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기부만으로 재원 조성, 징용 피해 대신 변제

징용 피해자측 "전범기업 불법 인정·사과가 해결 출발점"

한국 '단독 발표' 유력…형식도 일본 입장 최대한 배려

윤 정부의 전방위 대일 안보 밀착…‘친일 논란’ 부채질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4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로 외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졸속 해결과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일본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 대한 사죄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4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로 외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졸속 해결과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일본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 대한 사죄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을 떠받드는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점입가경이다.

윤 정부는 출범 이후 8개월 가까운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 '애원'에서 시작해서 일제 강제동원(징용) 문제에 대한 '변칙 해법' 추진, 독도 근해에서 한·미·일 군사훈련, 한국 해군의 일본 욱일기 경례 허용, 그리고 일본이 개정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최초로 명시한 데 대한 소극적·미온적 대응 등에 이르기까지 그 사례를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강제징용, 전범기업 면책 가닥…한국 정부 맞아?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윤 정부의 접근법은 정도를 벗어났다. 가해자인 일본 전범 기업이 불법 행위를 직접 사과하고 배상하면 바로 끝날 일인데도, 그들을 면책할 묘안은 없을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해답을 가져오라'는 고압적인 일본에 시종 끌려다니고 있다.

국내외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윤 정부가 마련한 해법은 한국 기업의 기부만으로 재원을 만들어 '배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안이다. 재원의 조성과 집행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익법인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맡는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제 전범 기업은 제외함으로써 사실상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줄 모양이다.

윤 정부는 이런 내용을 지난달 하순 강제동원 피해자 법률대리인단 등에 설명한 데 이어, 같은 달 26일 도쿄에서 있었던 한일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 협의를 통해 일본 측에 설명했다. 어떻게든 이달 안에 일단락 짓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속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윤 정부의 해법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첫째는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 전범 기업의 사과나 출연이 없다는 점이다. 불법 행위를 한 전범 기업을 면책함으로써 '배상'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수용하기 힘든 방안이다. 윤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최대 수혜기업인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재원 조성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이런 방안은 일본을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언제든 불거질 또 다른 불씨를 남길 공산이 크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13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훈장 서훈 취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모임'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 모임'에게 일제강제동원시민역사관(가칭) 건립을 위해 100만엔을 기부했다. 2022.12.13.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13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훈장 서훈 취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모임'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 모임'에게 일제강제동원시민역사관(가칭) 건립을 위해 100만엔을 기부했다. 2022.12.13. 연합뉴스

피해자측, 전범기업 '단돈 100원이라도 출연' 요구

둘째는 한국 기업이 재원을 부담하고, 한국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변제를 주도할 경우, 가해 기업은 빠지고 피해국인 한국 정부와 기업이 불법 행위의 책임을 떠맡는 형국이 될 수 있다. 피해자 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가 가해 기업의 사과와 함께 "단돈 100원이라도" 가해 기업이 출연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다. 돈이 아니라, 강제동원의 불법성에 대한 전범 기업의 인정과 사과가 진정한 해결 과정의 출발점이란 말이다.

윤 정부는 우리 쪽에서 먼저 피해자들에 대한 변제를 시작하면, 전범 기업을 뺀 다른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과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 등 '성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배상 책임이 있는 전범 기업이 빠진 해법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완강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윤 정부가 바라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도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2023.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2023.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한국 '단독 발표' 유력…형식도 일본 입장 최대한 배려

셋째는 발표 형식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1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단독 발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합의 때 양국이 공동 발표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방한해 윤병세 외교장관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에 윤 정부가 단독으로 발표하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선언할 경우 파문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강제동원 문제는 '이미 다 해결'된 만큼 한국이 해법을 발표하든 말든 상관할 바 없다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발표 형식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해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윤 정부의 저자세이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전범 기업들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1인당 1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에 불응하는 전범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명령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7월 말 윤 정부가 재판부에 "한일 양국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과의 외교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현금화 프로세스는 중단된 상태이다. 외교 협의를 마칠 때까지 재판을 미뤄달라는 메시지였다.

'한일관계 파탄'을 경고하며 현금화를 위한 강제집행에 반발해온 일본을 최대한 배려한 것임은 물론이다. 문제는 재판이 지연되면서, 고령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한 김옥순 할머니는 작년 10월 93세 나이로 별세했다. 당시 재판은 3년 8개월째 대법원에 계류 상태에 있었다.

