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윤석열의 의료 개혁 파탄 해부 ➀
온탕과 냉탕을 오간 것이 아니라 열탕과 얼음탕을 오갔다. 윤석열 정권이 무모하고 무계획적이며 비합리적, 비과학적 방식으로 추진했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을 2026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포기한 것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하면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일 2026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을 (2024학년도 모집정원으로 되돌려) 3058명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생뚱맞게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대로 무지막지하게 추진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가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전공의한테 무조건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료계 건의를 받아 학생이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내년엔 3058명을 모집하겠다는 것이어서 의료 개혁의 후퇴나 정지는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말에 동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또 “의료 개혁을 정부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의료 개혁 과정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얻은 교훈은 의료계와 소통을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전 방위 국정 실패를 한 방에 만회하려던 무모한 카드
이 장관의 이런 발언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다. 지난해부터 우군을 더할 생각도 하지 않고 거대 야당도 유령 취급하며 줄곧 소통을 외면한 채 윤석열 특유의 어퍼컷을 날리며 시대에 맞지 않은 ‘무조건 가!’ 식의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붙였다. 결국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든 뒤 지금에 와서 “정부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라는 말을 뇌까리는 것이다.
이 장관은 “2027년도 의대 정원은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필요한 만큼 증원이 되므로 의료 개혁은 계속 진행된다. 일단(2026년 모집인원)은 학생들 복귀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후에는 증원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전공의한테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은 전장에서 다리를 건너 적과 싸우다 불리해지자 다시 다리를 건너온 뒤 폭파해버린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리가 끊어지고 없는데 언제 누가 어떻게 다시 다리를 건설할 것인가? 건설하려 할 때 그 적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이며 건설한 다리를 마구 건너오도록 그들이 허용할까? 정부 계획은 너무나 안이한 것이다.
윤석열은 왜 준비되지 않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강행했을까?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정치, 외교, 경제, 재난, 북한 문제, 언론 자유, 인권, 국민통합, 인사, 교육, 연금개혁, 노동 등 거의 모든 국정 부문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이에 전임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역대 여러 정부가 하지 못한 의대 정원 대폭 확대 카드를 통해 실점을 만회하려 했다.
하지만 그동안 왜 다른 정권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했는지, 의료 개혁이 왜 힘든지, 의사 집단의 단결력과 힘은 어디서 나오며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면밀한 탐색조차 하지 않았다. 또 불 보듯 뻔한 의사들의 저항을 뚫어내는 방안, 의사 집단을 제외한 다른 집단과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한 대책 등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들과 연대를 단단하게 만들지도 않은 채 무작정 의대생 2천 명 증원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다.
“전공의 처단” 계엄령 포고문, 의료 개혁 실패 분풀이
이 때문에 솥뚜껑을 일찍 열어 설익은 밥이 되듯이,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경기에 나가 참패를 맛보듯이, 윤석열의 이른바 의료 개혁은 갈등과 분열과 환자와 국민 고통만 가득한 대실패로 귀결했다. 윤석열도 이것이 치욕적인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는 계엄 포고령(제1호)에서 확인됐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줄임)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2024.12.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전공의 등 파업을 벌이거나 이에 동조한 의료인에 대한 윤석열의 반감이 극에 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계엄을 한 국가에서 계엄 포고령에 의사들을 처단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대한민국 윤석열 정권이 유일하지 않을까. 정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계엄 실패 후 전공의들이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이주호 장관이 “2027년도 의대 정원은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필요한 만큼 증원이 되므로 의료 개혁은 계속 진행된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전협)를 비롯해 전공의들이 얼마나 무게를 두고 추계위원회에 참여하고 또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 할까? 참여 자체가 불투명하고 추계위원회 자체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2일 박단 대전협 위원장이 한 방송에 나와 발언한 내용을 보면 더욱 그런 판단이 든다. 대전협은 지난해 2월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후 증·감원 함께 논의 ▲수련 병원 전문의사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구체적인 대책 제시 ▲주 80시간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부당한 (행정) 명령 전면 철회 및 전공의들에 사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을 7대 요구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환자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요구해온 것과 배치되는 것도 제법 있다.
정부가 의사 집단에 무릎 꿇는다고 사태 해결 되나
정부가 전공의한테 항복선언을 하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환자단체가 모인 ‘국민중심의료개혁연대회의’는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7일 교육부의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2026년 의대 정원을 동결하겠다는 황망한 발표는 의사 집단에 무릎 꿇는 초라한 백기선언”이라며 “교육부는 2026년 의대 정원 동결을 철회하고 국회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설치법을 즉각 통과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처럼 의사집단과 환자‧시민‧노동단체가 의료개혁의 내용과 방향을 놓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의약분업 제도를 도입하면서 겪었던 현상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24년 전에도 전공의뿐만 아니라 개원의, 대학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들까지 가세해 장기간 전면파업을 일으켰던 의사 집단이 사실상 이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곧바로 ‘부도’(건보 재정 파탄)가 날 정도로 진료비 수가를 너무나 올려줘(약 30%) 대부분 의사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국민은 그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대폭 더 부담해야 했다. 또 정부가 의사 집단의 요구에 무릎을 꿇어 의대 정원을 상당한 폭(정원의 10%, 약 300명)으로 되레 줄여줌으로써 오늘날 의사 부족 논란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됐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랄까, 성과랄까 의약분업은 이루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의 주요 의료제도로 뿌리를 내렸다. 의원과 병원에서 의사한테 처방받고 약국에서 약사한테 약을 받는 새로운 의료문화가 정착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국민 불안만 부추겼다. 많은 환자가 제때 수술과 응급진료와 일반진료를 받지 못했다. 위안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2025학년도에 무려 의대 입학 정원을 2천 명이나 늘려 대학입시학원과 대학 입학 수험생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의대 합격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만 쾌재를 불렀다.
처음부터 2000명 증원 근거 설명 못하면서 실패 예정돼
윤석열 정권의 의료 개혁, 즉 의대 정원 대폭 확대는 실행과 함께 실패가 예정됐다. 이태원 참사에서 보듯이 예방은커녕 위기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였다. 이 때문에 의사 집단의 저항에 제대로 된 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 비판적, 아니 언론 본연의 일을 하는 언론인을 극도로 기피하고 혐오하는 수준까지 이를 정도로 국민과 소통을 외면했다. 낯이 너무 두꺼운 윤석열이 구체적이고 치밀하지 않은, 계획 같지 않은 계획을 세워 밀어붙이고, 실패하면 문재인 정권을 탓하거나 전 정권보다는 훨씬 잘한다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댄다.
의대 정원 확대는 첫 단추부터 엉터리로 뀄다. 2000명 증원의 타당성과 과학적‧합리적 근거를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은 최소 2000명 증원이 필요하며 과학적으로 꼼꼼하게 계산해서 나온 수치라고 강조했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어느 기관) 어떤 근거로 2천 명을 제시했는지를 대지 못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 어느 정부 부처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혹 천공과 같은 역술인이나 도사가 말해준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의료 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새로 들어설 정부는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 환자를 돌볼 의사, 응급의료 의사와 수술 의사, 의과학자, 의료 소외 지역에서 활동할 의사 등 필수 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하루빨리 더 확보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공의 등 의사 집단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과 환자만 바라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