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사고 규명위’가 다시 출범해야 하는 이유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어쩌다 보니 나는 ‘군인권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시작은 1998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 접하게 된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었다. 국방부는 업무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주장했으나 인권위에서 사인을 추적해 본 결과, 진실은 달랐다. 자살이라는 국방부의 주장은 터무니없었다. 궁지에 몰린 국방부는 억지를 부렸지만 결국 이 사건은 대표적인 군의문사 중 하나로 남았다.

“군에 간 내 아들이 죽었다, 왜, 어떻게?” 통곡의 하소연

한편 이 사건이 언론읗 통해 큰 논란으로 불거지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인권위 사무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도 군에서 자식을 잃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군사망사고 피해 유족 분들이었다. 1998년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경향 각지에 사는 이등병의 부모님들이 찾아와 들려주는 사연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통곡, 바로 그것이었다. 책상 위에 각티슈가 하루 한 통으로 부족할 지경이었다.

전쟁만 아니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오는 줄 알고 보낸 군대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자살하거나 사고로 숨졌다는 부대의 통보는 그저 남의 특별한 불행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행이 막상 자기 일이 되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지내왔다는 것이 이들 부모들의 공통된 하소연이었다.

그러다 서울 명동에 있는 천주교 인권위에서 그런 억울한 사건을 재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준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 우리 아들도 해당되나 싶어 불원천리 찾아왔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 안타까운 부모님들을 어쩌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유족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군사망사고의 진상을 전혀 몰랐다. 1948년 11월 30일 국군조직법이 공포된 후 오늘까지 ‘복무 중 사망했으나 아무런 예우없이 버려진’ 군인은 얼마나 될까? 이런 고민을 해 볼 일이 사실 없었다. 그러다가 2013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보좌진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처음 확인하게 되었다. 국방부 측에 1948년 11월 30일부터 2013년 현재까지 ‘순직 처리없이’ 죽은 군인의 총 숫자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이었다. 국방부 자료 제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특이했다. 통상 자료는 요구한 날로부터 10일 후에나 제출이 되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단순한 숫자 요구라서 바로 가능한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 그날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국방부 앞에서 군 의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9.3.25. 연합뉴스
국방부 앞에서 군 의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9.3.25. 연합뉴스

 

‘개죽음’으로 잊혀질 뻔 했던 3만 9000명 비순직 군인들

담당자는 “요구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 “지금 자료 요구에 불응한다는 거냐”며 강하게 받아치자 그는 “그것이 아니고 저희가 현황 파악이 안 되어 제출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담당자는 “지금까지 자살이나 사고사, 또는 질병 등으로 사망할 경우 따로 현황을 관리하지 않아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과거 군인이 죽으면 왜 민간에서 ‘개죽음’이라며 개탄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군대 가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어디서 얼마나 죽었는지 최소한의 데이터로 관리조차 하지 않았다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국방부가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데리고 가서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냐”고 따졌다. 담당자는 “그동안 이런 자료 현황을 요구하는 사례가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점입가경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그럼 됐네요. 이번에 우리가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제출하십시오. 1948년 이후 지금까지 복무 중 사망했으나 예우없이 죽어간 군인 총 숫자 현황, 10일 안에 꼭 제출해 주세요. 제출하지 않으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군 입장에서는 어쩌면 수십 만 명의 군인 중 한 명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부모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징병해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관리조차 안 했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10일 후. 과연 자료는 제출될까? 기다리던 그때, 자료 제출을 알리는 알람이 왔다. 그래서 마우스 클릭을 통해 확인한 숫자. 약 3만 9000명. 복무 중 사망했으나 아무런 예우없이 사라진 대한민국 군인의 숫자가 확인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이를 65년으로 나눠보니 매년 평균 600명의 군인이 버려진 것이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숫자였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하던 고 김덕환 상병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국군병원 장례식장에서 3년만에 치러지고 있다. 2008. 4. 18. 연합뉴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하던 고 김덕환 상병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국군병원 장례식장에서 3년만에 치러지고 있다. 2008. 4. 18. 연합뉴스

지난 65년 간 매년 600명, 지금도 매년 80건의 군사망사건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2025년이다. 그 사이 약 3만 9000여 명의 비순직 군인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고자 나름 노력했다. 특히 2017년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통해 국민들 속에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었고 덕분에 2018년에는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가 특별법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1840건의 진정사건을 접수, 5년의 재조사 끝에 1180건의 진상이 새롭게 밝혀져 상당수가 순직 결정을 통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등 그 명예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23년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위원회의 존속 필요성에 대해 ‘예산 낭비’라며 국회에 발의된 ‘2년 연장 법안’을 반대했다. 결국 위원회는 같은 해 9월, 활동기한 종료로 해산되었다. 그렇다면 2013년 당시 약 3만 9000명으로 확인된 비순직 사망 군인은 그때까지 모두 해결된 것일까.

답은 ‘아니었다’. 2020년 5월 3일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창군 이후 군에서 사망한 사람 중 전사와 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인원은 총 3만 8009명(3만 9000명 중 규명위 조사 결과 순직으로 밝혀진 인원 제외한 사망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기에 2023년 7월 20일, 당시 송두환 위원장 체제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남은 일이 산적해 있는데 ‘진상규명위의 활동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촉구였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같은 권고를 무시했다. 결국 3만 8009명의 비순직 군인 문제는 대책없이 방치된 가운데, 우리 군에서는 매년 평균 80여 건의 군사망사건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결해야 할 사건은 많은데 이를 조사하여 합리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국방부 조사본부나 군인권보호관 전담 인력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을 아는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래서 가능한 해법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군사망사고의 축적된 전문성을 가진’ 진상규명위원회가 다시 출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기 방치되고 있는 3만 8009명의 비순직 군인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고 그 유족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그것이 군복을 입고 죽은 군인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또다른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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