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동작이 삶의 질과 연관된다는 것

판단하지 않기, 하지 않기, 자제하기

임미성 재즈가수
임미성 재즈가수

버나드 쇼는 처음으로 설립한 자신의 극장에 다음과 같은 현판을 내걸었다.

<알렉산더, 심장병을 치료하다>

그는 오랫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글을 썼던 습관으로 결국 80세에 심장병을 앓게 되는데 F. M 알렉산더를 찾아가 테크닉을 배우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알렉산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현판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는 이른바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고 나서 “키가 7cm 크고, 어깨가 5cm 넓어져 맞는 옷이 없다”고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잘못된 것을 그만두면 올바른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알렉산더의 철학을 삶에 그대로 적용시킨 버나드 쇼는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운 지 고작 3주 만에 1km 이상을 걷고,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죽을 때까지(14년) 건강을 유지했다고 한다.

‘3면경 방’에서 ‘감각인식의 오류’ 발견한 알렉산더

F. M. 알렉산더
F. M. 알렉산더

프레데릭 마티아스 알렉산더(Frederick Mathias Alexander)는 1869년 호주 타스마니아 출신으로 병약한 체질로 태어났지만 농촌 활동과 함께 사냥과 승마를 즐기는 어린시절을 보낸다.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던 알렉산더는 셰익스피어에 심취해 연기와 발성 공부를 시작하면서 건강 악화로 요양생활을 하기도 했다. 건강을 회복하고는 극단을 결성해 배우, 제작자로 셰익스피어 전문 낭송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무대에서 낭송을 할 때 목소리가 쉬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고, 공연이 끝나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알렉산더는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약물치료, 음성전문가의 치료와 운동도 해보지만 목소리가 쉬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실망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3면의 거울이 있는 방을 만들어 낭송하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10년 동안 계속된 그의 집요한 관찰은 마침내 그동안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거울을 통해 동작이나 자세가 목소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몸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구부러지는 척추, 뒤로 젖힌 목으로 인해 호흡과 발성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오랜 습관이나 자세에 익숙해지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편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감각기관들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감각인식의 오류’임을 발견했다.

또 지나친 목표 의식은 몸의 근육들을 긴장시키고 결과적으로 통증과 스트레스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에 의도를 놓아버려야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알렉산더의 치료법에 깊은 감명을 받은 시드니 의사들의 추천으로 알렉산더는 런던 의학계에 알려지게 된다.

발성에 문제가 있는 배우들의 치료를 시작으로 점차 성공을 거둔 알렉산더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교육가이자 철학가인 존 듀이를 만난다. 타자기를 가슴에 얹고 작업해야 할 만큼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존 듀이는 25년 동안 알렉산더의 학생으로서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이에 관한 책을 써서 세상에 알린다.

 

알렉산더 테크닉의 기본원리. 출처: 한국알렉산더 테크닉협회 홈페이지 
알렉산더 테크닉의 기본원리. 출처: 한국알렉산더 테크닉협회 홈페이지 

건강과 깊은 연관이 있는 눕고 앉고 걷는 일상적 동작과 자세

알렉산더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등을 펴고, 턱을 당기고, 눕고, 앉고, 서고, 걷고, 달리는 모든 일련의 동작과 자세들이 건강과 삶의 질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증명해 내었다. 알렉산더 테크닉에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기(non-judgement)와 하지 않기(non-doing). 자제하기(Inhibition)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과의 소통이 원활해지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은 예술 분야나 스포츠 외에도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몸은 살아있는 생명을 스스로 운영하는 지성체이며, 몸이 자연 그 자체’임을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보여주고자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를 숙이고 걷는 것, 짝발로 서 있는 것, 다리를 꼬고 앉는 것 등 무의식적인 반복 행위들이 통증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멈추기가 어려운 것은, 오랜 습관으로 몸에 밴 동작들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나치게 집중하면 몸의 근육들이 과도한 긴장으로 경직되고, 이는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알렉산더는 ‘가장 가치있는 지식은 자기 자신을 다루고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깊은 통찰로 오랜 시간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알렉산더 테크닉이 130년 동안 지금도 전 세계에서 활발히 전해지고 있는 이유는 ‘자세를 고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항상 지금보다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움직임을 추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멈추고. 자세 바로 잡으니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