 

26일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26일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어렵게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윤 정부 길들이기'

기시다 일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윤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에 주력했다. 가급적 이른 시기에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윤 정부를 향해 먼저 양국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및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 오라는 압박을 가했다.

일본이 내세우는 "일관된 입장"은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다 끝났고, 위안부 문제도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합의 파기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로 한국이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니 한국이 결자해지를 하라는 게 일본의 요구였다.

윤 정부는 즉각 부응했다. 2015년 위안부합의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고, 강제동원 문제도 '일본이 원하는' 해법을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해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홀대였다.

그 상징적 장면이 유엔총회 기간인 작년 9월 21일 뉴욕에서 있었던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만남이다. 윤 대통령이 유엔 주재 일본대표부 입주 건물에서 진행된 행사장으로 기시다를 찾아갔다. 통상 제3의 장소에서 하는 외교 관례까지 깨면서 말이다. 2년 9개월 만에 한일 정상이 만난 걸로 치면 30분이란 시간도 이례적이다. 대통령실이 시작 2분 후에 한국 취재진에 만남을 공지한 것을 보면, 일본 측이 마지막 순간까지 확답을 안 주고 애를 태우게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날 만남을 두고, 우리 측은 '약식 정상회담'이라고 했고, 일본 측은 '간담'이었다고 의미를 축소하기까지 했다. 외교가에선 윤 정부가 강제동원 관련 구체적인 해법을 들고 오지 않아 '길들이기' 차원에서 냉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는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일명 '군함도') 인근 해상의 유람선에서 보이는 군함도. 2022.7.4 연합뉴스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일명 '군함도') 인근 해상의 유람선에서 보이는 군함도. 2022.7.4 연합뉴스

윤 정부의 전방위 대일 밀착…'친일 논란' 부채질

군사안보 분야에서 윤 정부의 대일 저자세 행보도 전방위적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한국 정부들이 금기시했던 독도 근해에서의 한미일 군사훈련을 감행한 게 대표적이다. 작년 9월 30일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공동으로 대잠전 훈련을 벌였다. 한달여 지난 11월 6일에는 자위대 주관 국제관함식에 해군 대표단을 파견해 '욱일기'에 경례를 허용함으로써 한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비난 여론이 거셌으나 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격력을 갖춘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경계는커녕, 도리어 배려하고 두둔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작년 11월 28일 윤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가 그 시작이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공격적 안보정책과 대대적 방위력 증강 계획을 두고 "일본 열도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용인 가능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일본은 작년 12월 16일 '반격 능력'(선제공격 능력) 확보를 명시한 개정 국가안전보장전략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당국자는 북한 공격시 "자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해 한국의 승인이나 허가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의 핵위협을 거론하면서 "일본도 여러 가지로 지금 자국 방위를 위한 고민이 깊지 않나 싶다"고 말해 처음엔 두둔하고 나섰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하루가 지난 뒤 "한반도나 우리 국익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은 당연히 사전에 우리와 긴밀한 협의나 동의가 필요하다"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2019년 '독도방어훈련' [해군 제공]연합뉴스
2019년 '독도방어훈련' [해군 제공]연합뉴스

윤 정부의 저자세는 독도 문제에서 절정을 이룬다. 기시다 정부는 외교·안보 기본지침서인 개정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최초로 명시했다. 독도 문제는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에 속하는 사안으로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에서 직접 나서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도 소극적, 미온적 자세로 일관했다.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국장급 차원에서 항의하는 선에서 그쳤다. 일본을 자극할까 봐 애쓴 흔적이 보였다. 독도 수호 훈련을 전투기 출동과 독도 상륙도 없이 소규모, 비공개로 진행한 것도 일본을 의식한 행동이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윤 정부가 '굴욕적'이란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성심성의'를 다하는데도 일본은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프놈펜 정상회담 직후에 자국의 위협비행으로 문제가 됐던 초계기사건(2018년 12월)을 거론하며 한국 측에 해답 마련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작년 12월 군함도(하시마)에서의 한국인 강제노역과 관련한 유네스코(국제연합과학기구)의 설명 보완 요구에 일본은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답변서를 보내기도 했다. 윤 정부는 그런 내용도 사전에 파악해 대처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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