피바다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다.

'명문'으로 찬양받고 있는 헌재 결정문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정형식 재판관이 집필했다는 이 결정문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득권 우파를 향해 '이런저런 이유로 기각은 어려웠다'라고 변명하고 설득하듯이 쓰여 있다. 심지어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을 노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야당이 이처럼 '소수파를 무시하고 탄핵을 남발'해서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된다고 인식해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는 논리이다. 실제 벌어진 것은 야당을 무시하고 탄압하던 윤석열의 전횡이었고, 야당의 탄핵은 그에 맞선 방어적 수단이었는데 앞과 뒤,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키세스 시위대를 그린 작품명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사진 출처 이정헌 만화가 페이스북
키세스 시위대를 그린 작품명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사진 출처 이정헌 만화가 페이스북

12.3이 독재 체제 수립과 민주주의 파괴를 목표로 끔찍한 학살을 낳을 파시즘적 시도였다는 지적도 찾기 어렵다. 8년 전 헌재 결정문에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듯이 이번에도 이태원 참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윤석열 집권 2년 반 동안의 수많은 실정과 폭주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결정문은 법리적으로는 흠잡기 어렵지만 정치적으로는 '소수 여당을 존중하지 않는 다수 야당도 문제였고 윤석열의 고심도 이해는 가지만 계엄은 너무 심했다'라는 양비론적 해석에 열려있다. 그동안 이런 양비론을 펼쳐 온 것은 대다수 주류언론이었고 한동훈, 이준석, 이낙연 등의 정치인이었다. 이들은 지난 4개월 동안 거리와 광장에 나온 적이 없다.

특히 양비론적 태도로 윤석열을 비판하고 막상 쿠데타 진압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지 않은 이준석당, 이낙연당은 '야당'으로 볼 수 없다. 지켜보다가 쿠데타의 성패에 따라서 얼마든지 어느 쪽으로든 올라탈 수 있는 믿지 못할 세력으로 봐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 때도 그런 '사쿠라 야당'은 많았다.

그렇기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적대적 공생 관계이고 둘 다 잘못이 있다'라는 수많은 '중립적' 지식인들의 기계적 '양비론'은 틀렸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공생'이 아니다. 민주당이 초기부터 쿠데타 진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심 무죄 판결이 기득권 카르텔의 반혁명에 김을 빼면서 내란 진압의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리와 광장에서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물론 거리와 광장에는 진보정당과 지지자들, 민주노총과 노동자들, 여성과 소수자들도 많았고 핵심적이었다. 남태령과 한강진에서 눈부신 투쟁을 만들어낸 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는데, 반혁명 시도를 분쇄하고 쿠데타 진압에 성공한 진정한 동력은 바로 이들로부터 나왔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트랙터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4.12.22.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트랙터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4.12.22. 연합뉴스

보수논객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지적했듯이 이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혁명 수준의 민중항쟁"을 피하고자 헌재는 결국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헌정질서 내부에서의 제도적 해법'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런데 광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하나였지만 동시에 응원봉에서 나오는 무지개 불빛처럼 다양한 요구와 정체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많은 가치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용광로처럼 섞여 있었다. '빛의 혁명'이 단지 (아마도) 민주당으로의 정치권력 교체라는 '정치 혁명'을 넘어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혁이라는 '사회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러한 다양성을 어떻게 다시 이번 쿠데타 진압과 윤석열 파면 때처럼 하나로 모으면서 힘을 집중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무엇도 결정돼 있지 않고 쉽게 이루어질 수도 없다. 당장 한덕수 권한대행은 내란 세력을 위한 헌법재판관 알박기를 시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같은 세력과 '공존, 화해, 용서'에 대한 압박도 쉽게 사라질 수 없다. 이미 여러 지식인과 언론들은 '문재인 때처럼 적폐 청산과 검찰, 언론 개혁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라는 말을 꺼내고 있다. 진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이번에 기득권 카르텔이 반격을 위해서 사용한 무기들(극우 행동대, 이재명포비아, 중국에 대한 혐오와 각종 갈라치기 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으로 세대 갈라치기에는 민주당 일부도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재명포비아는 워낙 뿌리 깊기에 정치테러의 위험이 계속될 수 있고, 2004년 노무현 탄핵 같은 시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2024.12.23. 남태령 농민 트랙터 시위를 그린 그림. 작품명 '남태령 대첩'.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2024.12.23. 남태령 농민 트랙터 시위를 그린 그림. 작품명 '남태령 대첩'. 사진 제공 이정헌 만화가

곧 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큰 민주당 정권이 내란 진압을 완수하고 개혁에 성공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단지 이재명이나 민주당에만 기대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사회의 진보와 개혁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위로부터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동력은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서 나올 수 있다.

이 힘이 갈라지지 않고 강력할 때만 기득권 카르텔과 신극우 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권을 압박하거나 힘을 실어주면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 만약 새 정권이 의지와 능력이 없어서 개혁에 실패하더라도, 더 진보적이고 단단한 세력이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또다시 개혁의 실패로 인한 실망과 좌절의 반사이익을 얻어서 더 위험한 신극우 세력이 권력을 훔쳐 갈 수 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이명박근혜' 정권을,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윤석열 정권을 낳은 메커니즘이었다. 다시 등장할 신극우 세력은 이번 쿠데타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훨씬 더 끔찍한 반동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과 친윤 극우가 국제적 신극우 운동의 일부였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이번 승리는 미국 트럼프를 정점으로 한 신극우 세력들에 맞서는 전 세계 곳곳의 투쟁들에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역으로 지금 가자에서 자행되는 트럼프-네타냐후 동맹의 학살 전쟁과 미얀마, 세르비아, 튀르키예 등에서 극우에 맞서는 투쟁들의 성패가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야만과 저항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중요한 고비를 넘은 '빛의 혁명'은 8년 전 '촛불 혁명'이 제시했지만 이루지 못한 과제를 마무리하면서 그것을 더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을까? 남태령과 한강진에서 기적을 만들어 온 그 힘과 연대를 기억하며 계속 전진해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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