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세계 속 트럼프의 딜레마 ➁

정보홍수 전략 속에 가늠키 힘든 트럼프의 노선

전쟁과 협상 왕복하는 팔레스타인은 적나라한 사례

트럼프에게 가자는 정책의 실험장 정도

강자가 세계를 다스린다는 대국 결정론의 산물

협력과 공존 거버넌스의 다극시대와는 상극

패권논리에 머물러 있는 한 미국의 혼돈은 계속될 것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19일(한국시간) 푸틴-트럼프 1시간 반 통화. 바이든 시절 끊어졌던 러-미 관계 진전의 첫걸음. 협상 내용(예: 30일간 에너지 시설 상호 공격 중지), 후속조치(예: 트럼프, 미 정보기관의 반러시아 활동 중단 지시), 향후 일정(예: 양 정상 간의 직접 회동도 논의 중) 등에서 상당한 진전. 트럼프 집권 두 달 중 가장 큰 뉴스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방해공작(예: 양 정상 통화 직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영국 특수전 부대 우크라이나 파병 준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긍정적이다.

사실 지난 두 달여, 트럼프 발 국내외적 사건은 적잖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USAID(국제개발처)가 난도질 됐고 관세전쟁이 터졌다. 이번 러시아-미국 정상의 전화회담을 제하면, 다른 많은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아직 확실치 않다.

우선 트럼프 본인이 혼란 그 자체다. 도를 넘는 발언(예: 캐나다, 그린란드 합병)부터, 협박(예: 달러 회피 국가 100% 관세), 우왕좌왕하는 대책(예: 가자에서의 휴전-협상—전쟁 재개의 혼란), 몰아치는 조직 개편(예: USAID 난도질), 혼돈의 관세전쟁(예: 부과-유예-부과의 반복, 상대국의 보복조처), 상호모순의 정책(예: 국가채무 감소와 대규모 감세), 비현실적 전략(예: 국방예산 감축과 대중국 전쟁 불사론), 헌신짝 취급받는 동맹(예: 나토와 유럽 국가들)까지... 예측불가와 트럼프는 동의어란 말이 틀리지 않는다.

트럼프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정보홍수 전략

 

사진 1. (왼쪽) S. 배넌, 트럼프 통치전략 인터뷰(월스트릿저널 2월 6일). (오른쪽) 비판을 무력화하는 트럼프의 정보홍수 전략 제목의 기사(같은 신문 2월 16일)
사진 1. (왼쪽) S. 배넌, 트럼프 통치전략 인터뷰(월스트릿저널 2월 6일). (오른쪽) 비판을 무력화하는 트럼프의 정보홍수 전략 제목의 기사(같은 신문 2월 16일)

“상대를 혼돈에 빠트리는 것(overwhelm the opposition).” 그렇게 해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 혼돈에 빠트리는 방법은 ‘flood the zone strategy(‘정보홍수 전략’)‘. 트럼프 통치술의 한 단면이다. 1기 때 그의 정치자문관 노릇을 한 S. 배넌의 작품(사진 1 참조). 대통령은 끊임없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스스로가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새로운 뉴스를 터뜨린다. A를 얘기하는 듯하다 어느새 B로 넘어간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A를 검증하고 분석하는 사이, 대통령은 벌써 A가 아닌 C를 이야기한다.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실행계획인지, 성동격서의 교란책인지, 진의도 가늠하기 어렵다. 비판이나 검증은 뒷북치기다. 상대는 대체로 허둥댄다. 자칭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의 행동방식이다.

합리적 해석이나 예측이 불가능한 트럼프의 행태는 당혹스럽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의 경우만큼 적나라한 건 찾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이번 주부터 가자를 다시 봉쇄, 구호물자를 차단하는 한편, 대규모 무차별 공습과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생지옥을 재현하고 있다. 무원칙한 트럼프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빚어낸 비극이다.

하마스-이스라엘 휴전이 타결된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그 혼돈의 경과를 짚어보자.

