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시위 주체로 떠오른 청춘세대의 희망 이야기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영화 '힘을 낼 시간'은 제목의 시의성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제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 탄핵 시위에서 중심이 됐던 세대는 20대와 30대들이고 아이돌의 K팝들이 광장을 채웠었다. '힘을 낼 시간'은 공교롭게도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전직 아이돌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 힘을 낼 시간은 젊은 세대들의 늙은 세대들을 향한 프로파간다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2030은 이렇게 산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며, 우리는 이렇게 당신들이 만든 사회에서 밀려나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절규가 느껴진다. 젊은 세대들이 지닌 삶의 총체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어서인지, 처음엔 다소 생경하면서 젊은이들 특유의, 사소한 미니멀리즘의 느낌을 준다.

 

영화 '힘을 낼 시간.'
영화 '힘을 낼 시간.'

각자 고민 한 덩어리씩 안고 있는 아이돌 출신 세 청춘

제주도 여행을 하는 세 명의 친구 얘기이다. 수민(최성은)과 사랑(하서윤)이란 여자 둘, 그리고 태희(현우석)라는 남자 이렇게 셋이다. 그들은 가진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제주도 도착 첫날부터 사랑이가 여행가방을 잃어 버린다. 이들 셋의 리더는 수민이인데, 늘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랑이가 밥을 먹다가 옆 테이블 남자와 치고받고 싸움을 벌인 후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 재산이 98만 원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사랑이가 갑자기 광분한 이유는, 그 남자가 미친년이란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영화는 처음엔 다소 울퉁불퉁,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를 펼친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가 불분명해 보인다. 셋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귤 농장에서 막일을 하기까지 한다. 영화는 천천히 이 셋의 정체를 드러낸다. 셋은 아이돌 출신이다. 잘 나가던 친구들이 아니다. 수민과 사랑이는 각각 러브앤리즈라는 걸 그룹의 리드 보컬과 메인 댄서이다. 러브앤리즈는 초창기에 '시크릿 러버'라는 노래로 잠깐 떴던그룹이긴 하다. 태희는 그룹 파이브갓차일드의 서브 래퍼이다. 서브 래퍼인 만큼 가창력이 있는 친구는 아니다. 솔로 활동이 불가능한 친구라는 얘기이다. 이들은 모두 현재 말 그대로 '쫄닥' 망한 상태이다.

 

걸 그룹 러브앤리즈는 해체됐다.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예라'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예라는 죽기 전에 두 문장의 유서를 남겼다. "내가 여기에 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수민과 사랑도 예라가 죽은 후 정상이 아닌 생활을 이어 온 모양이다. 사랑이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으며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아이가 됐다. 사랑이의 돌발 행동 때문에 수민은 늘 불안해 한다. 밥 먹다가 옆 테이블 사람과 소동이 벌어진 것도 잃어버린 슈트케이스 안에 우울증 약이 있어 약을 못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민은 수민대로 심한 다이어트 후유증 때문에 밥을 잘 먹지 못하고 거식증에 의한 잦은 구토에 시달린다. 태희는 빚에 시달린다. 자신의 팀이 해체된 것도 군대를 가서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소속사와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계약은 2년이 남았다. 태희는 소속사에 3000만 원의 빚을 졌다.

 

'자신을 찾고 싶어' 감행한 여행 속에 녹여낸 아이돌 인권문제

이들 셋이 여행을 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등학생 때 연습생 시절이었던 터라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고 그게 제주도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행의 진짜 이유는,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셋 모두 자신을 찾고 싶어 하기때문이다. 수민은 말한다. "모르겠어. 할 수 있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 그동안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 왔어. 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어. "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한 톤을 이어 간다. 주인공 셋의 처지 상 우울할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이 시대, 이 사회 청춘들의 총체적 모습이 우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영화 '힘을 낼 시간'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15번 째 영화 프로젝트다. 영화 속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처한 인권의 문제, 그 사각지대 애기가 다뤄지는 건 그 때문일 수 있지만 그게 작위적이지는 않다. 아이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예컨대 주인공 수민은 자신들의 히트곡 시크릿 러버를 좋아하지 않는다. 히트곡이 만들어진 후 멤버들의 치마가 점점 짧아졌고 그래서 생리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수민은 1년 내내 피임약을 먹어야 했다. 남자 태희는 태희대로 소속사 대표가 자신을 돈 많은 여자의 ''으로 내세웠다는 얘기를 한다.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안창호라는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이 수장을 맡고 있어 논란이다. 게다가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 사상에 빠져 있어 동성애 등 사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 와중에 이렇게 국가인권위원회의 영화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향후 성소수자 차별 문제 같은 것이 다뤄지지 못할 것이란 점에서 상황은 여전히 어둡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부터 거의 매년 단위로 인권영화 제작을 지원해 왔다. (코로나 19 등 때문에 건너 뛴 해도 있다) 2003년에 만든 '여섯 개의 시선'이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불투명한 미래는 이 프로젝트의 지속성마저 어둡게 만들고 있다.

 

힘을 내야 할 세대가 어찌 청춘세대 뿐이랴

이번 탄핵 시위에서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지닌 잠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무지하지 않았고, 기성세대와 달리 아직 변절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이전 세대처럼 비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용감했으며, 새로웠고,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했다. 한국 정치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 않다는 것을 웅변으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늘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극중에서 그리 말이 많지 않은 사랑이는 수민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 있잖아. 미래는 없고 과거는 사라진 것 같은 때. 그래서 어둠이 무서워지는 날들이 있잖아." 수민은 동료였던 예라의 자살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민은 죽은 예라에게 말한다. “내가 여기에 있어.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

영화 '힘을 낼 시간'은 우울하고 아픈 일을 겪은 청춘세대들의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달렸었던 전 세대, 지금의 세대, 그리고 이후 세대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회 탄핵 가결을 선포한 후 희망은 힘이 세다는 국회의장의 말은 의미가 있다. '힘을 낼 시간'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2030 세대가 만들어 내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은 2030을 아는가.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힘을 낼 시간'의 일독을 권한다. 이 영화는 보는 영화가 아니라 (마음을) 읽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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