나는 오래 전 책을 통해 알렉산더 테크닉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읽으며 책의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해보니 동작이나 자세에 대한 습관이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노래할 때 자세나 동작이 목소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녹음하는 싱글 음반 곡은 콘트라베이스와 유니즌으로 함께 부르는 노래인데 베이스 소리에 묻히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겨서인지 저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나는가 싶으면 풍성한 울림이 부족했다. 작곡자인 피아니스트는 음을 조금 올려도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테마의 컬러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사실 여성보컬이 부르기에는 무리인) 극강의 저음을 고집했다. 연습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음역보다 더 낮추다보니 노래할 때 긴장과 함께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이완, 그리고 또 이완이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목표를 다시 정했다. 마지막 리허설에 저음이 제대로 안 나오면 보컬을 뺀 연주곡으로 바꿀 것, 이렇게 정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베이스음을 억지로 내는 느낌이 들 때면 주저 없이 멈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피아니시모로 베이스 음을 부르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무리한 연습 대신 몸에 긴장이 가지 않도록 나의 모든 동작과 자세를 관찰하는 데 주력했다. 소리내기에 편안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자주 체크했다. 자세가 바른지 발바닥에 힘을 주고 서 있는지, 무릎을 붙이고 앉는지, 호흡이 가라앉아 있는지, 마음이 고요한지 등등, 그리고 스트레칭의 횟수를 늘렸다.

그러자 서서히 몸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지면서 저음이 편안히 나오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고 목표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버리니 소리가 반응을 한 것이다. 한번 제대로 나온 소리는 어느 상황에서도 나오기 마련이다. 드디어 마지막 리허설, 그렇게 애를 써도 나오지 않던 저음이 한결 편안해진 깊은 소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녹음해서 들어보니 내가 도달하고자 한 소리에 거의 다다랐다. 아직 도착은 아니지만 이제야 저음을 자유롭게 활강하며 리듬을 탈 준비가 된 것이다.

폴 뉴먼, 헉슬리, 틴베르헌이 주목한 만병통치급 ‘알렉산더 테크닉’

파리 유학 시절 ‘무대연출’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은 일종의 알렉산더 테크닉이었다. 무심히 바라보기, 팔을 늘어뜨리기, 춤추듯 걷기, 다양한 표정 짓기. 성급히 걷다가 천천히 걷기, 가슴을 활짝 펴기, 똑바로 앉거나 서 있기,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기, 팔을 위로 쭈욱 뻗기 등. 이런 다양한 동작을 순서대로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가 보여줘야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긴장하면 몸의 근육들이 순간적으로 굳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에 힘을 많이 주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무대연출’ 교수님은 배우 출신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알렉산더 테크닉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올 여름 내가 경험한 작은 기적은 오래전 잊혀졌던 수업의 소환, 말하자면 ‘다시 기억하기’의 과정이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저음을 내기 위해 내가 전력을 다한 것은 (모든 습관과 판단을) 멈추기, 버리기, 놓아주기, 자제하기였다.

배우 폴 뉴먼은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요통과 불면증을 개선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알렉산더 테크닉은 ‘완전히 새로운 교육법’이며 지성적, 도덕적, 영적 측면에 확실한 효과를 준다. 인간을 더욱 나은 존재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이 이상의 교육법은 없다”는 확신을 보여주며 알렉산더를 소설의 등장인물로 그려내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알렉산더 테크닉으로 고혈압, 수면 및 호흡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으며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알렉산더와 치유의 관점을 똑같이 바라본 사람인 해부학자 아이다 롤프는 “모든 생명 경험의 핵심은 움직임이며, 몸이 올바르게 움직일 때 중력의 힘이 올바르게 흐를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통증을 유발한다는 알렉산더의 말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서울지하철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2021.6.16
서울지하철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2021.6.16

핸드폰 중독 시대에 더욱 불태워야 할 습관들, 불필요한 동작들

바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관찰하고, 자각하고, 자제하며, 인지하는 과정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나가야 한다. 인류가 점점 더 목표지향적으로 되어갈수록 인간의 자세는 이상한 방식으로 바뀌어갈 것이라는 알렉산더의 예언은 결국 적중했다. 아이다 롤프는 현대사회는 같은 근육들을 오랜 시간 쓸 수밖에 없는 굴곡에 중독된 사회(Flexion-addicted Society)라고 발표했다. 오랜 시간 폰을 들여다보면 몸 전체가 기우뚱해지면서 몸이 틀어지게 되고 이는 집중력 저하와 만성 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기울어진 몸은 염증과 스트레스를 가져오며 오래 방치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척추와 머리의 균형을 통해 정신과 몸이 하나임을, 고대 중국 의학에서는 자세와 걸음걸이와 인품과의 관계에 따른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소나무처럼 서고, 종처럼 앉으며, 바람처럼 걷고, 활처럼 누워라.” (소나무처럼 곧게 서면 폐와 인내심이 강해지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위장이 건강해지며, 바람처럼 부드럽고 가볍게 걸으면 기운이 솟으므로)

생 레미 주교가 프랑스 최초의 왕인 클로비스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을 불태워라”라고 일침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굳어진 반복 행위들이, 이를테면 다리 꼬고 앉아 밥먹기, 손가락 마디 꺾기, 걸터앉기, 주머니에 손 넣고 걷기, 고개 숙이고 서 있기 등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들이야말로 불태워야 할 습관이 아닐까. 지금까지 해왔던 불필요한 동작들을 멈추면, 긴장 없는 이완된 몸의 건강한 삶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