가자 협상 타결

23년 10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이어지던 가자 전쟁이 드디어 중단됐다. 트럼프는 S. 위트코프라는 사업상 지인을 특사로 파견, 네타냐후를 압박, 휴전을 성사시켰다. 양측의 인질과 수감자 석방, 이스라엘군의 가자 철수, 가자 구호 지원, 복구 및 재건 등, 크게 3단계로 나눠 진행하는 방안이다. 팔레스타인은 물론 전 세계가 일단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휴전이 성사되면서, 1월 19일부터 2월까지, 양측의 인질과 수감자 석방이 이뤄지는 등, 휴전 1단계는 순조롭게 이행됐다(사진 2 참조).

 

사진 2. (왼쪽) 석방되는 이스라엘 인질(가자 2월 22일). (오른쪽) 석방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서안 1월 25일).
사진 2. (왼쪽) 석방되는 이스라엘 인질(가자 2월 22일). (오른쪽) 석방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서안 1월 25일).

가자의 혼돈 1 — 이스라엘에 무기판매

그런데 그 뒤에서 트럼프는 이스라엘에 10억 불 규모의 무기판매를 준비했다. 3월에도 다시 무기판매가 이뤄졌다. 그뿐 아니라 바이든이 내린 2000파운드 폭탄의 일시적 대이스라엘 금수조처도 해제했다. 거의 1톤에 육박하는 이 폭탄은 직경 400여 미터 안의 인명과 건물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위력의 무기다(사진 3 참조).

 

사진 3. (위) 트럼프, 2000파운드 폭탄 금수조처 해제(액시오스, 1월 25일). (아래) 미국, 이스라엘에 10억 달러 무기 판매 예정(월스트릿저널. 2월 3일)
사진 3. (위) 트럼프, 2000파운드 폭탄 금수조처 해제(액시오스, 1월 25일). (아래) 미국, 이스라엘에 10억 달러 무기 판매 예정(월스트릿저널. 2월 3일)

가자의 혼돈 2 — 가자 합병과 재개발

그보다 충격인 건 2월 5일, 가자를 ‘합병하겠다(take over)’고 발언한 것(사진 4 왼쪽). ‘미국이 가자를 재개발, 중동의 리비에라(Riviera of the Middle East)로 만들면 엄청난 규모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며, 차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롭고 멋진 삶을 기획“하라고 충고(?)까지 해줬다. 그런데 이는 실상 네타냐후의 계획이었던 것(사진 4 오른쪽).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내놓고, 네타냐후는 아주 좋은 계획이라며 맞장구를 치는 희극을 연출했다. 이스라엘의 잔인한 학살과 공습, 파괴와 봉쇄가 이런 재개발 계획의 일환인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4. (왼쪽) 인종청소 후 가자지구를 미국 소유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코먼드림즈 2월 4일). (오른쪽) 이스라엘 온라인 매체가 보도한 네타냐후의 미래의 가자 조감도(ynet, 24년 5월 3일).
사진 4. (왼쪽) 인종청소 후 가자지구를 미국 소유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코먼드림즈 2월 4일). (오른쪽) 이스라엘 온라인 매체가 보도한 네타냐후의 미래의 가자 조감도(ynet, 24년 5월 3일).

가자의 혼돈 3 — 가자 몰살 협박

그것이 끝이 아니다. 트럼프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가자 몰살(?)을 협박했다. 자신의 취임 전까지 모든 인질을 석방하라는 경고를 시작으로(사진 5 위쪽) 2월 두 번째 협박을 날렸다. 3월 들어서는 협박 세 번째로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했다(사진 5 아래쪽). “인질 모두를 석방하라. 이스라엘이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나는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있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온전치 못할 것이고 가자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한 이스라엘의 일이란 인종학살 또는 강제이주를, 지원은 무기, 미래는 가자 재개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5. (위) ’인질 석방치 않을 때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경고(CNN, 1월 7일). (아래) 3월 5일, 거의 같은 내용으로 트루스소셜에 올린 트럼프의 글
사진 5. (위) ’인질 석방치 않을 때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경고(CNN, 1월 7일). (아래) 3월 5일, 거의 같은 내용으로 트루스소셜에 올린 트럼프의 글

가자의 혼돈 4 — 협박모드에서 협상모드로

그런 와중에 트럼프가 비밀 특사를 보내 2월 중순부터 하마스와 협상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CNN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무장조직과 대화채널을 연 것은 1997년 이래 처음이다. 특사로 임명된 인물은 트럼프 1기 때 외교 실무를 담당했던 A. 뵐러(사진 6 참조). 이스라엘 정부의 비난에 대해, 뵐러는 “하마스와의 협상은 매우 긍정적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리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협상안에는 인질문제는 물론, 향후 5-10년 간의 휴전, 하마스의 무장해제까지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6. 3월 9일, 미국 인질 문제 특사 A. 뵐러. CNN 인터뷰.
사진 6. 3월 9일, 미국 인질 문제 특사 A. 뵐러. CNN 인터뷰.

휴전-무기판매-합병·강제이주·몰살 협박-다시 협상. 숨가쁜 소용돌이다. 혼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항의로 인질특사 뵐러는 협상에서 배제됐고,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인 강제이주를 위해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등과 접촉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애초 휴전안은 무효화됐고, 이스라엘은 전기, 물, 식량, 의약품 구호 지원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가자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도 재개했다. 이에 맞서 예멘의 후티는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트럼프는 후티를 공습하면서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고 강력한 보복을 경고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다시 또 서아시아(중동)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트럼프의 세계관 — 대국 결정론

트럼프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최근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 하나를 던져주었다. ’강자들이 다스리는 세계: 트럼프 신세계질서의 요체‘(사진 7 위쪽, 2월 28일). 나토와 유럽은 ’미국 이후의 동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 중‘(사진 7 아래쪽, 2월 24일)이라는 기사다.

 

사진 7. 온라인매체 액시오스 기사. (위) 강자가 다스린다, 트럼프의 신세계 질서(2월 28일), (아래) 미국 이후의 나토 고민하는 유럽(2월 24일).
사진 7. 온라인매체 액시오스 기사. (위) 강자가 다스린다, 트럼프의 신세계 질서(2월 28일), (아래) 미국 이후의 나토 고민하는 유럽(2월 24일).

요약하면 트럼프의 세계는 미국, 러시아, 중국, 세 강자—강자들(strongmen)이라는 액시오스의 복수형 제목은 그 뜻—가 다스리는 곳이다. 중국 지정학자들의 용어를 빌면 ‘대국 결정론’. 국무장관 M. 루비오가 말했듯 일극패권 시대는 ‘비정상’이었다. 이제 세 강자는 각자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영향권역을 설정하고, 이를 확대코자 상호 경쟁한다. 각자의 영역 내에서 강자는 패권 국가다. 세계질서는 이들 패권 강자 사이의 협상과 경쟁, 대립을 통해 결정된다. 때문에 기존의 동맹, 국제기구, 규범, 가치 같은 틀은 더는 큰 의미가 없다.

트럼프에게 이스라엘 지원은 기본원칙이고, 가자를 포함한 서아시아(중동)는 대화와 협박을 병행하는 정책 실험장 정도로 취급된다. 우크라이나 종전은 이미 패한 전쟁에 돈과 물자를 지원하는 낭비를 끝내고, 러시아 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 견제에 나서려는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다. 파나마 정부를 압박, 운하 관리 기업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기게 한 것도 그 일환이다. 관세도 이익확보는 물론, 미국의 뜻을 상대에 강제할 수 있는 전술적 약탈(?)의 무기로 쓰는 중이다. 트럼프의 관점에서 동맹은 미국에 의존하는 ’무임승차자‘다. 유럽이나 다른 동맹국이 안보를 원한다면, 우선 비용(예: 미제 무기구매, 주둔비용)을 더 내야 한다. 미국의 이익에 충실하겠다는 트럼프 대국 결정론의 실체룰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물론 이 같은 행보가 미국의 이익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대국 결정론은 패권 논리의 변형

미국이 맞은 현타의 직접적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패배지만, 거시적으로는 다극시대다. 트럼프의 대내외 정책이 긍정적인 건 다극시대를 인정하는 한편, 미국이 직면한 국내외의 난제들을 직시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이 이해하는 다극시대는, 강자들이 세계를 다스린다는 과거 패권 논리의 변형인 대국 결정론이다. 상호협력과 공존을 요구하는 다극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와 패권논리의 대국 결정론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국의 혼돈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두 달. 임기 초기지만, 첫발을 내디딘 러시아 외교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서아시아(중동) 상황은 크게 악화하고 있다. 글을 마감하는 지금, 트럼프가 이란에 서한을 보내 핵무장 관련 협상을 제안했다는 뉴스가 특종으로 올라왔다. 트럼프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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